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다’해(마태 2,1-12)

공현 대축일을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하는 말마디 ‘에피파니Epiphany’는 그리스 말에서 유래되어 “보여주다(to show)”, “알게 하다(to make known)” 또는 “계시하다(to reveal)”를 의미한다. 공현 대축일은 동방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동방 교회에서는 이 축일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메시아이자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으로 드러나심을 강조하면서 삼위일체의 초자연적인 계시를 강조하고,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방인들이었던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방문하고 경배하면서 이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다’해(루카 2,16-21)

구유 위에 오신 아기 목자들은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루카 2,16) 합니다. 목자들에게 구유는 기쁨의 상징이었습니다. 천사들에게서 들었던 소식의 확인이자(참조. 루카 2,12절) 구세주를 발견한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구세주라는 분께서 그들이 익숙하게 잘 아는 구유라고 하는 곳에서 태어나셨다는 점에서는 하느님께서 그들과 가까이 계시며 그들과 친숙하다는 증거이기도 하였습니다. 구유는 우리에게도 기쁨의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 가정 축일 ‘다’해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은 나자렛의 성가정을 기억하며 이를 본받고자 제정된 축일이다. 1921년 이 축일이 처음 정해질 때는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 첫 주일이었으나, 1969년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성탄 팔일 축제’ 내 주일로 옮겼다. 복음은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루카 2,41-42)로

성탄 대축일 밤 미사 ‘다’해

어둠 속에서 빛이 비칩니다. 한 천사가 나타나고 주님의 영광이 목자들 주위를 비추며 마침내 몇백 년을 두고 기다려온 소식이 들립니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1) 천사는 이어서 뭔가 놀라운 소식을 알립니다. 천사는 목자들이 이 땅에 오신 하느님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지를 말해줍니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루카 1,39-45(대림 제4주일 ‘다’해)

제4복음서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라며 마치 또 다른 대영광송처럼 장엄하고도 단순하게 육화의 신비를 고백한다. 물론 공관복음 역시 하느님의 말씀께서 나자렛 사람이요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가운데 인간이 되어 오셨다는 내용을 전한다. 그중 공관복음사가 루카는 그 말씀께서 공개적으로 당신을 드러내시기 전에 언제, 그리고 어떻게 우리 가운데에 사셨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노력한다.

루카 3,10-18(대림 제3주일 ‘다’해)

대림 제3주일은 전통적으로 ‘기쁨의 주일(Domenica gaudete, Laetare Sunday, 혹은 Rejoice Sunday, Sunday of rejoicing)’ 등으로 부른다. 이는 직접적으로 오늘 제2독서인 필리피서에서 취한 입당송이 “기뻐하여라. 거듭 말하니,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여라. 주님이 가까이 오셨다.”(필리 4,4-5)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입당송, 제1독서, 화답송, 그리고 제2독서에 이르기까지 말씀의 전례는 ‘기쁨’이라는 주제어로 관통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움과 고통 중에 살면서도 기쁨 중에

루카 3,1-6(대림 제2주일 ‘다’해)

복음사가 루카는 복음 선포를 세례자 요한의 부르심과 사명으로 시작한다. 루카가 “요한은…여러 가지로 권고하면서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루카 3,18)라고 기술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단테 알뤼기에리(1265~1321년)가 ‘그리스도의 선하심을 기술한 복음사가(Scribe manuetidinis Christi=scribe of the gentleness of Christ)’라고 불렀던 루카는 오늘 복음에서 구약의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또한 구약의 여러 예언자가 부르심을 받았던 형태로 꾸며, 세례자 요한의 부르심을 통하여

루카 21,25-28.34-36(대림 제1주일 ‘다’해)

전례력으로 새로운 새해를 시작하는 대림 제1주일이다.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시기인 대림절待臨節(기다릴 대·임할 림/임, 대림시기)을 영어로는 Advent라 한다. 전례력을 따라 매주 주일을 거듭하면서 교회는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신비, 예수님의 탄생부터 시간의 끝에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주님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온 생애에 담겨있는 구원의 역동성을 거행하고 기념한다. 새로이 맞은 이 ‘다’해에는 루카복음을 따라갈 것이다. 루카복음은 우리 가운데에 오신

요한 18,33ㄴ-37(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나’해)

우리는 전례력을 따라서 마르코복음을 들었던 ‘나’해의 마지막 주일에 도달했다. 지난 주일에 마지막으로 들은 마르코복음의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오심에 관한 선포는(참조. 마르 13,26)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주님께서 영광중에 어서 다시 오시기를 우리가 간절히 희망하고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다시 오시는 영광의 주님을 기리면서 ‘나’해를 마감하는 전례 복음으로서 네 번째 복음, 그중에서도 나자렛 사람 예수의

마르 13,24-32(연중 제33주일 ‘나’해)

오늘 복음으로 ‘나’해의 전례에서 마르코복음 낭독을 마감한다. 오늘 복음 말씀은 ‘종말에 관한 예고문’ 형식인 13장의 마지막으로서 예수님의 공생활 말기, 수난과 죽음이 임박한 중에 가르침과 위로 및 당부를 하시는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13장의 서두에서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마르 13,1) 성전이 대단하다고 말씀드리자 예수님께서는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하시며 성전이 “다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