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일 ‘다’해(요한 13,31-33ㄱ.34-35)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분은 항상 부활하신 우리 주 그리스도이시다. 요한복음은 이를 통해 우리 안에 살아계시고 영광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신비에 참여하고 이를 이해하기 위한 본질적인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다. 부활하시고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착한 목자”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양 떼(부활 제4주일 복음)임을 밝혀준 복음은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결정적이고도 최종적인 계명(부활 제5주일 복음)을 주셨다는

부활 제4주일 ‘다’해(요한 10,27-30)

착한 목자 주일이며 성소주일인 오늘의 제1독서에서는 모든 시대 목자들의 모범인 사도 바오로에 관해 듣고, 제2독서인 묵시록에서는 “어린 양”이라 불리는 목자(예수님)의 보살핌을 들으면서 복음을 준비한다. 교회는 부활 제4주일을 ‘성소주일’이요 ‘착한 목자 주일’로 지낸다. 이날 교회는 교회에서 착한 목자요 일꾼으로서 봉사할 분들을 청하면서(마태 9,37 루카 10,2) 그분들을 위한 기도와 정성을 모은다. 부활 제4주일에 착한 목자 주일을 지냄은

부활 제3주일 ‘다’해(요한 21,1-19 또는 21,1-14)

어떤 이가 책을 쓰면서 책을 쓰게 된 목적을 결론으로 밝혀야 그 책은 비로소 출판된다. 그런데 이 결론 부분에 이어서 어떤 장을 추가하고자 한다면 이전 내용과 어떤 연관성을 지을 수 있는 결정적이고도 중요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일이 제4복음서에서도 일어난다. 지난주 복음에서 이미 들었던 제20장의 결론에 이어 오늘의 전례 복음은 그 이후에 추가된 제21장의 내용

부활 제2주일 ‘다’해, 하느님의 자비 주일(요한 20,19-31)

예수 부활 대축일 다음 주일은 전통적으로 ‘사백주일(卸白主日-풀다, 떨어지다, 낙하하다 할 때의 ‘풀 사卸’)’로 불리었다. 부활 대축일에 세례를 받은 새 영세자들이 영혼의 결백을 상징하는 흰옷을 입고 부활 팔일 축제를 지낸 다음 부활 제2주일에 벗었기 때문이다. 많은 지역에서는 이날 어린이들의 첫영성체를 거행하기도 하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대희년인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의 시성식을 거행하는

주님 부활 대축일 ‘다’해-낮 미사(루카 24,1-12)

성토요일 밤에 파스카 성야를 지낸 교회는 ‘사흘 때 되는 날’에 이르러 주님의 부활을 맞는다. 참으로 죽으셨던 분이 되살아나시어 “살아 계신 분”(루카 24,5)이 되셨다. 그저 우리가 늘 하는 말로 ‘산다’라고 하는 말대로 그저 ‘사는 분’이 아니다. 진정 ‘살아 계신 그분(The Living)’, ‘우리의 주님’이시다. 파스카 성야를 통하여 교회는 인류의 창조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파스카 성야(2022 교황님 강론)

많은 작가들이 별이 빛나는 밤을 묘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밤은 죽음을 예고하는 빛으로 가득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밤에 복음에 나오는 여인들의 인도를 따라 우리 세상의 어두움 안에 하느님 생명의 빛줄기가 처음 비치던 때를 묵상해보도록 합시다. 밤의 그림자가 걷히면서 조용히 빛이 비쳐오기 전에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기름을 발라 드리려고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여인들은 당황스러운 체험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파스카 성야 ‘다’해(루카 24,1-12)

‘성야聖夜’는 밤샘이고 깨어 기다림이며 깨어 지킴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큰 축일의 전야에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열망으로 밤을 지새웠다. 유다인들의 파스카(과월절)는 이집트에서 주님의 천사가 그냥 지나가시고 통과하심으로 이집트인들의 맏배만 죽게 되어 결과적으로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풀려남을 기념하였으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날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지나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초기 그리스도교는 이날에 주로 새 입교자들의 세례식이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매 주일

주님 수난 성 금요일 ‘다’해(요한 18,1-19,42)

어제 성삼일의 시작인 성 목요일에는 요한 복음사가가 전해주는 대로 주님의 만찬을 기념하고 성체성사의 표징과 이에 대한 해석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들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관련된 사람들, 그리고 당신 아버지께 드리고자 의도하신 대답이었다. 그에 따라 우리는 예수님의 “감사”(εὐχαριστήσας, eukaristésas, 마르 14,23 마태 26,27 루카 22,17.19 1코린 11,24)와 “찬미”(εὐλογήσας, euloghésas, 마르

주님 만찬 성 목요일 ‘다’해(요한 13,1-15)

매년 성 목요일마다 우리는 이 복음 대목을 읽습니다. 단순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해방절 파스카 잔치 식사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이상한 행동을 하셨습니다. 이는 당시 외출에서 돌아오는 주인의 발을 대문간에서 노예들이 씻어 주던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와닿는 그러한 행동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당신을 팔아넘긴 배반자의 발도

주님 만찬 성 목요일 ‘다’해(1코린 11,23-26)

통상 주님 만찬을 기리는 성 목요일 전례에서는 성체성사의 제정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이나 예수님의 동작과 말씀은 없으나 성체성사의 본질을 밝혀주는 요한 복음사가의 의도를 존중하여 전통적으로 제4복음서의 대목을 듣는다. 성체성사의 제정에 관한 성경의 근거들은 마태 26,26-28 마르 14,22-24 루가 22,19-20 1코린 11,23-26 총 4부분이다. 공관복음서나 요한복음의 내용을 해설할 기회는 다른 때도 있었으므로 이번에는 바오로 사도의 서간문(1코린 11,23-26)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