喿라는 글자는 ‘소’나 ‘조’로 소리가 난다. ‘울 소(조)’, 또는 ‘떠들썩할 소(조)’이다. 나무 목(木) 위에 입 구(口)가 세 개나 올라앉아있다. 나무 위에 올라앉아 지저귀고 떠들어대는 입, 곧 주둥이들이 여러 개 있으니 나뭇가지 위에 앉아 떠드는 새들이다. 뜻을 나타내는 재방변(扌= 手 = 손)을 붙이면 ‘잡을 조操’가 된다. 떠드는 입들을 움켜잡고 장악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잡을 조’라는 글자는
‘見’이라는 글자는 ‘견’이나 ‘현’으로 음이 나는 글자이다. ‘눈 목目’ 밑에 ‘사람 인人’을 붙여 사람의 눈이 하는 일을 나타낸다. 나중에 이쪽으로부터 보는 것을 ‘볼 시視’, 저쪽으로부터 무엇인가가 보이는 것을 ‘볼 견見’으로 나누어 쓰면서 ‘보다’와 ‘보이다’가 갈린다. ‘눈 목目’이 들어가 ‘보다’라는 새김을 하는 글자들은 참 많다. 앞서 말한 ‘볼 견見’과 ‘볼 시視’ 말고도, ‘관찰하다’ 할 때의 자세히
‘유酉’라는 글자는 음과 훈을 달 때에 ‘닭 유’라 하기도 하고, ‘술병 유’나 ‘술 유’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래 이 글자가 밑이 좁고 가는 술을 빚는 술 단지의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이므로 후자가 먼저이다. 그런데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하는 십이간지十二干支의 표시 중에 열 번째인 닭이 ‘유’에 해당하므로 ‘술 유’의 음을 빌어 ‘닭 유’라 하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천사는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인간들에게 전하는 하느님의 사자使者이다.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며, 한편으로는 사람을 지켜주고,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진다. 성경은 천사에 대하여 구약부터 신약까지,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무려 354절을 두고 기술한다. 그런데 천사는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수많은 조각가나 화가들이 묘사한 대로 그렇게 생겼을까? 천사는 정말 하얀 은백색의 눈부신 날개를 지녔을까? 남성일까
‘나무 목木’이라는 글자는 나무가 땅 밑에 뿌리를 내리는 한편 대지를 뚫고 솟아오르는 모습을 상형한 글자이다. 하느님께서는 낮과 밤, 그리고 물과 뭍을 가르신 다음 뭍에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창세 1,11) 하심으로써 땅 위에 맨 먼저 나무를 만드셨다. 그렇게 온갖 것을 지으시고 사람까지 만드신
사람이 동물과 달라진 것은 두 발로 걸으면서부터였다고 했다. 너도 걷고 나도 걷고 모두가 걷는다. 매일 걷는다. 사람들의 걸음을 보고 또 내 걸음을 보며 ‘걷는다’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가사의 첫 구절 때문에라도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욱마다 눈물 고였네…』하던 백년설(白年雪 : 본명 이창민 1914~1980년)씨의 오래된 노래 ‘나그네 설움’이 절로 떠오른다. 작사가로 알려진 고려성(高麗星
누구나 ‘밥이나 한번 먹자’ 할 때 서로 관계를 확인하고 안심한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거의 밥자리의 연속이었다. 오죽했으면 그런 상황이 못마땅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먹보요 술꾼”(마태 11,19 루카 7,34)이라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했을까? ‘밥자리’를 가리키는 한자 말이 ‘회식會食’이다. 그때 쓰는 ‘모일 회會’는 시루 같은 것이 포개져 있는 형상의 ‘증曾’에 뚜껑을 덮은 꼴이다. 뚜껑 달린 그릇에 이것저것 넣고 끓이거나 조리하는 모양이다.
타조 계의 점잖으신 스타가 계셨다. 그 원로께서는 이제 생의 마감 길에서 후학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수하는 데에 온 정열을 쏟고 계셨다.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매일같이 신문의 기고를 위하여, 그리고 TV와 같은 대중매체의 인터뷰를 위하여 눈코 뜰 새 없는 일정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트위터의 팔로우만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은 타조가 있어서, 입에서 입으로, 말에서 말로, 그리고 손가락에서 손가락으로
하느님께서 ‘말씀’이 되셨다고 성경은 전한다. 하느님께서 수천 년을 두고 예언자들이나 역사적 표징들을 통하여 인간에게 수도 없이 이야기를 하셨는데도 인간이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므로 급기야 스스로 ‘말씀’이 되셔야만 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애초에 한 가지 말을 사용하던 인간들이 함께 힘을 합치면 못할 것이 없다 생각할 만큼 교만해졌으므로 인간들의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흩어 버리셨는데, 그
이런 생명의 달인 4월을 두고 ‘잔인한 달’이라 하는 유래를 학생들에게 물었더니 아무도 모른다. 신에게 영원히 죽지 않을 축복을 청하여 그 축복은 얻었으나, 싱싱한 젊음을 유지하는 축복은 얻지 못하여, 죽지는 않되 한없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었음을 슬퍼하면서 봄날의 약동하는 생명 앞에서 제발 죽게 해 달라고 빌었다는 내력을 아는 아이들이 요새는 없다. 그저 중간고사가 있는 달이라 잔인하고 미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