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학교에 가는가

Don Milani with his pupils in the School of Barbiana

올해는 로렌조 밀라니Lorenzo Carlo Domenico Milani Comparetti(1923-1967년) 신부의 탄생 100주년이다. 밀라니 신부는 이탈리아 피렌체 지역에서 대안교육 운동을 주도하고 반파시즘과 평화운동에 헌신한 분이다. 피렌체의 명망 있는 집안 출신인데, 본인은 물론 가족 누구도 가톨릭이 아니었으나 1943년 회심의 체험으로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다. 신학생 때부터 가난한 이들을 깊이 사랑했고 전쟁에 반대해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에 나섰다. 파시즘이 지배하는 시대에, 그는 교육 운동을 실천하며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편에 섰다. 짐작할 수 있듯이, 밀라니 신부는 교회와 정부와 자주 충돌했고 평온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을 받으며 처음부터 쉽지 않은 사제 생활을 해 나갔다.

삶을 돌보는 교육

밀라니 신부는 사제 서품을 받고 처음 간 본당에 ‘성 안도타 민중 학교’를 세웠다. 제도 교육과는 확연하게 다른 새로운 교육 방법으로 가난한 아이들과 함께했다. 그는 언어교육을 강조했다. 그 자신이 여섯 가지 언어를 할 수 있어서였기도 했지만, 글을 모르면 세계도 읽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문맹인 사람들은 언어로 새로운 세상을 알아갔다. 자기 자신을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은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의 권리를 분명하고 설득력있게 전달하는 수단이다. 게다가 언어는 타인을 만나 소통하고 연대할 때 필수적인 도구이다. 읽기 수업은 세상의 거짓말과 헛소리, 그리고 권력의 위선을 간파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사람이 불편해했다. 바티칸은 공산주의자인 신자들을 파문하면서, 밀라니 신부를 논의 대상에 올렸다. 1954년 바르비아나 본당 발령은 사실상 처벌이고 추방이었다. 전기도 수도도 길도 없는 산악 지대의 가난한 동네였다. 밀라니 신부는 오자마자 마을 묘지로 가서 자리를 샀다. 자신의 자리였다. 그는 바르비아나 사람들과 함께 생명과 죽음을 나누며 완전히 하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변방의 동네가 밀라니 신부에게는 삶과 사명이 되었다. 주민 대부분이 문맹인 것을 알고는 학교부터 세웠다.

통념과 다르게, 교육은 사회계층의 불평등을 그대로 재생산한다. 성공과 지위를 얻기 위한 지식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학교는 이와 다른 종류의 지식과 가치는 가르치지 않는다. 밀라니 신부는 지위를 얻게 하는 지식 습득을 교육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대신, 교육은 ‘서로 돌보는 사회’를 만드는 활동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학교 표어도 “나는 돌본다.”였다. 그는 이것이 지배적인 교육의 폐해에 대한 해독제라고 생각했다. 학교는 365일 내내, 하루 12시간을 개방했다.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운 것은 생명과의 깊은 유대감, 착취, 실업, 부정의, 무관심, 사회적 방관 같은 살아 있는 삶의 문제들이었다.

예언자이자 스승, 밀라니 신부

한 학생의 증언이 밀라니 신부가 찾으려 애쓴 교육의 힘을 보여 준다. “점점 우리는 이 학교가 특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적도 리포트도 낙제도 재수강도 없었다. 학교가 두렵지 않았다. 처음에 우리는 지식 자체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지나면서 알게 된 것은 지식을 사랑하는 것도 이기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밀라니 신부는 더 큰 생각으로 우리를 이끌어 갔다.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내가 장래에 무엇을 하든, 다른 이들에게 봉사하려고 이용하는 것뿐이다”(‘나는 왜 학교에 가는가’, 1963년).

밀라니 신부는 「사목의 경험」(1958년)과 「교사들에게 쓰는 편지」(1967년)라는 저서로도 많이 알려졌는데, 모두 학생들과 함께 쓴 책이다. 사목의 경험은 출간되자마자 교황청 금서 목록에 올랐는데, 얼마 전에야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를 해제했다. 교황은 밀라니 신부의 전집 발간을 기회로 그의 무덤을 찾아 추모했다. 교황은 그를 “교회의 예언자이며 스승”이라 불렀다.

“나는 학교를 사랑합니다. 학교는 현실과 그 배면의 실재를 향한 개방성과 같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그래야 하기는 합니다! 학교가 언제나 이렇지는 않았기 때문에, 구조가 조금씩이라도 변화해야 합니다. 학교에 다닌다는 말은 실재의 다양한 양상에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개방한다는 말입니다. 실재와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학교는 이 실재를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곳입니다. – 우리가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를 배우면 이는 놀라운 비밀입니다! – 이 능력은 끝까지 우리에게 남아 현실에 개방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이것이 위대한 교육자, 사제였던 로렌조 밀라니 신부의 가르침입니다.”(이탈리아의 교사와 학생들에게 한 연설, 2014.5.10)

밀라니 신부는 학교를 일컬어 ‘여덟 번째 성사’라고 했다. 이 때문에 또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굽히지 않았다. 성사.… 그리스도께서 살아 활동하시는 현재적 존재를 드러내는 징표이며, ‘성스러운 말씀’ 혹은 ‘세속의 말씀’이라는 구분 없이 ‘말씀’ 자체이신 하느님의 선물이므로 교육이 바로 성사이다. 「치빌타카톨리카」, 2017.6.17)

행복의 교육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층 더 나아가, ‘지구적 교육 협약’(Global Compact on Education)을 제안해 세계적 차원에서 교육의 쇄신을 호소했다. 우리는 지금 삶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참조점’을 잃어버렸다. 전체성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혼란은 교육의 위기와 결부되어 있다. 교육이란 “인간의모든 측면을 존중하고 온전하게 통합해서, 학습과 일상, 교사와 학생, 부모들, 그리고 시민사회를 묶어 주는” 과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지구적 교육협약 출범을 앞둔 교황 메시지, 2019.9.12)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인간과 생태 환경의 전쟁으로 몰락할 수 있는 세상에서 아이 하나하나를 어떻게 키워 가야 하는가? 미래에 다가올 변화에 대응하려면 무엇보다도, “새로운 보편적 연대와 더욱 환대하는 사회를 만드는 교육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교황은 생각했다.(지구적 교육 협약을 위한 종교와 교육 모임 연설, 2021,10,5)

교육은 인간의 복리와 참된 행복을 증진하는, 그 자체로 선(善)인 ‘본디 가치’를 실현하는 인간 활동이다. 그런데 극심한 경쟁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성공과 능력, 그리고 높은 지위를 획득하기만 하면 되는 교육이 있다. 한국 교육이 그렇다. 여기서는 성과 측정, 시험, 선별을 가능한 한 좁고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이 사회는 교육이 사회 전체의 행복과 복리를 지향하는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액의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풀 수 없는 ‘킬러 문항’을 연습해, 수능시험 1등부터 3000등까지 모조리 의대에 지원하는 사회가 되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인간의 행복을 가장 황폐하게 만드는 교육제도와 그 때문에 가장 큰 고통을 받았던 이들에게 생동하는 행복한 삶의 본연을 보여 준 교육자 밀라니 신부는 암으로 투병하다 44세에 선종했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말은 “아,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네!”였다.(한국천주교 주교회의, ‘경향잡지’, 제115권 제8호 통권 1865호, 2023년 8월호, 4-7쪽)

※글쓴이 – 박상훈알렉산데르, 예수회 사제,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 한국천주교주교회의와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아시아 분쟁 지역 인권 보호 단체 ‘아디’(ADI) 대표로 일한다.(*이미지-wikipedia)

One thought on “우리는 왜 학교에 가는가

  1. 오고 싶은 학교를 만드는게 제 목표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근근히 하루하루 버티는 게 목표가 되어서 참 씁쓸합니다. 더구나 꽃다운 나이에 삶을 포기한 동료 교사의 죽음은 더욱 불편해지는 지금입니다. 최근 소개해주신 책도 참 도움이 되었습니다.
    기껏 1년 조금 넘게 남은 교직 생활의 좋은 길잡이를 해 줄 거라 생각하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실천 중입니다. 생각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으로!
    고맙습니다. 로렌조 밀라니 신부님.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생동하는 삶에 희망을 주는 나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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