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이들은 혹시 부부가 아니었을까?

Roelant Roghman | Public Domain

우리가 부활 대축일 이후에 듣는 복음들 가운데, 특별히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과 부활 제3주일 ‘가’해에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이야기(루카 24,13-35)를 듣는다. 이 성경 내용은 루카복음에만 등장하는데, 복음의 여러 힌트를 종합하고 추론하여 해석하면서 일부 성경학자들은 이 대목에 등장하는 두 제자가 부부였을 것이라는 가정을 내놓기도 한다. 어떤 부부가 엠마오라는 동네에 있던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그 부부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것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루카 24,13)라는 구절로 대목을 시작하면서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하고 말하였다.”(루카 24,18)라는 구절로 두 제자 중 한 사람의 이름을 클레오파스라는 남성의 이름으로 분명히 밝히지만 다른 제자의 이름은 끝내 알려주지 않는다. 이를 두고 영성적인 해석을 하려는 이들은 복음사가가 훗날 이 복음을 읽는 독자들이 각자의 이름을 대입하여 각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함께 걷는 여정의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려 함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이러한 풀이도 참 아름답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요한 19,25)라는 구절에 등장하는 “클로파스”가 루카복음의 “클레오파스”와 동일인이라고 한다면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부부였다는 가정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추론이 된다. 그리고 엠마오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들은 ‘저희와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예수님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루카 24,25)라는 구절도 대단히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렇다면, 루카복음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다른 한 사람은 클레오파스의 아내 마리아가 분명하다.

덧붙여 오늘날 우리가 보는 복음의 장면에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예수님께서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루카 24,17) 그리고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고, 이에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고 다시 물으셨으며, 그다음에 클레오파스가 다시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루카 24,17-21ㄱ) 곧바로 이어지는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루카 24,21ㄴ-22) 하면서 클레오파스가 계속 이야기한 것처럼 읽힌다. 그러나 굵은 글씨로 표기한 부분을 클레오파스의 아내 마리아가 남편의 말을 끊으면서 개입하여 말한 것으로 떼어 나누어 보면 상당히 멋들어지게 말이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특별히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라고 하는 부분은 예수님을 따르던 여성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마리아의 입장일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어떤 한 부부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집에서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루카 24,30)라는 내용 그대로 혼인한 부부의 가정에서 성찬례를 거행하시고 그들에게 부활하신 당신을 보여주셨다는 사실을 굳이 거부하거나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렇게까지 말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렇게 해석하고 나면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혼인한 이들과 함께 인생길을 걸으시고 그들의 가정에 초대받고 싶어 하신다는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을 이 복음으로부터 상기할 수 있게 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가정에 보내는 편지”(1994년)에서 이 구절을 간단히 언급하시면서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생명은 우리를 위한 생명입니다. 여러분, 곧 남편과 아내, 부모와 가족들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만찬에서 가족처럼 함께 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지 않았습니까? 여러분들이 가정에서 화목한 모습으로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 곁에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성찬의 식탁에도 앉을 수 있다면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께서 더욱 위대한 방식으로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빵을 떼는” 순간에야 예수님을 알아 뵈올 수 있었습니다.(참조. 루카 24,35)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집에 들어가 함께 식탁에 초대받으시고자 문밖에서 오랫동안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참조. 묵시 3,20)』 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도 일반 알현(2012년 4월 11일)에서 이 성경 대목을 묵상하시면서 예수님께 “우리와 함께 머무르십시오.”라고 말씀드리고 예수님을 초대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 『친애하는 친구 여러분, 부활하신 분께서는 오늘도, 때로는 문이 닫힌 상황에서까지도, 우리의 집과 마음에 들어오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기쁨과 평화, 생명과 희망이라는 은총을 주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인간적이고도 영적인 부활을 위해 필수적인 것들입니다. 오직 그분만이 감정, 관계, 행동에서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무덤의 돌들을 치워내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한 무덤의 돌은 분열, 적대감, 원한, 질투, 불신, 무관심으로서 끝내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오직 살아계신 주님만이 우리 존재의 의미를 밝혀주시고, 지치고 슬퍼하며 실망하고 희망이 없는 이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십니다.』

혼인과 가정은 예수님의 현존으로 새롭게 된다.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시려는 듯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루카 24,28-29) 한다. 그처럼 우리도 우리 가정에 주님을 모시기 위해 그분을 붙들고 끈질기게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 집에도 들어오시고 우리와 함께 머무르실 것이다.

2 thoughts on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이들은 혹시 부부가 아니었을까?

  1.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부부였을수 있다는 추론이 상당히 신선합니다. 모든 가정이 주님을 모시고 사랑의 성가정이 되길 기원합니다.

  2. “우리도 우리 가정에 주님을 모시기 위해 그분을 붙들고 끈질기게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 집에도 들어오시고 우리와 함께 머무르실 것이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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