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알로이시오 곤자가(6월 21일)

*출처-Jesuits.org

23세로 생을 마감했다.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의 수호성인이며 특별히 순결의 덕을 거슬러 고통받는 이들, 그리고 AIDS로 고통받는 이들의 주보이자 병으로 시달리는 이들이나 그들을 위하여 고생하는 이들의 주보이다. 돈 보스코의 저작물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성인이다.

신성 로마 제국의 먼 친척으로서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명문 귀족 중 귀족이라 할 수 있는 가문의 출신이다. 그 가문에서는 많은 군 지도자나 후작, 황후, 왕비, 14명의 주교와 12명의 추기경을 배출하였다.

성인은 1568년 이탈리아 북부 카스틸리오네 후작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막대한 장자권을 지녔던 분이었으나, 이냐시오 로욜라가 불과 몇 세기 전에 설립했던 당시 신흥 수도회라고 할 수 있는 예수회의 일원이 되고자 하였다. 이는 가문의 극심한 반대와 함께 가난과 엄격한 순명, 독신을 서약해야 하는 것으로서 가문이 허락하는 모든 직위와 유산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너무 젊은 나이에 병사한 예수회 회원으로서 그는 위대한 스승도 되지 못했고 아시아 선교사가 되겠다는 꿈도 이루지 못했다. 예수회 회원으로서 실제로는 마지막 서원을 하지도 못했고 사제 서품을 받지도 못했다. 1591년 6월 20일에서 21일 밤 사이에 스물셋 나이로 죽었다. 많은 동료 예수회 회원들은 그가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남자를 일으켜 로마 병원으로 옮기다가 병에 걸려 목숨을 잃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왕족을 친구로 삼았고, 당시 밀라노의 추기경이자 대주교였던 성인 찰즈 보로메오(St. Charles Borromeo, 1538~1584년)부터 첫영성체를 받았으며, 지금은 교회의 박사로 추대된 성 로베르토 벨라르미노(St. Robertus Bellarmino, 1542~1621년)를 영적 스승으로 삼기도 했었으나 그저 수도회의 평범한 신학생으로 죽었다. 그를 기리는 작가들은 종종 순결의 상징인 백합, 십자가를 든 젊은 신학생, 그가 버린 유산을 상징하는 왕관, 참회와 보속을 상징하는 해골을 옆에 놓은 모습으로 그린다.

성인은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를 당신과의 특별한 관계로 초대하시고 각자에게 고유한 사명을 맡기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이 사명에 투신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성인은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 무너져 내렸다. 누가 내게 항구하도록 약속할 것인가? 세상은 죄의 더러움으로 가득하니 누가 전능하신 분의 진노를 달랠 수 있는가? 매우 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자기 성소에 대해 도무지 생각하지 않는다.…이러한 생각이 우리의 무기력을 일깨우고, 우리가 치러야 할 보속, 성실함과 항구함으로 하느님을 섬기겠다는 결심을 새로이 하도록 한다.(The pillars of heaven have fallen; who can promise me that I will persevere? The world is now full of iniquity; who shall appease the wrath of the Almighty? Very many priests and religious think but little of their vocation… Such thoughts ought to rouse our lethargy and renew our resolution to do penance and serve God with constancy and sincerity.)”라고 말한다.

1991년 성인의 서거 400주년을 맞아 성인과 같은 예수회 신부이자 유명한 정치 운동가요 시인이기도 했던 다니엘 베리건(Daniel Berrigan, 1921~2016년) 신부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저는 극단의 이쪽저쪽, 서약, 서원, 의미들, 심지어 어둠 속에 흘낏 비치는 인燐(phosphoric)의 흔적일지라도 계속 생각합니다. 모두를, 아니 그중 몇 가지만이라도. 어린 소년의 마음 안에 타올랐던 목표가 있었고 선하였으며 감미로움이 있었던 그 마음과 동경, 그리고 희망. 너무 짧아 때를 놓치고 부서져 내린…

엄청난 격차를 견뎌야 했고 싸워야 했던 한 젊은이의 영혼, 너무나도 단순한 아이콘,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눈빛, 오뚝한 코, 시선, 십자가, 조심스럽게 손에 든 백합, 이 땅의 것들을 초월하여 천상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었던.

그는 그를 흠모하는 이들이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더 모질면서도 부드러운 삶, 엄청나게 복잡한 길, 지옥을 통과하는 수많은 우회로를 통해 천국을 얻었을 것…

알로이시오를 민주화하려 들지 말자! 손끝의 우아함, 고상한 정신, 불굴의 용기, 홀로 가야만 했던 선택 정도로 어떤 범주에 가두지 말자. 그가 치러야만 했던 대가, 세상의 신화를 깨부순 거부, 그래서 그가 맞아야만 했던 모습. (가족 문제이기도 한) 신화의 고리를 끊는 것.

이 모든 대가, 내가 아니 우리가 치르는 대가.

위대한 일을 값싸게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초라해지는 법이 없는 승리.

[I keep pondering Aloysius, the contrast, the covenant, the vow, the meaning. Even a phosphoric trace in the dark. All or any of these. The heart and longing and hope that arose in him from a small boy, a life of purpose, goodness, sweetness; and all so brief, crushed out of due season… / All too easy to make of this youngster, fighting for his soul’s ransom against enormous odds, an icon just short of bizarre, carefully and studiously remote, nose in the air, rapt gaze, crucifix, lilies delicately in hand, cleaving his way to heaven with scant interest or attention to mere earthlings. / He was tougher than his would-be admirers would have him, both tougher and more tender, enormously more complex, his heaven won by way of many a detour—through hell… / Let us not attempt to democratize Aloysius! No leveling this one; elegance to the fingertips, nobility of spirit, a relentless fiery courage, a choice to go it alone. Then the price he paid, declining the myth of the world as to its claim on such as he. Breaking the mythological clutch (a family affair as well). / The price of all this. (The price we [I] renege on). / As though the great things can be cheaply won; and not turn paltry in the winning.]」

1987년 요한 바오로 2세는 미국 방문 중에 AIDS 환자와 그 가족들을 특별 방문하는 기회를 가져 “하느님은 차별 없이, 제한 없이 여러분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 아픈 여러분, 에이즈로 고통받는 여러분, 에이즈 관련 콤플렉스로 고통받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 아픈 이들의 친척과 친구들, 그리고 그들을 돌보는 이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무조건적이고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었는데, 이로부터 몇 년 뒤인 1991년 성인의 서거 400주년을 맞아 예수회는 에이즈 환자와 그를 보살피는 이들을 위한 주보로 성인을 지정해주도록 청원하여 교회의 승인을 얻었고, 같은 시기에 캘커타의 성녀 마더 테레사 수녀님께서도 에이즈 환자를 보살피는 병원을 열어 당시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사목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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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결한 몸과 정신을 간직하기 위하여 성인의 중재를 청하는 기도

오 복되신 알로이시오, 천사의 덕으로 단장하신 분이시여, 당신께 감히 다가가기에도 합당하지 않은 제가 특별히 저의 영혼과 몸의 순결을 청하오니 당신 천사의 순결로 저를 이끄시어 흠 없는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 동정녀 중의 동정녀이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어머니께서 모든 끔찍한 죄에서 저를 지켜주시게 하소서. 제가 결코 불결한 죄의 얼룩으로 더럽혀지지 않게 하시고, 제가 유혹 중에 있을 때나 죄에 떨어질 위험에 있을 때면 저를 악한 생각과 부정한 욕망에서 멀어지게 하시고, 다가올 영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기억하게 하시며, 제 마음 깊숙이 하느님을 향한 거룩한 두려움을 간직하게 하시고, 하느님 사랑의 불이 제 안에 타오르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이 땅에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시어 천상에서 당신과 함께 하느님을 뵙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O blessed Aloysius, adorned with angelic virtues, I your most unworthy suppliant recommend specially to you the chastity of my soul and body, praying to you by your angelic purity to plead for me with Jesus Christ the Immaculate Lamb, and His most Holy Mother, Virgin of virgins, that they would vouchsafe to keep me from all grievous sin. Never suffer me to be defiled with any stain of impurity; but when you see me in temptation, or in danger of falling, then remove far from my mind all evil thoughts and unclean desires, and awaken in me the memory of eternity to come, and of Jesus crucified; impress deeply in my heart a sense of the holy fear of God; and kindling in me the fire of Divine love, enable me so to follow your footsteps here on earth, that in heaven I may be made worthy to enjoy with you the vision of our God for ever.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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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올 어머니, 성령의 은총과 그 끊임없는 위로를 누리시길 빕니다. 어머니의 편지가 제 손에 닿았을 때 저는 아직도 죽은 이들의 땅인 이 세상에 있었습니다. 어머니, 이제 심혈을 기울여 산 이들의 나라에서 영원하신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는 천국을 갈망해야 합니다. 저로서는 벌써 그곳에 가 있고 싶었고 이미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 줄로 진정코 생각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랑이란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 주고, 우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울어 주는 것”(참조. 로마 12,15)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도 저와 함께 무한한 기쁨을 가지셔야 합니다. 어머니의 은덕으로 하느님께서 저에게 참된 행복을 보여 주셨고 또 그것을 잃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주시어 온갖 두려움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어머니, 바다만큼 깊고 또 끝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묵상해 볼 때 저의 정신은 그 광대함에 압도되고 맙니다. 주님께서 이렇게도 짧고 보잘것없는 저의 수고를 보시고 어떻게 저에게 영원한 안식이라는 보상을 주실 수 있는지, 또 이제까지 게을리 찾던 나를 천국의 무한한 행복으로 초대하실는지, 또 그것을 얻으려고 그다지도 적은 눈물을 흘린 저에게 많은 고생과 눈물의 보상인 그 보화를 주려 하실는지요! 존경하올 어머니, 이것을 거듭거듭 생각하시고, 주님 면전에서 살아 있고 이 세상에 있을 때보다 제 자신의 간구로써 어머니를 더 염려해 드리는 저를 어머니께서 죽은 사람인 듯 슬퍼하심으로써 하느님의 무한한 이 자비를 거스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리의 이별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나 우리 구원이신 주님과 결합하여 불사불멸의 끝없는 기쁨을 누리고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찬미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할 것입니다.”(참조. 시편 5,12)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주신 생명을 잠시 동안 거두시는 것은 우리를 더 안전한 자리에 두시고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고자 하는 은총의 선물로 꾸며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존경하올 어머니, 어머니와 우리 온 가족이 제 죽음을 하느님의 기쁜 선물로 생각해 주십사고 간절히 희망하면서 이 모든 말씀을 드립니다. 제 희망의 성취인 그 항구를 향해 바다를 건너가는 동안 어머니께서 저를 친히 축복하시어 보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들로서 어머니께 바쳐야 하는 존경과 사랑을 더 확실히 보여 드릴 다른 방도가 없기에, 어머니께 기꺼이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성무일도 독서기도 제2독서,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가 자기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Acta Sanctorum, Iunii, 5,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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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 뉴스의 성인’에 소개된 내용

성 알로이시우스 곤자가(또는 알로이시오 곤자가)는 1568년 3월 9일 이탈리아 북부 브레시아(Brescia)와 만토바(Mantova) 사이에 있는 카스틸리오네(Castiglione) 성(城)의 후작 페란테(Ferrante de Gonzaga)와 마르타 타나(Marta Tana di Santena)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부유했지만 다소 야만적이고 부도덕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앙심 깊은 어머니는 사랑으로 성 알로이시오를 키우려고 노력하였다. 성 알로이시오의 아버지는 그가 군인이 되기를 원했으나 그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그의 가정교사였던 피에르프란체스코(Pierfrancesco del Turco)는 성 알로이시오의 영혼과 정신을 길러 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577년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Felipe II, 1556-1598)의 부름을 받은 아버지는 성 알로이시오를 피렌체(Firenze)의 대공 프란치스코 데 메디치(Francesco de Medici) 궁정의 시동(侍童)으로 보냈다. 그리고 2년 후인 1579년에 성 알로이시오와 그의 동생 로돌포(Rodolfo)를 만토바(Mantova)의 공작에게 보냈다. 여기서 사제직의 꿈을 키우던 성 알로이시오는 1580년 7월 여행 도중 들른 성 가롤로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11월 4일) 추기경을 만나 그에게 직접 첫영성체를 받았다. 1581년 오스트리아 황후 마리아가 마드리드(Madrid)로 돌아갈 때 곤자가 가문도 함께 갔고, 성 알로이시오는 펠리페 2세 궁정에서 왕자 돈 디에고(Don Diego)의 시동으로 지내면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 후 왕자가 사망하자 1583년 8월 15일 성 알로이시오는 예수회에 입회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완강히 반대하며 일단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원하는 대로 하라고 아들을 설득했다. 이탈리아로 돌아가자 아버지는 온갖 방법으로 그의 마음을 돌려 보려고 애를 썼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1585년 11월 25일 로마에 있는 예수회에 입회한 성 알로이시오는 밀라노(Milano)의 예수회 분원에서 몇 달을 지낸 후 만토바에서 수련을 받았다. 이듬해 2월 15일 아버지가 사망하여 잠시 집에 들러 모든 일을 정리하고 돌아온 후 학업에 정진하였다. 그는 나폴리(Napoli)에 머물면서 형이상학을 공부하였고, 예수회 로마 학원에서 철학을 배웠다. 1587년 11월 25일 첫 서원을 한 뒤 곧바로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를 가르치던 교수 중에는 당시의 유명한 학자 바스케스(G. Vazquez, 1549~1604년)가 있었으며, 훗날 성인이 된 로베르토 벨라르미노(Robertus Bellarmino, 9월 17일)가 성 알로이시오의 영성 지도신부였다.

성 알로이시오가 신학을 공부한 지 4년째 되던 1590년 로마 전역에 페스트가 퍼졌다. 그는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병자들을 보살피고 그들이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그렇게 헌신적으로 병자들을 간호하던 성 알로이시오는 이듬해 3월 초 자신도 페스트에 전염되어 같은 해 6월 21일 23세의 젊은 나이로 선종했다. 그의 시신은 로마의 성 이냐시오(Ignatius) 예수회 성당에 안치되었다.

성 알로이시오는 신중하고 분별력 있게 모든 일을 잘 처리하는 뛰어난 학생이었다. 긍정적이고 관찰력이 탁월했던 그는 철학과 신학의 전 과목에서 그를 가르쳤던 교수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앙 안에서 어려서부터 정결을 지키며 살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었고, 어떠한 반대에도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특별히 정결에 대한 은사를 받은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는 수도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악습들을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으며, 자신의 자존심과 이기심을 이기기 위한 수련을 끊임없이 실천했다.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의 시성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는 1605년 10월 19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시복되었고, 1726년 12월 31일 교황 베네딕토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로부터 3년 후 성 알로이시오는 젊은이와 신학생들, 특별히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주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상을 잡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주위에 백합화나 해골 등과 함께 그려지곤 한다. 백합은 정결을 상징하는 꽃으로 특별히 성 알로이시오가 받은 정결의 은사를 상징하고, 해골은 회개와 보속의 삶을 의미한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루이지 곤자가(Luigi Gonzaga)로 불리는데, 이탈리아 이름인 루이지의 라틴어 형식이 알로이시오이기 때문이다. 옛 “로마 순교록”이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6월 21일 목록에서 젊어서 예수회에 입회해 순결한 삶을 살다가 로마의 전염병 피해자를 돕다 일찍 하늘로 간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에 대해 기록하였다.

One thought on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6월 21일)

  1. 앞집에 초등학생 3명이 살고 있습니다.
    막내는 유아 영세를 받았고, 맏이와 둘째는 최근
    세례를 받고 첫영성체를 했습니다.

    성인에 관한 신부님의 글을 보고 기도문을
    읽다 보니 우리 꼬마 친구 셋이 생각났어요.
    알로이시오 성인과 돈 보스코께 전구를 청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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