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가’해(루카 2,1-14)

성탄 대축일을 두고 로마인들은 원래 ‘festum solis invicti’, 즉 ‘정복되지 않은 태양의 축일’이라 불렀다. 다시 말하면, 이제 동지를 갓 지내고 다시 태양이 더 커지는 날들의 시작 시기를 기념하였던 것이다. 죽은듯싶었던 나무들도 이제 다시 생명을 향하여 새로운 잎들을 준비할 것이다. 그렇게 구유 위의 아기 예수님께서는 세상 만물에 생명을 다시 주실 분이시다. 복음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이다. 예수님의

대림 제4주일 ‘가’해(마태 1,18-24)

현대인들은 주님의 탄생에 관한 이 ‘기적적’인 이야기를 신화로 읽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렇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이 이야기가 우리 신앙에 전달하고자 하는 그 깊은 내용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복음사가의 의도이다. 복음사가는 이 복음을 읽는 이들이 예수님이라는 인물이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보내시고자 하는 바로 그분이며, 하느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을 전하고 싶어 한다.

대림 제3주일 ‘가’해(마태 11,2-11)

세례자 요한의 위대함을 두고 그가 그리스도 앞에서 진정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한 선구자로 남으려 했다고 말하지만, 그의 또 다른 위대함 중 하나는 어둠과 시련의 순간에 홀로 결정하거나 답을 내리지 않으면서 예수님께 그 답을 청하려고 한다는 점에 있다. 세례자 요한은 이 세상의 권력과 권세 앞에서 움츠러들거나 떨지 않고 확신에 차서 단호하게 거침이 없었다. 그는 주님 앞에서가

대림 제2주일 ‘가’해(마태 3,1-12)

대림 제2주일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만나도록 인도한다. 복음서가 전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은 ‘선구자’인데, 이는 자기 “뒤에 오시는 분”(마태 3,11), 곧 메시아에 앞서 와서 이 세상에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거의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참조. 마태 4,19;10,38;16,24) 제자처럼 비치는데도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비교해 세례자 요한이 더 큰 힘을 지니고 있으며, 훨씬 더 급진적인

대림 제1주일 ‘가’해(마태 24,37-44)

전례력으로 새해 첫 주일이다. 대림 제1주일을 라틴어로는 ‘레바비 주일’(Levavi, 들어올리다)이라는 명칭으로 불렀다. 그 이유는 이날 부르는 그레고리안 성가 입당송 구절이 “Ad te levavi animam meam.”(주님, 당신께 제 영혼을 들어 올립니다)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가’해의 대림절 4주 동안 제1독서는 이사야 예언서에서 취한다.(이런 의미로 이사야를 ‘대림시기의 예언자’라고 부를 수도 있다) 기원전 7∼8세기의 암울한 시기에 이사야 예언자가 메시아께서 오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다’해(루카 23,35ㄴ-43)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곁에 영원히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님을 들어 높이시어 오른편에 좌정하게 하심을 기린다. 1925년에 공식적으로 전례력에 들어오게 된 이 축일은 이 세상의 임금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왕의 통치권을 기억하도록 하려는 뜻으로 제정되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에 따라 그 의미가 깊게 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연중 제33주일 ‘다’해(루카 21,5-19)

전례력으로 한 해가 저물고, 다시 새로운 한 해가 대림절로 다가온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궁극적 기다림인 종말의 현실을 묵상한다. 전례 복음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마치시려는 시점, 곧 수난과 죽음을 앞둔 시점에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 쪽에 계시던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마태오나 마르코 등 공관 복음사가들은 오늘 복음의 내용을 공동으로 전한다. 복음의 ‘성전파괴의 예고’는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요한 2,13-22)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의 전례 복음은 통상 요한 2,13-22을 취한다. 이른바 ‘성전 정화 사건’으로 알려지는 대목이다. 이 복음의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이례적으로 공관복음을 넘어 4 복음서가 공통으로 전한다.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에 교회는, ① 예수님의 부활로 이루어진 ‘예수님’이라는 성전 ② 주님만의 집이어야 할 살아있는 성전인 우리 ③ 성전에서 드려야 할 참다운 제물에 대하여 묵상하도록

모든 성인 대축일(마태 5,1-12ㄴ)

*번역글: 엔조 비앙키, <성인들의 통공을 기리는 기쁨의 축일(La gioiosa festa della comunione dei santi)> 하늘과 땅의 성인들 잔치 친구 여러분, 우리는 오늘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성인들의 통공(communion of saints)을 기리는 기쁜 축일을 지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의 성인들뿐만 아니라, 아직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성인들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통공을,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히브리서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마태 5,1-12ㄴ, 첫째 미사)

교회는 오늘 전례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산상설교’(마태 5,1-7,27) 중 첫 부분 ‘참행복’에 관한 묵상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오늘 복음은 연중 제4주일 ‘가’해나 ‘모든 성인 대축일’ 미사에서도 같은 대목을 취한다. ※참조. 엔조 비앙키, 모든 성인 대축일(마태 5,1-12ㄴ): http://benjikim.com/?p=15885  / 교황 프란치스코, 모든 성인 대축일(11월 1일): http://benjikim.com/?p=6731 *오늘 강해의 뒷부분에 이완희 신부의 <위령의 날>에 관한 유래와 해설이 있음 1. “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