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을 습濕

‘습, 섭, 탑’ 등으로 발음하는 ‘젖을 습濕’은 ‘습도濕度’나 ‘습기濕氣’, ‘고온다습高溫多濕’과 같은 단어에 쓰인다. ‘습윤濕潤’이라는 잘 사용하지 않는 말도 있는데, 이때 ‘윤潤’은 젖어서 촉촉함을 표현하는 ‘불을/젖을 윤潤’이다. ‘윤기潤氣’라고 할 때도 이 글자를 쓴다. 우리나라 양력 6월경부터 8월 중순 무렵까지는 무척 덥고 습하다. 끈적거리고 몸이 불어 터진 것 같으며 땀이 번들거리는 계절이다. ‘습濕’의 계절이고 ‘윤潤’의 계절이다. 두

휴가休暇

바로 지난주 홍수와 산사태, 수해를 이야기하고 아직 많은 이들이 그 아픔에 슬퍼하고 있는데도 몇 날 반짝하니 사람들은 어느새 휴가를 이야기하고 바캉스를 운운한다. 우리말 휴가에서 ‘휴’는 ‘쉴 휴休’, 곧 나무(木)에 기대고 있는, 혹은 나무 옆에(그늘에) 있어 쉬는 사람(人)의 모양새다. 더해진 ‘가’는 틈이나 겨를을 뜻하는 ‘가暇’이다. 이때 ‘가暇’는 ‘날 일日’과 ‘빌(릴) 가叚’가 더해진 글자이다. ‘빌(릴) 가叚’의 왼쪽은

비 우雨

비가 퍼부었던 그제다. 우산을 받쳤음에도 신발 속에 물이 질퍽질퍽한 상태로 양로원에 도착해서 대다수가 반쯤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위한 미사를 드렸다. 하느님을 나눠주는 영성체 때는 반드시 보조자가 물 한 컵으로 입을 적시게 한 다음에야 하느님을 밀어 넣듯 먹여야 하는 미사이다. 치과의사인 딸이 미사예물을 드리라고 오만 원을 드리면 색깔 비슷한 오천 원으로 바꿔치기 해서 미사예물을 놓는

잠(수면睡眠-졸음 수, 잘 면)

사람은 누구나 대개 인생의 3분의 1 동안 잠잔다. 사람은 맨 처음에 잠으로 인생을 배우고 적응하느라 긴 시간 동안을 자고,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시시때때로 틈만 나면 자고 싶어 하며, 인생의 종장에 가서는 혼수상태로 자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하다가, 마침내 영원한 잠(영면永眠-길 영, 잠잘 면)에 들어간다. 하루만 놓고 보더라도 사람은 지나온 시간과 세상의 냄새를 뿜어내느라 씩씩거리고 코를

‘지지’ 타령

어린 아기들이 뭔가 더럽거나 지저분한 것을 만지려고 할 때 그런 아기들을 향해 어른들이 ‘지지야, 지지!’ 한다. 이럴 때 쓰는 한자의 글자는 아마도 ‘그칠 지止’일까 싶다. ‘안 돼!’ 라든가, ‘멈춰!’라는 뜻일 것이니 말이다. ‘금지禁止’니 ‘폐지廢止’니 할 때도 이 글자가 들어간다. ‘그칠 지止’는 왼쪽 발을 내려다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발목 아랫부분의 발의 모양을 본떠 만들어진 글자로서 ‘발,

선물膳物

영어로 ‘선물이나 기부’를 뜻하는 단어들은 대개 present와 gift(애정이나 우정을 표시하기 위해 주는 것), donation(거저 주는 것), 그리고 bonus(덤으로 주는 것) 등이 있다. 이 중에 donation이라는 어휘는 라틴어 ‘donare(주다)’에서 온다. 이를 우스갯소리로 우리 말 ‘돈 내시오’, ‘더 내시오’, ‘다 내시오’에서 왔다며 기부를 종용하는 경우들도 있지만, 원래는 라틴어 ‘donum(선물)’과 연관되어 있다. 흔히 쓰는 ‘pardon(용서, par=모조리)’도 donation의 어근이

열 십十, 세상 세世

가로 그은 한 획에 세로로 한 획을 더하면 열 ‘십十’이 된다. ‘열 십十’은 공손하게 절할 때처럼 두 손을 포갠 모양이기도 하고, 길게 된 줄에 한 매듭을 짓고 그 매듭이 가로로 커져서 생긴 모양이기도 하다. ‘열 십’은 십진법에서 더 나아갈 수 없는 완성의 숫자이다. 십년공부十年工夫, 십년지계十年之計, 십시일반十匙一飯, 십중팔구十中八九 등의 쉬운 한자성어 몇 개만 보아도 ‘십’의 존재감은

번거로울/괴로워할 번煩

‘불 화火’에 ‘정’이라고도 발음하는 ‘머리 혈頁’이 합해져서 ‘번거로울/괴로워할 번煩’이라는 글자가 생겨난다. ‘불 화火’는 부수로 묘사될 때 ‘연화발 화灬’라는 모양새로서 장작더미 같은 것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 모양을 그린 것이다. 혹자가 머리와 눈, 다리가 함께 그려진 사람 모습이라 하기도 하는 ‘머리 혈頁’이라는 글자는 위로부터 머리카락, 마음의 창인 눈(눈 목目), 턱밑의 수염을 차례로 그려서 만들어진 글자로서 다른 글자와

말씀 언言

‘혀 설舌’과 비슷한 모양이면서 관련이 많을 법한 ‘말씀 언言’을 두고는 피리처럼 소리가 나는 것을 입에 대고 부는 모습이라 하기도 하고, 입에서 소리나 말이 나가는 모양새를 그린 것이라 하기도 한다. ‘말씀 언言’은 인간의 소통이요 친교이며 일치의 수단이겠지만, 『‘言’으로 구성된 글자에는 일반적인 언어 행위 외에도 말에 대한 고대 중국인들의 인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먼저, 말은 믿을 수

술 취할 취醉

한자에서 술에 취한 상태를 묘사하는 글자들은 많다. ‘주정酒酊’이라 할 때의 ‘술 취할 정酊’이 있고, 곤드레만드레 취하고 고주망태가 된 ‘명정酩酊’에서 꽥꽥 나의 이름이나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대는 ‘(이름 명名이 붙어 있는) 술 취할 명酩’도 있으며, ‘질그릇 도匋’와 함께 술에 취해 사발이 깨지는 소리가 날 정도의 ‘술 취할 도醄’가 있고, 술이 거나하고 분위기가 훈훈하게 좋은 ‘술 취할 훈醺’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