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

블레이즈 파스칼Blaise Pascal(1623~1662년)은 방대했던 자신의 장서를 주변에 모두 나눠주고 「성경」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두 권만을 간직했다고 알려진다. 성경에 인간과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이야기가 담겼다면, 고백록에는 한 인생의 야망, 열정, 방황, 우정, 가족, 갈등, 욕망, 슬픔, 사랑, 회심, 지혜, 죽음…아름답고 심오한 문장들 속에 실로 모든 것이 담겼다.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하느님을 찾아가는 치열한 삶의 요동이다. 고백록의

희망: 유토피아 & 디스토피아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유토피아, 즉 지상의 완전한 사회를 꿈꾸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유토피아의 정반대인 디스토피아 – 사회가 극도로 잘못된 악몽 같은 모습 – 에 대해서도 숙고해 왔다. <세상의 주인(Lord of the World)>(1907),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1932), <1984>(1949), <화씨 451(Fahrenheit 451)>(1953), <로건의 탈출(Logan’s Run)>(1967), <사람의 아이들(The Children of Men)>(1992)과 같은 소위 디스토피아 문학 작품들만 보아도

오르페우스Ὀρφεύς, 음악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오르페우스Orpheus는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의 리라 연주를 듣는 이는 인간이나 야수를 막론하고 그에게 매료되어 유순해졌으며, 수목이나 암석마저도 그의 음악에 감동하였다. 그가 연주할 때면 수목들이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고 암석들은 물러져 견고함을 늦추기까지 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애달픈 노래에는 망령들마저 눈물을 흘렸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야 일편단심 민들레라고 웃으며 입방아를 찧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대개의 사람은

유머

하느님께도 유머가 있을까? 이러한 질문 자체가 어쩌면 너무나 인간적으로 하느님을 이해하려는 경솔한 태도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에서 건강한 유머와 유희, 농담, 장난기 등은 우리 삶에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 무거운 기분을 떨쳐버리고 유쾌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상황이나 사건을 보다 단순하고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한다. 프로이트는 때때로 어떤 것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 반대편을 바라보라고 제안한다. 유머나

더러울 오汚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다. 탁한 구정물처럼 누군가, 무엇인가가 그를 휘저어 놓아 타인이 그에게서 자기 얼굴을 볼 수 없게 된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서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그는 공관복음이 모두 전하는 <마귀들과 돼지 떼(마르 5,1-20 마태 8,28-34 루카 8,26-39)>라는 소제목의 일화 속에 등장한다. 맨 먼저 쓰였다고 알려지는 마르코 복음은 그와 예수님과의 만남을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흐는 1888년 파리를 떠나 프로방스의 아를에 정착하고, 5월에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며 ‘노란 집’을 임대한다. 빈센트에게 1888년은 왕성한 작품 시기이다. 그 해에 빈센트는 고갱에게 자기의 초상화를 보내기도 하면서 6점의 자화상과 함께 초상화만도 46점을 그린다. 그때 그는 「인간이야말로 모든 것의 뿌리이다.(1888년 4월 11일, 아를에서,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595)」라고 말한다. 그 무렵 빈센트는 초상화 말고도

개구리 울음(蛙鳴)

피부로도 호흡하는 양서류의 특성상 촉촉이 젖어 있어야 할 개구리의 피부가 농약 같은 화학물질에 노출되면서 개구리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고 개탄하는 생태론자들의 걱정, 생태만 얘기하다 죄다 굶어 죽는다며 인간의 생존권을 거론하는 개발론자들의 논란에 단골로 등장하는 주인공 도롱뇽과 개구리, 이제 그런 논란조차도 한물갔나 보다. 시골길을 가다가 오랜만에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었다. 제법 큰 녀석인지 두꺼비일까 싶게 묵직한 저음이다.

추할 추醜

(4월이 초록이라면 5월의 시작은 초록초록이다 못해 이미 초록 천지다. 초록의 5월에 걸맞지 않은 느닷없는 ‘추할 추醜’는 초록 앞에 선 시들어가는 것들의 타령이다.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묘사한 대로 천지는 초록인데 자신만 한없이 쪼그라들어가는 무녀巫女의 넋두리이다) 어릿광대, 혹은 광대를 한자漢字로 뭐라 하는지 찾아보니 ‘소추小丑’라고 한다고 한다. 어리광을 연상하게 하는 ‘작을 소小’는 그럴듯하지만 ‘추할 추丑’가 그 말에 들어가 있는

교황님의 엠마오 소풍

현지 시각 2025년 4월 21일 오전 7시 35분, 교회의 전통에 따라 가장 큰 명절인 부활절 연휴의 계속으로 ‘작은 부활절(파스퀫타Pasquetta, 영어-Easter Monday)’이요 부활 팔일 축제 첫날이며 ‘천사의 월요일(Lunedì dell’Angelo)’을 맞는 날이었다. 이날 이탈리아 사람들은 ‘스캄파냐타scampagnata(영어-jaunt to the countryside)’, 곧 교외로 가까운 나들이를 나가기도 하는 날이다. 이런 습관에 따라 교회의 많은 사람은 이날 이른바 ‘엠마오 소풍’이라는 것을

다칠 상傷, 근심할 상慯

‘다칠 상傷’은 몸에 난 상처를, 그리고 ‘근심할 상慯’은 ‘마음 심忄’을 옆에 붙여 마음에 난 상처를 일컫는다. ‘상처’나 ‘다치다’라는 뜻을 표현하는 ‘다칠 상傷’이라는 글자를 풀어헤치면 ‘사람 인人’ 더하기 ‘화살 시矢’ 더하기 ‘볕 양昜’이다. ‘傷’의 오른쪽 위에 있는 모양새는 화살을 뜻하는 ‘矢’가 변형된 것이다. ‘쉬울 이’라고도 읽는 ‘볕 양昜’이라는 글자는 제단 위를 비추는 태양(日)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