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교육과 살레시오

행사 당일 교황님을 맞이하는 살레시오회 총장 앙헬 페르난데즈

*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2015년 6월 21일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돈 보스코가 청소년들과 함께 살았던 살레시오회의 소위 모원母院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 토리노의 발도코를 방문하시어 살레시오 가족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신 즉흥 연설이다. 미리 써 왔던 원고를 마다하시고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말씀을 하고자 하셨던 교황님의 연설은 살레시오 학교 졸업생으로서 당신의 체험을 담아 살레시오회의 삶과 교육이 지녀야 할 요체를 질박하게 밝혀주신다는 점에서 오래도록 깊이 간직해야 할 내용이며 대단히 의미 있는 문건이다.

사랑하는 살레시오 가족 여러분.

여러분에게 드릴 말씀에 대해 많이 생각했고 이렇게 써 왔습니다. 그런데 너무 형식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총장님에게 전해 여러분이 받아보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앙헬 총장 신부님을 고해소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이분에게 고해를 보러 간 것은 아니고 신부님이 내게 고해를 보러 오신 것도 아닙니다. 루한에 계시는 성모님 순례 때였습니다. 신부님은 10월, 당시 이제 막 아르헨티나에 도착했었습니다. 살레시오 관구에 계시던 한 친구가 이분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백만에 가까운 젊은이들이 48시간 동안 순례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어떤 고해자가 떠나자 신부님 일행이 다가와, “새로운 관구장”이라고 말했고, 나는 “아, 이분이 우리에게 명령하러 오신 그분이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좋은 관계를 맺었습니다. 힘든 순간에도…우리가 함께했던 힘든 순간에도 이 신부님은 항상 겸손과 섬김으로 제게 감명을 주었었습니다. 기억하기에 언젠가 어느 본당에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었는데…신부님은 모든 것에 서명하셨습니다.

그렇게 신부님은 임기를 마치고… 스페인에 돌아가기 위해 여기 총회에 오셨습니다. 그렇지만 총회가 덫을 놓고 말았죠…물론 성령과 함께 말이죠.

저는 여러분에게 살레시오 회원들과 함께한 저의 체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가족은 살레시오회원들과 매우 밀접한 가족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아르헨티나에 도착하자마자 저의 아버지는 이탈리안 성당에 있는 살레시오 회원들을 찾아갔습니다. 성 카를로 본당의 도움이신 마리아 성당, 거기서 아버지는 많은 살레시오회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떤 살레시오 회원이 창설한 축구팀에 바로 푹 빠졌습니다! 성 카를로 본당의 성당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서 그 살레시오회원은 길거리 아이들과 함께 금세 성모님의 색깔인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축구팀을 창설했습니다. 제게는 여러 번 우승하기도 한 아르헨티나 팀이 최고의 팀입니다.…(아버지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던 엄마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와 우리 아빠를 평생 뒷바라지해주셨던 신부님의 주례로 결혼했습니다. 그 신부님은 파타고니아의 살레시오 선교사로서 멋진 분이시고 살레시오 가족의 위대한 고해 사제입니다. 제게 세례성사를 주시기도 하셨던 그 신부님께 저도 고백성사를 보러 가곤 했습니다.…그 신부님께서 저의 성소를 도와주셨습니다. 신학교에서 예수회로 옮겨갈 때 저를 도와주셨었습니다.

저는 살레시오 가족들에게 무척 감사를 드립니다. 다섯째를 낳고 엄마가 1년간 몸이 마비되셨었는데, 그때 우리 큰애들이 살레시오 기숙학교로 보내졌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마쳤고, 거기서 저는 성모님 사랑을 배웠습니다. 살레시오 회원들은 아름다움과 일(alla bellezza, al lavoro)로 저를 형성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의 카리스마 중 하나입니다. 사랑으로 ‘감성(정서, l’affettività)’을 형성하였고, 아이들의 감성(정서)이 성숙해 가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살레시오회의 위대한 고해 사제들, 위대한 자비의 사제들을 기억합니다. 성당에는 항상 많은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신부님도 돌아가셨지만 매년 5월 24일이면 항상 도움이신 마리아께 갔습니다. 꽃을 가져갔고 성모님께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여러분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제게 항상 생각하도록 하는 것은 감성(l’affettività)입니다. 저는 돈 보스코께서 소년들에게 ‘감성’을 교육할 능력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돈 보스코께서 자기의 감성을 교육해주었던 어머니를 모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착하고 사랑스러우며 강한 엄마.(Una mamma buona, carina, forte) 크나큰 사랑으로 자기 심장인 돈 보스코를 교육했습니다. 맘마 마르게리타 없이는 돈 보스코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절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남녀 살레시오 회원들, 모든 살레시오 가족들이 한 소녀를 교육한다고 할 때, 맘마 마르게리타가 무엇을 하셨는지, 아들의 마음을 어떻게 형성하였는지를 보도록 해 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것도 있습니다. 당시 19세기 말 이탈리아의 이 지역(토리노)은 메이슨(masonica)이 횡행하던 시기로서 사제를 잡아먹고, 반성직주의, 악마적, 매우 악마적인 시대였습니다. 토리노는 그렇게 악마적인 곳 중 하나였지만, 또 여기서 (역설적으로) 얼마나 많은 성인이 배출되기도 하였는지요. 생각해야만 합니다! 주님께서는 여기서 태어난 가족에게 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것들이 나아졌습니다. 컴퓨터를 비롯하여 많은 것들…그렇지만 젊은이들의 상황은 거의 같습니다. 돈 보스코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일도 없고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길거리에 있던 당시의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셨습니다. 그는 자기 사목에 위험을 무릅썼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가 그를 두고 입방아를 찧었습니다. 위험을 무릅쓴 사목에서 돈 보스코는 “이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2등급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이곳 이탈리아의 25세 이하 젊은이들 40%가 실업자입니다. 일도 하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살레시오회원들은 돈 보스코께서 당면했던 것과 똑같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남녀 젊은이들을 붙들어야 합니다. 돈 보스코께서 무엇을 했습니까? 스포츠, 스포츠는 여러분에게 사회성을 길러 주고 건전한 경쟁을 하게 하며 모두 함께 일하는 아름다움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교육입니다. 돈 보스코는 뭔가 거창한 것을 말씀하지 않았었습니다. 생계 수단을 가르치는 작은 학교들을 하셨습니다. 그러한 살레시오 학교들, 예술과 공예(de arte y oficio), 아이들이 생계 수단을 배우던 곳.

오늘날 살레시오회원들은 이러한 생계 수단을 시급하게 가르칠 능력이 있습니까? 정말, 저는 모릅니다. 몰라서 이렇게 묻습니다. 6개월 안에 전기기술자가 되거나 배관공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교육, 위기를 가늠하는 교육. 이러한 오늘날의 길거리 아이들이 – 저는 제 조국의 경우를 생각합니다 – 즉시 진학을 위한 고등학교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뭔가 일거리가 되는 것을 주도록 합시다. 비록 내일 일이 되지는 않더라도 당장 오늘 일이 되는. 오늘날 길거리 아이들에게 이런 비상시국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짧은 시간에도 가능한 실질적인 생계 수단, 그리고 두고 봅시다. 이 40%는 뭔가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도전을 살레시오회의 창의성이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기쁨, 살레시오적인 기쁨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이 기쁨은 제가 살레시오에서 배웠던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모든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아름다운 기쁨. 부추김(책려策勵, l’animazione), 교육. 길거리의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줍시다. 배 속이 비어서는 하느님을 찬미할 수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창의성으로요. 교육은 위기의 잣대입니다. 이것이 제게 떠올라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아까 언급했던 축구팀 창설자) 로렌조 마짜Lorenzo Mazza라는 신부님이 무엇을 하셨을까요? 이 신부님은 1908년에 축구팀을 결성하셨습니다. 스포츠. 신부님께서는 길거리 아이들에게 일종의 신비스러움을 주셨습니다. 마약 판매꾼이 되거나 마약 의존에 빠지고 말 아이들, 또 자살할 많은 애들…그러나 뭔가 살아가게 할만한 기쁨. 이것이 제게 떠올라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교회를 적대시하는 나쁜 위기의 순간이지만 돈 보스코는 세 가지 하얀 사랑, 곧 성모님, 성체, 교황(tre amori bianchi: la Madonna, l’Eucaristia e il Papa)에 대해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 가지 사랑, 돈 보스코는 성모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절대 자기 엄마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많습니다.……저를 너무 아프게 한 사건 하나를 기억합니다. 1980년대에 코르도바에 있는 가톨릭 대학의 후원자들을 만나기 위해 벨기에에 갔었습니다. 교수들의 혼배에서, 열심한 신자들, 가톨릭, 네 어린 자녀들과 함께 저녁 만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식탁에서 그들이 그리스도론이나 신학, 교회의 상황 등에 관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오늘날 성모님은 안 돼. 이런 단계는 극복한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착한 부부이기는 했지만……. 오늘날에도, 물론 여러분들 중에는 아니지만, 부끄러워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돈 보스코가 말했던 것처럼 성모님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돈 보스코의 첫 번째 사랑은 성모님 사랑이었습니다. 돈 보스코는 많은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성모님께 기도하면서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두 번째 사랑은 성체입니다. 오늘날 살레시오 가족 안에서 전례가 잘 실천되어 나가고, 잘 설명되어 애들이 성체의 신비에 들어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살레시안들이 자주 거행하는 성체강복도 있지요. 이것은 좋은 일입니다. 교황도 하니까요. 왜냐하면 돈 보스코가 교회를 사랑했고, 성모님을 사랑했으며, 자기 엄마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축성된 여성 여러분은 교회의 여성의 신비입니다. 교황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어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인 베드로를 교회 신랑의 대표로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황을 사랑하는 그 하얀 사랑의 뒤에는 교회 사랑이 있습니다.

저는 돈 보스코가 일련의 스캔들을 어떻게 감추거나 설명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교회를 사랑했는지는 압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어머니, 성모님-어머니, 마르게리타-어머니의 연관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소녀들이 어머니가 되도록 양성합니다만, 그러한 양성은 자녀들이 사랑 안에서 성모님과 교회를 사랑하며 성장해가도록 하는 양성이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이 제게 “교회의 여성에 관해 더 강한 결정은 왜 하지 않습니까?” 하고 묻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야의 책임자를 여성으로 임명하는 것만이 일종의 더욱 강한 결정입니까? 여러분에게 그렇게 말씀드리렵니다. 교회 안에서 여성은 성령 강림절에 성모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계셨던 것과 같은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성모님 없이 사도들은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원하셨습니다.

세 가지 하얀 사랑을 잊지 마십시오. 성모님에 대해서 말하고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그것도 잘 거행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거룩한 어머니 교회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안쓰럽게도 교회는 매일매일 공격을 받습니다.…거기에서 교회 안 여성의 역할을 배웁니다. 돈 보스코의 세 가지 사랑은 언제나 이 길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 돈 보스코는 언제나 도움이신 마리아께 기도했고 그렇게 앞으로 나아갔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돈 보스코는 그리 많이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살레시오 경험은 제가 이상에서 말씀드린, 제가 기숙학교에서 가졌던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나머지는 공립학교에서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살레시오 가족과 밀접했습니다. 도움이신 마리아. 저는 “저에게 도움이신 마리아 강복을 주십시오.”라고 살레시오 회원들에게 요청했었습니다.…

이러한 체험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살레시오회는 제가 두려움과 강박들이 없이 성장하도록 해 주었습니다. 기쁨과 기도 안에서(nella gioia, nella preghiera)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은사(carisma)는 최고의 활동입니다. 거리를 보십시오. 애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쓴 결정들을 내리십시오. 돈 보스코가 그랬던 것처럼 두려움을 가지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해 여러분들이 하시는 일들에 대해 매우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선교에 대해서 무척 감사드립니다. 아프리카에 감추어진 많은 살레시오 회원들……파타고니아 초창기 시대에 당시 복장으로 그 수녀님들이 그런 복장으로 어떻게 말을 탔었을지, 그곳에 갔던 수녀님들, 파타고니아를 복음화하셨던 그 수녀님들을 생각합니다. 파타고니아의 살레시오회 순교자들……제가 파타고니아에 집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돈 보스코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파견했습니다. 초창기 살레시오 회원들이 매우 좋은 일을 해냈습니다. 아마도 총장 신부님께서는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와 함께 아파레시다에서 어디서 시복식을 거행했으면 좋을까를 논의하기 위해 저희에게 오셨던 때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많은 졸업생이 참석할 수 있도록 부에노스 아이레에서 하게 되면 좋겠다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반대했습니다. 제가 파타고니아에서 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베르토네 추기경이 시복식을 거행했었지요. 기억합니다.…들판이었지요. 이러한 구체적인 것이 없는 살레시오회원들……그들에게는 뭔가가 빠져있습니다. 살레시오회원은 구체적입니다. 문제를 보고, 생각하고, 붙듭니다. 끝에 제가 “대주교로서 허락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선교정신(missionarietà)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파타고니아의 한 선교 지역이 사제들에게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거기 살레시오회원들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15년간 복음주의자들이 들어갔습니다.……그곳 사람들은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지만 고립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서 개신교 목사들에게 갔습니다. 거의 개종했다고 봐야겠지요. 어떤 교양있는 여성이 – 살레시오회원들이 있지는 않았지만 거기 공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본당 신부가 돌아왔을 때 그리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 신자들은 자기들을 버렸다고 그 본당 신부를 공격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본당 사제는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서 나가는데 그 여인이 신부님을 다시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도움이신 마리아 성상을 보여주며 “저는 이제 복음주의 신도입니다. 그렇지만 이 성상만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보지 못하도록 숨겨놓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선교입니다. 여러분이 교회 전체를 위해 하신 것에 대해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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