
지난 재의 수요일로 우리는 사순시기에 들어왔다. 40일간 지속되는 사순시기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시기, 곧 ‘회개’를 살고자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우상숭배에 저항해야만 하고, 주님의 은총을 받아들이기에 열성을 다해야 하는 시기이다. 교회는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왕국으로 가는 여정에서 항상 긴장 속에 살아야만 하는 무능을 절감하기에 우리에게 별도의 특별한 시기를 제정하여 회개를 향한 우리의 힘을 집중하고 ‘영적인 투쟁’이라는 예술을 연마하도록 배려한다.
사순 제1주일에는 예수님께서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으시는 장면을 듣는다. 마태오 복음사가에 따르면,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1절) 첫 번째로 맞닥뜨린 일이 악마와의 직접적인 대면이었다. 예수님께서 세례 때에 드러난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권능을 검증해야 할 유혹에 직면하신다. 유혹과 시련, 시험, 저항을 넘어서 하느님의 은총을 향해 사막을 가로지르는 여정(사순절)을 보내는 우리를 위해 새로운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유혹을 이기시고 물리치셨는지를 말해준다. 이 복음은 세 공관복음이 공통으로 전한다.
처음 두 유혹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3.6절)이라는 어구로 시작하고, 예수님께서는 각각의 유혹에 대하여 모두 신명기의 성서 말씀(신명 8,3;6,16;6,13)을 통하여 답하시며 악마를 물리치신다. 이를 통해 마태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광야를 통과할 때 겪었던 똑같은 유혹을 예수께서 모두 겪으신 것처럼 묘사한다. 악마가 말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말은 마태오복음 종장부에서 “네가 하느님 아들이거든 너 자신이나 구하거라. 십자가에서 내려오려무나”(마태 27,40)라는 말로 되풀이된다. 예수님의 유혹은 십자가 위에서 절정에 달하고 동시에 예수께서는 그 유혹을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극복하신다.
약속의 땅으로 가던 광야의 유다인들도 유혹에 무너져 죄에 빠진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탈출 16,3) 하며 불평하는 이들에게 “하늘에서 양식을 비처럼 내려”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소? 우리와 우리 자식들과 가축들을 목말라 죽게 하려고 그랬소?”(탈출 17,3) 하며, 다시 불평하는 이들에게 “주님을 시험하였다” 하여 마싸와 므리바라는 물터 이름이 생겼다는 이야기, 그리고 “앞장서서 우리를 이끄실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하며 금송아지를 만들었다가 화가 난 모세가 “그들이 만든 수송아지를 가져다 불에 태우고, 가루가 될 때까지 빻아 물에 뿌리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시게 하였다.”(탈출 32,20) 하는 내용 등이다.
예수님의 세례 이후 곧바로 예수님을 찾아온 악마의 유혹을 일회적인 이벤트 정도로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유혹은 공생활 내내 예수님께 다가왔고 마지막 십자가상의 죽음을 맞이하실 때까지 예수님을 괴롭힌다. 예수님께서는 온 생애에 걸쳐 유혹을 받으신다. 마지막 유혹과 승리는 십자가 위로까지 이어진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마르 1,13)라고 하면서 40일 내내 악마가 예수님을 괴롭혔다고 적고 있는데, 마르코와는 달리 마태오와 루카는 유혹을 3번의 단계처럼 묘사한다.
1. 예수님께서는…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오늘 사순 제1주일의 복음이 우리에게 보여 주듯이 유혹에 맞서는 우리의 영적인 ‘투쟁’은 예수님께서도 피하실 수 없었을 만큼 어떤 의미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세례를 받으실 때 예수님께서는 성부께로부터 “내가 사랑하는 아들”(마태 3,17)이라 부르셨음을 알고 체험하셨으나 이러한 예수님께도 시련을 피할 길은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요르단 강물에 잠기시어 세례를 받으신 후, 곧바로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마태 4,1) 이와 마찬가지로 세례받은 이들은 그 누구라도 교활하고도 끈질긴 유혹으로 주님을 따르려는 길에서 돌아서게 하려는 원수들의 간교한 술책을 맞닥트려야만 한다.
‘가’해인 올해 사순 제1주일에는 제1독서를 창세 2,7-9;3,1-7에서 취하는데, 이 독서의 내용은 복음과 병행하면서 ‘유혹’ 안에 담긴 구조나 작동 원리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시면서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 2,16-16) 하신다.
이러한 인간의 한계와 제한 내에서 인간의 자유가 보장되는 한편 그 틈새를 뱀의 유혹이 파고든다. 뱀은 사람을 유혹하면서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세 3,4-5) 한다.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뱀의 못된 제안은 새로운 현실에 관한 제안이다.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줄 것처럼 탐스러웠다.”(창세 3,6) 한다. 세상이 삼킬 수 있는 먹이로 보이고, 그렇게 보이면 이미 죄가 시작하며, 열매를 따는 손의 동작은 멈출 수가 없게 된다.
2.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예수님께서는 아담과 정반대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처럼 똑같은 분이셨지만,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히브 4,15) 분이시다. 아담이 죄에 떨어진 그 자리에서 싸우시고 이겨 승리하신 분이시다. 마태오는 오늘 복음에서 세 가지 유혹을 들어 예수님께서 유혹들을 어떻게 물리치시고 승리하셨는가를 보여 준다. 악마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마태 4,3)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마태 4,6) “세상의 모든 나라와 영광을 보여 주며,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마태 4,8-9) 하면서 예수님을 유혹한다. 돌을 빵이 되게 해 보라는 유혹, 기적적으로 구해질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라는 유혹, 천하 만물과 세상의 힘을 소유해 보라는 유혹이다.
유혹자는 어떤 물건을 한가운데로 던져 분열시키는 사람이나 상황과도 같은 악마이고, 모든 것에 난관과 무질서를 조성하여 혼란에 빠뜨리는 사탄들(διάβολος, diabolos)이다. 인간의 생각을 혼란스럽게 한다. 사탄은 신성한 말씀에 파괴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동인을 끌어들여 하느님의 계획을 가로막으며, 선한 것과 악한 것을 혼합한다. 사탄은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되 성경의 본래 의미와 전혀 다른 의미로 인용함으로써 선악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그는 성경의 말씀에 악의를 섞어 넣는다.
3. 말씀으로 산다…시험해서는 안 된다…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향한 온전한 순명과 피조물로서 지키고 지녀야 할 본성에 철저히 충실하심으로써 악마의 간교하고도 그럴듯한 제안을 여지없이 물리치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인성人性을 강력하게 보호하시면서 성경이 계시한 하느님의 모습 역시 지켜내신다.
예수님의 무기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악마에게 신명기의 말씀들을 인용하며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명 8,3 마태 4,4) “그분(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해서는 안 된다”(신명 6,16 마태 4,7)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이름으로만 맹세해야 한다”(신명 6,13 마태 4,10) 하고 대답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악마가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마태 4,6 시편 91,11-12) 하면서 그럴듯하게 겉으로만 대충 읽어 사악하게 성경을 인용하고 이용하는 것과는 달리 말씀이 지닌 깊은 의미를 새겨 그 말씀에 순명하신다.
아담은 하느님처럼 되고 싶어서 그 하느님의 신성神性을 획득해야 할 무엇인가로 생각하며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손을 뻗어 그 열매를 움켜잡아 쥐어서 땄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담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신다. 지상 여정의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온전한 자유로 기꺼이 십자가 나무에 오르시고 완전히 열린 당신의 손을 뻗어 펼치시어 하느님과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당신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놓으시고 봉헌하신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온갖 유혹에 맞서 싸워 이기는 방식도 예수님의 방식과 같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예수님께 온전히 봉헌하여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몸소 싸우시게 해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께서는 예리한 지성으로 이를 간파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사막에서 악마의 유혹을 받으셨으니, 네가 유혹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네 안에서 유혹을 받으신 것, 너 그분 안에서 승리하여 그분께 승리를 안겨드려야 한다.』 하셨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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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순 제1주일에 복음(마태 4,1-11 참조)은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다음,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마태 4,1)고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성경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한 것처럼(탈출 24,18 1열왕 19,8 참조), 하늘나라를 선포하는 사명을 시작할 준비를 마치시고 40일 동안 단식하셨습니다. “사순시기”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40일 동안의 단식이 끝날 무렵 유혹자, 곧 악마는 세 차례에 걸쳐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시도합니다. 첫 번째 유혹은 예수님께서 배고프다는 사실에서 시작됩니다. 악마의 제안은 이렇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마태 4,3) 하나의 도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답변은 단호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 예수님께서는 모세를 언급하십니다. 모세가 긴 여정을 걸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대상으로 광야에서 자신의 삶이 하느님 말씀에 달려있음을 배웠다고 말했을 때입니다.(신명 8,3 참조)
그런 다음 악마는 두 번째로 유혹을 합니다.(마태 4,5-6 참조) 악마는 성경을 인용하며 더 간교하게 유혹합니다. 악마의 전략은 분명합니다. “만일 당신이 하느님의 권능을 믿는다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천사들이 도와줄 것이라고 한 말을 체험해 보라는 것”입니다.(마태 4,6 참조) 하지만 이 경우에도 예수님께서는 혼란에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믿는 이는 하느님께서 그를 시험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를 당신의 선함에 맡기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탄이 의도적으로 해석한 성경 말씀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다른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마태 4,7)
마지막으로, 세 번째 유혹(마태 4,8-9 참조)은 악마의 진짜 생각을 드러냅니다. 하늘나라의 도래는 악마가 패배하기 시작했음을 알리기 때문에, 악마는 정치적 메시아주의의 전망을 예수님께 제시하면서, 예수님께서 당신 사명을 완수하시는 것을 방해하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권력과 인간적 영예의 우상을 거부하시고, 마침내 유혹자를 내쫓으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 4,10) 이 순간, 예수님 곁에, 성부의 명령에 충실한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습니다.(마태 4,11 참조)
이는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악마와 대화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악마에게 대답하십니다. 유혹을 받을 때 많은 경우 우리는 유혹과 대화를 나누거나, 악마와 이렇게 대화하기 시작합니다. “맞아, 하지만 나는 이것을 할 수 있고, (…) 그런 다음 (죄를) 고백하면 되고, 그러고는 이런 것, 저런 것도 할 수 있어. (…)” (하지만) 악마와는 결코 대화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악마에게 두 가지 방법으로 대응하십니다. 악마를 내쫓거나, 아니면, 이 경우처럼, 하느님의 말씀으로 대답하신 겁니다. 여러분도 주의하십시오. 절대 유혹과 대화해서는 안 되고, 절대 악마와 대화해서도 안 됩니다.
오늘도 사탄은 매혹적인 제안으로 유혹하기 위해 사람들의 삶에 개입합니다. 양심을 길들이려고 노력하는 수많은 목소리에 자기 목소리를 뒤섞어 놓습니다. 일탈을 경험하기 위해 “유혹받는 데 자신을 맡기도록” 부추기는 메시지가 여러 곳에서 주어집니다. 예수님의 체험은 유혹이란 하느님의 길과는 다른 길을 택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이것을 해버려. 그래도 아무 문제 없어. 나중에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실 거야! 그러니 걱정 말고 만족의 하루를 보내자! (…)” “하지만 이것은 죄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사소한 일, 아무것도 아닌 일이야.” (이처럼 하느님의 길과) 다른 길은 우리에게 자기만족의 느낌을 주는 길이며, 삶 그 자체만을 위한 삶의 만족의 느낌을 주는 길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착각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더 멀어질수록, 우리 존재의 커다란 문제 앞에서 우리가 무방비 상태이고 무력하다는 것을 우리는 머잖아 느끼게 됩니다.
뱀의 머리를 짓밟으신 분의 어머니이신 동정 마리아께서 이 사순시기 동안 유혹 앞에 우리가 깨어 있도록, 이 세상의 어떤 우상에도 굴복하지 않도록, 악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예수님을 따르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길 빕니다. 그러면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교황 프란치스코, 2020년 3월 1일 삼종기도, *출처-바티칸 뉴스 한국어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