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의 첨탑 동상에 관하여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 첨탑 동상

살레시오회의 자랑인 토리노의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 꼭대기에 모신 성모님은 성당의 이름이 된 도움이신 성모님일까, 아니면 돈 보스코께서 지극한 신심을 보였던 원죄 없으신 성모님일까? 사실 많은 이들이 원죄 없으신 성모님 상이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 꼭대기에 올라가 계신다고 믿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도대체 어떤 성모님일까?

우선 원죄 없으신 성모님이라고 믿는 이들이 접했을 법한 내용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부터 일 것이다. 『돈 보스코가 토리노에 도움이신 마리아의 대성당을 지었을 때 그 성당 중앙 꼭대기에는 ‘원죄 없으신 마리아’ 상을 모셨다. 그 성당에 교황 비오 9세(1846~1878년 재위)의 방문을 앞두고 모든 이를 위한 전대사를 청할 때 돈 보스코는 “저희는 ‘신자들의 도움이신 마리아’라는 이름 아래 ‘원죄 없으신 동정녀’께 봉헌된 토리노의 대성당 방문에 앞서 모든 신자에게 전대사를 주시도록 청합니다.”라고 했다.(필립 파스쿠찌Philip J. Pascucci 신부, 도움이신 마리아를 향한 돈 보스코의 신심Don Bosco’s Devotion to Mary Help of Christians)』 바로 필립 파스쿠찌 신부님의 소책자를 필자가 번역한 내용이니 필자 자신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돈 보스코 전문가로 명성이 높으신 아서 렌티(Arthur J. Lenti, SDB, 1923~2022년) 신부 역시 『1867년 5월 성모님 동상(외모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이 작은 뾰족탑 위에 세워졌으며, 원래 계획했던 첨탑 대신에 목조 구조가 원형 지붕 위에 있었다. 동상은 은인들의 기부로 주조하여 금도금을 하였다. 새로 부임한 알렉산드로 리카르디 네트로 대주교가 1867년 11월 17일 이 동상을 축성하였다.(아서 렌티, 돈 보스코 역사와 정신, 제4권 153쪽)』라고 기술하면서 원죄 없으신 잉태의 성모님의 동상인 것처럼 암시한다. 권위 있는 렌티 신부는 친절하게도 “「돈 보스코 전기」는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마리아 성당의 계획과 건축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영어판 「돈 보스코 전기」 Ⅶ, 223~228, 276~280; Ⅷ, 2~3, 57~64, 422; Ⅸ, 118~140을 볼 것(아서 렌티, 돈 보스코 역사와 정신 제5권, 145쪽, 각주 44)”이라는 언급을 남겨놓으면서 더 읽을거리를 남겨놓는다. 과연 돈 보스코는 이에 관하여 어떤 말씀을 남겨놓았을까? 돈 보스코께서는 원죄 없으신 동정 마리아의 상이 첨탑에 올라가 계신다고 말씀하고 계실까?

답부터 얘기하자면, 돈 보스코는 그 상이 도움이신 마리아 상인지 원죄 없으신 성모님의 상인지 직접적인 말씀을 남기시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러 정보에 의할 때 ‘사보나에서 널리 공경받던 자비의 성모님 상’이라는 것이 정답이고, 그렇게 알려진다. 그렇지만 그 문헌적 근거는 나로서 아직 찾을 길이 없다.(1875년 첫 번째 살레시오 회원들이 남미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떠나기 위해 승선한 사부아Savoie라는 배에 “사보나의 자비의 성모 수녀 15명이 있었다”는 기록이 여러 추측을 가능하게 해 줄 뿐이다.-참조. 아서 렌티, 돈 보스코 역사와 정신, 제6권, 95쪽) 현재 도움이신 마리아 대 성당의 오라토리오 책임자인 마이크 페이스Mike Face 신부는 2021년에 제작하여 전 세계 살레시오에 보급한 성전 소개 동영상에서 “많은 이들이 무염시태 성모님으로 잘못 알고 있다”면서 이를 명확히 한다. 마이크 신부는 성전 소개 동영상(http://ibosco.net/t3menu3_2/122431)에서 성전 꼭대기를 소개하면서 영어로 “Our Lady of Mercy venerated in Savona, Italy”가 모셔져 있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번역하면 “이탈리아 사보나에서 공경받는 우리 자비의 성모님”인데, 우리말에서는 “이탈리아 사보이 지방에서 널리 경배되던 자비의 성모님 상”이라고 번역하여 자막을 첨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사보나’라고 정확히 발음하고 있는 마이크 신부의 말을 ‘사보이’라고 잘못 알아듣고 오해하여 번역하지나 않았는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사보나Savona는 이탈리아 북부 리구리아 주州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도 살레시오회에서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고향인 사보이아Savoia(사보이 공국의 주도主都)가 너무 익숙한 나머지 사보나를 사보이로 오해하고 그렇게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보나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1500년대부터 잘 알려진 성모님의 발현지이자 도움이신 마리아 축일과 관련이 있고, 무엇보다도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 첨탑의 동상이 사보나의 성모님에서 비롯되었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보나에서 공경받던 ‘자비의 성모님’에 대한 배경을 조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 말로 ‘Nostra Signora della Misericordia(=영어 Our Lady of Mercy)’는 사보나에서 1536년 3월 18일에 농부였던 안토니오 보따Antonio Botta에게 처음 발현하신 성모님으로서 돈 보스코 이전에 이미 사보나의 수호로 모셔졌으며 공경을 받으시던 성모님이다. 흰옷을 입고 빛으로 휘감으신 성모님께서는 안토니오에게 나타나셔서 고해 신부에게 가서 토요일 세 번에 걸쳐 단식하고 하느님과 하느님의 어머니께 영예를 드리며 당신께서 발현하신 곳으로 행진할 것을 알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네 번째 토요일에 다시 돌아오라 하신다.

사보나의 성모 발현 성당 전경

그렇게 해서 성모님의 말씀을 모두 준수한 안토니오는 1536년 4월 8일 네 번째 토요일, 곧 성지주일 전야에 원래의 성모님 발현지로 돌아갔는데, 그때 성모님께서는 안토니오에게 다시 발현하셨고, 그동안의 노고를 칭찬하시며 다시 세 번의 토요일 동안 단식할 것과 교구 내의 ‘형제회Confraternities’를 중심으로 새로운 행진을 명하시는 한편 죄와 악습을 버리고 회개하여 신경信經을 따라 살라고 하시면서 “내 아들아, 정의가 아니라 자비다.” 하시는 말씀을 남기셨다. 이러한 발현은 1528년 제노아 공화국에 패배한 후 고통받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사보나에 큰 은총의 기회가 되었으며 이후 매년 3월 18일이 되면 지역 주교는 주교좌 성당으로부터 많은 신자와 함께 안토니오 보타에게 나타나신 성모님의 발현지에 있는 성당까지 행진하는 행사를 벌이곤 하였다. 이 발현지의 성당은 이미 1536년부터 건축되기 시작하여 오늘날 여러 예술가의 작품과 함께 성모님을 공경하는 아름다운 성지로 남았고, 2009년 이탈리아 ‘형제회Confraternities’의 국립 성지로 선포되었다. 그런데, 이 성지는 교황 비오 7세(1742~1823년)께서 1809~1812년에 나폴레옹에 의해서 유배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이때 교황은 자기가 유배에서 무사히 풀려나게 되면 ‘자비의 성모님’ 상에 왕관을 씌어 드리겠다고 서원한 바 있었고, 이후 무사히 풀려난 교황님이 약속을 이행하시어 1815년 5월 10일에 왕관을 쓰시게 되었다. 이 교황님은 당신의 풀려남을 기념하여 5월 24일을 도움이신 마리아 축일로 제정하신 분이기도 하다.

사보나 성당의 왕관을 쓴 자비의 성모상

돈 보스코는 열일곱 살 된 소년 파올로 알베라Paolo Albera(훗날 살레시오회 제3대 총장, 1845~1921년)가 살레시오회에 받아들여진 1862년 12월 어느 토요일 밤(아마도 1862년 12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축일 저녁-아서 렌티) 열한 시까지 성사를 준 뒤에 파올로와 함께 죽을 먹으면서 더 아름답고 크고 장엄한 새로운 성당을 짓자면서 그 성당을 도움이신 마리아 성당이라 부를 것이라는 비밀을 말하였고, 이어서 조반니 칼리에로에게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지냈으나 이제는 성모님께서 도움이신 분의 이름으로 경배하기를 원하신다고 말하였으며, 이렇게 모든 아이를 다 수용할 수 있는 수도회의 어머니 성당이 될 큰 성당을 짓겠다는 것이 도움이신 마리아 대성당에 관한 돈 보스코의 최초 언급이며 성당 건축의 동기인 것으로 알려진다. 성당 건축허가를 받으면서 그 명칭 때문에도 돈 보스코는 정치적으로 많은 곤란을 겪어야만 했으나 그 명칭을 버리지 않았다.(참조. 테레시오 보스코, 돈 보스코, 550-554쪽) 그렇게 하여 시작한 성당 공사는 1863년 가을부터 1864년 3월까지 터파기가 진행되었으며, 『1865년 4월 27일 사보이의 아메데오 왕자의 입회하에 초석을 놓았고, 1868년에 (6월 9일 리카르디 대주교에 의해서) 축성식을 가졌다.(영문 위키피디아)』 성당의 건축 기금마련을 위한 헌금과 여러 기적, 그리고 돈 보스코의 갖은 고생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이다.

돈 보스꼬께서 성당에 대해 처음 말을 꺼낸 뒤로부터 대략 5년쯤 뒤인 『1867년, 돔의 가장 꼭대기에 커다란 성모님의 동상이 올라갔다. 이것에 대해 돈 보스코가 직접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대략 4m 높이에 12개의 별을 머리에 이고 있는 형상의 금을 입힌 청동상이다. 햇살이 길게 퍼져나갈 때 멀리서 바라보면 눈부시게 빛을 낸다. 마치 ‘나는 내 아들들의 기도를 듣기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은총을 풍성히 내리고 축복을 주기 위해서 이곳에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듯하다.”(테레시오 보스코, 돈 보스코, 577쪽)』

이를 두고 다른 기록은;

『이는 토리노의 어떤 착한 부인의 선물이다.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당신께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여, 당신의 착한 자녀들을 축복하소서.’라고 당신께 봉헌하는 신자들을 축복하고 계신다.(알도 지라우도/쥬셉페 블랑카르디, 돈 보스코 여기 살다Don Bosco Lived Here/ Tours and visits based on history, geography and spirituality, 191쪽)』라고 기록하기도 한다.

필자는 이를 두고 마이크 페이스 신부에게 수차례에 걸쳐 첨탑의 동상에 대해 본인이 그렇게 소개한 근거를 조회했는데, 동영상을 제작할 때 이탈리아 신부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과 함께 “사보나에서 공경을 받던 자비의 성모”라는 말에 관한 명확한 근거를 아직 제시하지 못했다. 그 대신 마이크 페이스 신부는 갖은 노력 끝에 돈 보스코 자신의 기록인 “Maria Ausiliatrice con racconto di alcune grazie ottenute nel primo settennio(직역. 처음 7년 동안 얻은 몇 가지 은총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도움이신 마리아)”라는 문서만을 보내왔다. 이 문서로 보아서 돈 보스코는 이 동상에 관해 몸소 다음과 같은 기록만을 남긴다.

『…그다음 작업은 최고 속도로 계속되었으며 1865년에 건물은 지붕까지 마치고 덮개를 씌우고 돔 주변에 포함된 부분을 제외하고 둥근천장을 완성했습니다. 1866년에 돔과 작은 둥근 지붕이 완성되었으며, 주석 도금 구리로 덮고 산화 및 계절의 악천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흰색 납을 칠했습니다. 돔의 둥근 천장을 닫은 돌은 이젠 고인이 되신 에마누엘레 파사티 후작이 설치하였습니다.

1867년에 신자들을 축복하는 모습의 자비의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동상이 완성되었습니다.

토리노의 Boggio 기사騎士의 작품인 이 조각상은 높이가 약 4미터이며 영광스러운 하늘 여왕의 머리 위에 왕관을 형성하는 12개의 도금한 별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련된(두들겨 만든) 구리로 되어 있고, 그 자리에 놓였을 때 그것은 금방 청동색이 되었습니다. 예술 작품을 매우 걸작으로 만들었지만, 어느 정도 떨어져서는 조각상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도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미 여러 면에서 공을 세운 신심 두터운 분이 비용을 담당했습니다. 이제 그 조각상은 밝게 빛나고, 멀리서 그것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태양 광선에 의해 반사될 때, 조각상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또 말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 “나는 달처럼 아름답고, 태양처럼 선택되었다. 그래. 내 자녀들의 간청을 받아들이고,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은총과 축복으로 부요하게 하기 위해 내가 여기 있단다.』

필자로서는 여기까지가 현재 첨탑 동상에 관해 찾을 수 있는 자료들이고 문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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