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카타리나(4월 29일)

이탈리아 시에나 출신 성녀 카타리나의 본명은 카테리나 베닌카사Caterina Benincasa(1347~1380년)이다. 교회의 신비가요 박사이며 이탈리아와 유럽의 수호 성녀이다. 성녀는 5세나 6세 무렵 첫 환시를 본 이후 순결 서약을 하였고, 이후 환시 체험을 자주 하였으며 1375년에는 오상五傷의 은혜까지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환시에서 받은 지시에 따라 여러 곳을 직접 다니거나 편지로 고위 정치 지도자들이나 성직자들, 수도자들, 예술가들이나 평범한 이들에 이르기까지 회개와 화합, 평화를 두루 역설하였던 성녀이다. 도미니코 수녀회에 입회하려 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도미니코회 3회 회원으로 남았지만, 수녀 못지않게 봉헌된 삶을 살았다. 편지글 중에 1368년 21세에 ‘영적 혼인’이라는 신비스러운 체험을 했다고 하는 글이 있다.

‘영적 혼인’의 체험 이후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카타리나는 산타 마리아 델라 스텔라라는 병원과 같은 곳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에 대한 봉사 활동에 투신하였다. 특히 1370년의 대 기근과 1374년의 흑사병이 전 유럽을 휩쓸던 시기에는 나병이나 흑사병 같은 무서운 전염병에 걸린 자들도 정성껏 간호해 주고, 다른 사람의 집까지 청소해주는 등 그녀의 열성이 주위 사람들에게 탄복을 자아내게 했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그녀로부터 영적인 권고와 지혜를 구했다. 카타리나는 그들을 가족이라고 불렀고, 그들은 그녀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카타리나를 시기하여 근거 없는 모함을 하기도 하였으나 그녀는 조금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친절히 대하며 봉사를 하였다.

카타리나의 사회적 영향력이 점차 커져 갔고, 카타리나는 활동 범위를 넓혀 정치적·사회적 긴장이 고조되는 시점에 시에나의 정치적 라이벌 가문들의 화해를 촉구하는 등 정치인들 간의 중재에 나서기도 했으며, 동료들과 함께 이탈리아 북부 및 중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성직자들의 개혁을 촉구하는 한편 이는 하느님에 대한 온전한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녀의 활동은 주로 만남을 위한 여행과 대필이나 직접적인 편지글을 통해서였다.

제1차 십자군 원정(1096~1099년)의 성공 이후 날로 번창해가던 교황의 권력과 세력에 맞선 세속 권력이 마침내 필리프 4세(1268~1314년)를 필두로 교회에 모욕을 가해왔고, 교황권이 날로 쇠퇴하여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이전되고 사실상 교황이 아비뇽에 감금되거나 살해되기까지 하였던 시절, 성녀 카타리나는 아비뇽 시절의 마지막 교황이라고 할 수 있는 그레고리오 11세를 아비뇽 유폐에서 벗어나도록 도왔다. 이후 프랑스 왕국이 다른 교황을 내세우는 등 교회의 분열 조짐 앞에서는 우르바노 6세 교황을 도와 교회의 일치를 추구하기도 하였다.

성녀는 엄격한 극기와 금식을 행하며 지냈는데, 1377년 초부터 교황의 허락을 받아 시에나 시 외곽에 있는 벨카로 고성을 인수하여 엄격한 규율을 준수하는 수녀원으로 개조하여, 그곳에서 몇 달을 지내기도 하였다. 병을 얻은 성녀는 1380년 초부터 음식은 물론 물조차 입에 대지 못했고, 같은 해 2월 26일 다리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카타리나는 1380년 4월 29일 뇌졸중으로 8일 동안 고생한 끝에 “성혈, 성혈, 성혈”이라고 중얼거리다가 33세의 나이에 로마에서 선종했다. 교황 비오 2세께서 1461년 6월 29일 성인품에 올렸다. 1970년 8월 3일에는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카타리나와 아빌라의 테레사에게 교회박사라는 칭호를 부여하기도 하였는데, 이 칭호를 부여받은 영광을 누린 여자 성인은 이 두 사람이 최초이다. 1866년 4월 13일 교황 비오 12세는 시에나의 카타리나를 로마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선언하였고, 1939년 6월 18일에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와 함께 이탈리아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지정되었다. 1999년 10월 1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카타리나를 스웨덴의 비르지타, 십자가의 테레사 베네딕타와 함께 유럽의 수호성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포하였다.

그의 저서로는 임종 전 약 18개월 동안 쓴 26가지의 기도문, 대부분 대필자가 받아 쓴 것으로 보이는 382통 정도의 편지글, 그리고 1377년 10월부터 1378년 11월 사이에 카타리나의 탈혼 시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을 적은 기록으로 보이는 <하느님의 섭리에 관한 대화집> 등이 있다. 그녀의 상징은 순결을 뜻하는 백합이다.

고해신부였던 카푸아의 레이몬드 사제에게 보낸 편지 중 하나에서 성녀는 “너는 나에게 있어 네가 무엇인지 아느냐, 그리고 네게 있어 내가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내 딸아! 나는 존재하는 이, 너는 존재하지 않는 자다.”라고 쓴다. 성령께 드리는 성녀의 기도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성령이시여, 제 마음에 오소서. 당신의 능력으로 저를 참 하느님이신 당신께로 이끄소서. 저에게 사랑과 두려움을 허락하소서. 오 하느님, 온갖 악한 생각에서 저를 지켜주소서. 당신의 지극히 달콤하신 사랑으로 저를 덥히시고 불타오르게 하소서. 그로부터 모든 수고가 가벼워지리이다. 저의 모든 사목 활동에 저를 지켜주시고 도와주시도록 청하나이다.(Spirito Santo, vieni nel mio cuore, per la tua potenza tiralo a te, Dio vero. / Concedimi carità e timore. / Custodiscimi o Dio da ogni mal pensiero. / Inflammami e riscaldami del tuo dolcissimo amore, / acciò ogni travaglio mi sembri leggero. / Assistenza chiedo ed aiuto in ogni mio ministero. / Cristo amore, Cristo a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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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영원한 하느님이시여, 영원한 삼위 일체시여! 신성의 일치를 통하여 당신은 독생 성자의 피를 한없이 보배롭게 만드셨습니다. 영원한 삼위 일체시여, 당신은 깊은 바다와 같아서 내가 거기에서 더 찾으면 찾을수록 더 많은 것을 발견합니다. 또 더 많이 발견하면 할수록 더 찾고 싶은 갈망을 느낍니다. 당신은 영혼을 채워 주시지만 그것으로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영원한 삼위 일체시여, 당신은 당신의 끝없는 심연 속에서 영혼을 채워 주실 때 영혼이 언제나 당신을 찾아 배고파 하고 또 목말라 하며 당신의 빛 안에서 빛이신 당신을 보는 것을 갈망하게끔 채워 주십니다.

오, 영원한 삼위 일체시여, 나는 내 지성의 빛으로 당신의 빛 안에서 당신의 심연과 당신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맛보았고 또 보았습니다. 그리고서 당신 안에 있는 저 자신을 바라볼 때 저는 바로 당신의 모상임을 알았습니다. 영원한 아버지시여, 이것은 당신의 힘과 당신 외아드님의 속성인 지혜를 나에게 주심으로 된 것입니다. 당신과 당신의 성자께로부터 발출하시는 성령께서는 제가 당신을 사랑할 의지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삼위 일체시여, 당신은 창조자이시고 저는 피조물입니다. 저는 당신께서 성자의 피로 말미암아 제 안에 이루신 새 창조를 보고 당신이 피조물의 아름다움에 얼마나 심취하여 계신지를 당신 빛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오 심연이시여, 오 영원한 삼위 일체시여, 오 하느님이시여, 오 깊은 바다이시여, 당신은 당신 자신을 저에게 주셨으니 이보다 더 위대한 것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타오르는 불이시며 꺼지지 않는 불이십니다. 당신의 열기 속에 영혼의 온갖 자아 사랑이 삼켜지고 모든 차가움이 없어집니다. 당신은 제가 당신의 진리를 알게 하시는 빛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밝혀 주십니다.

저는 이 빛의 거울에서 당신을 최고선, 만선을 초월하시는 선, 복되신 선, 모든 이해를 초월하시는 선, 더없이 고귀하신 선, 모든 미를 초월하시는 미, 그리고 모든 지혜를 초월하는 지혜로서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지혜 자체이시고 사랑의 불로 당신 자신을 사람들에게 친히 내어 주신 천사들의 양식입니다. 당신은 저의 온갖 벌거벗음을 덮어 주고 감싸 주시는 의복이십니다. 당신은 쓴맛이 조금도 없는 감미이시므로 그 감미로움으로 배고픈 저희를 먹이십니다. 오, 영원한 삼위 일체시여!(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동정녀의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대화집’에서, Cap. 167, Gratiarum actio ad Trinitatem: ed. lat., Ingolstadii, 1583, f. 290-291 교유 성무일도 독서기도 제2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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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성녀 카타리나(4월 29일)

  1. 성녀 카타리나의 일대기 요약을 잘 읽었습니다.
    너무
    빨리 돌아가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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