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카 성야(2022 교황님 강론)

많은 작가들이 별이 빛나는 밤을 묘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밤은 죽음을 예고하는 빛으로 가득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밤에 복음에 나오는 여인들의 인도를 따라 우리 세상의 어두움 안에 하느님 생명의 빛줄기가 처음 비치던 때를 묵상해보도록 합시다. 밤의 그림자가 걷히면서 조용히 빛이 비쳐오기 전에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기름을 발라 드리려고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여인들은 당황스러운 체험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파스카 성야 ‘다’해(루카 24,1-12)

‘성야聖夜’는 밤샘이고 깨어 기다림이며 깨어 지킴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큰 축일의 전야에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열망으로 밤을 지새웠다. 유다인들의 파스카(과월절)는 이집트에서 주님의 천사가 그냥 지나가시고 통과하심으로 이집트인들의 맏배만 죽게 되어 결과적으로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풀려남을 기념하였으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날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지나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초기 그리스도교는 이날에 주로 새 입교자들의 세례식이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매 주일

주님 수난 성 금요일 ‘다’해(요한 18,1-19,42)

어제 성삼일의 시작인 성 목요일에는 요한 복음사가가 전해주는 대로 주님의 만찬을 기념하고 성체성사의 표징과 이에 대한 해석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들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관련된 사람들, 그리고 당신 아버지께 드리고자 의도하신 대답이었다. 그에 따라 우리는 예수님의 “감사”(εὐχαριστήσας, eukaristésas, 마르 14,23 마태 26,27 루카 22,17.19 1코린 11,24)와 “찬미”(εὐλογήσας, euloghésas, 마르

주님 만찬 성 목요일 ‘다’해(요한 13,1-15)

매년 성 목요일마다 우리는 이 복음 대목을 읽습니다. 단순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해방절 파스카 잔치 식사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이상한 행동을 하셨습니다. 이는 당시 외출에서 돌아오는 주인의 발을 대문간에서 노예들이 씻어 주던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와닿는 그러한 행동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당신을 팔아넘긴 배반자의 발도

주님 만찬 성 목요일 ‘다’해(1코린 11,23-26)

통상 주님 만찬을 기리는 성 목요일 전례에서는 성체성사의 제정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예수님의 동작과 말씀은 없으나 성체성사의 본질을 밝혀주는 요한 복음사가의 의도를 존중하여 전통적으로 제4복음서의 대목을 듣는다. 성체성사의 제정에 관한 성경의 근거들은 마태 26,26-28 마르 14,22-24 루가 22,19-20 1코린 11,23-26 총 4부분이다. 공관복음서나 요한복음의 내용을 해설할 기회는 다른 때도 있었으므로 이번에는 바오로 사도의 서간문(1코린 11,23-26)에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다’해(루카 22,14-23,56)

칼바리에서는 두 가지 사고방식이 충돌하였습니다. 복음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말씀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는 사람들의 말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룹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은 “너 자신이나 구해보아라”하고 계속 말합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루카 23,35)라고 말하고, 군인들도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37절)라고 똑같이 말하며,

사순 제5주일 ‘다’해(요한 8,1-11)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는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는 사순시기가 종반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하느님 자비의 절정을 맛보게 된다. 제4복음서만이 전하고 있는 오늘 복음은 상당히 물의를 빚을만한 내용이라고 여겨져 교회의 역사 안에서 매우 독특한 운명을 겪었다. 이 본문은 오래된 고대의 필사본에서는 대목 자체가 빠지기도 하고, 라틴 교부들에 의해서는 4세기까지 무시되기도 하였으며, 희랍의 교부들은 근

사순 제4주일 ‘다’해(루카 15,1-3.11ㄴ-32)

오늘 루카복음은 “(공공연히 죄인이라고 낙인이 찍힌 ‘공공의 적’과도 같은) 세리들과 (인생길에 낙오자가 된 듯한)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루카 15,1)라고 시작한다. 소위 사제들이나 열심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이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이런 세리나 죄인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모여든 이유는 아무도 찾아주거나 사랑하지 않으면서 그저 판단하고 멸시하였지만, 예수님만큼은 그들을 여느 다른 인간(죄인)과 같은 한 사람으로 보셨기

사순 제3주일 ‘다’해(루카 13,1-9)

교회는 ‘가’ ‘나’ ‘다’해를 막론하고 통상 사순 제1주일에는 전례력에 따라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에서 각각 취한 예수님의 유혹에 관한 복음을 듣고, 사순 제2주일에는 역시 같은 식으로 예수님의 변모에 관한 복음을 듣도록 하는데, 사순 제3주일에는 각 전례 주기마다 각각 다른 복음을 듣도록 안내한다. 루카복음을 따라가는 올해 ‘다’해 사순 제3주일에 교회는 하느님의 자비와 회개에 관한 복음을 채택하여

사순 제2주일 ‘다’해(루카 9,28ㄴ-36)

사순 제2주일인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변모에 관한 복음을 들려주면서 하느님으로서 스스로 기꺼이 죽을 운명에 처한 인간이 되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필리 2,7) “하느님께서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