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일 ‘다’해(루카 11,1-13)

이번 주 복음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예수님의 기도와 ‘주님의 기도’(1-4절), ② 끊임없이 간청하는 친구에 관한 비유(5-8절), 그리고 그 ③ 비유의 적용(9-13절)이다.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시고 떠나신 소위 ‘예루살렘 상경’ 동안 예수님의 모습에 관해서 루카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정보들에 기초하고 있다. 이 여정 동안에 예수님께서는 잠시 길을 멈추기도 하시고 쉬기도 하셨으며

연중 제16주일 ‘다’해(루카 10,38-42)

루카가 세 번째 복음을 기록할 때 그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경험을 지닌 교회의 사람으로 자신을 의식하면서 이를 복음의 2부라고 할 수 있는 사도행전에서 묘사하려 한다. 루카는 당시 교회에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예배 방식이나 생활 양식에 다양한 모습이 있고, 이들 사이에 일정한 긴장이 있음을 기록한다. 예를 들어, 루카는 사도행전에서 식탁 봉사와 말씀 봉사 사이에 어느 정도

연중 제15주일 ‘다’해(루카 10,25-37)

이번 주 주일 복음은 “자비”가 단지 어떤 느낌이나 마음에 와닿는 어떤 깊은 감정 정도가 아님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자비는 분명히 이러한 느낌이나 감정에서 시작하지만, 나아가서 어떤 행동이나 실천, 실제 자비를 행하는 동사動詞로 번역되어야만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질문을 하였던 “어떤 율법 교사”에 대한 예수님의 최종적인 답으로서 “자비를 베푼”, 그리고 “그렇게 하여라” 하시는 복음 마지막 구절에서

연중 제14주일 ‘다’해(루카 10,1-12.17-20 또는 10,1-9)

오늘 복음 대목은 제자들의 사명에 관한 메시지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교회가 민족들의 복음화에 관해 지녀야 할 내용과 태도에 많은 영감을 준다. 1.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앞서 둘씩 보내시며” 복음의 맥락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는 이미 “사도”, 곧 ‘선교사’요 ‘파견자’라고 부르시는 열두 제자를 선발하시고(루카 6,13) 그들을 보내시어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주게 하셨다.(루카 9,1)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마태 16,13-19)

두 사도를 함께 기리는 대축일이자 교황 주일이다. ‘부르심 / 사명 / 순교’라는 세 키워드로 그분들을 비교하면서 기려본다. (※참조. 열쇠와 칼 https://benjikim.com/?p=4633) 뒷부분에 2024년 6월 29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삼종기도 훈화 말씀 번역문(우리말, 영문)이 덧붙여져 있다. 1. 부르심 베드로의 부르심을 보자면, 베드로는 민물고기 어부였으며 벳사이다 태생이었고 주로 카파르나움에서 성장하던 중에 부르심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는 안드레아라는 동생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해(루카 9,11ㄴ-17)

지난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낸 교회는 오늘 다시 한번 또 다른 교의의 옹호를 위해 설립된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거행하면서,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그날까지 교회가 당신을 기억하여 성체성사를 거행하도록 명하신 사실을 기린다. 예수님의 교회는 매일, 매주 성체성사를 거행하면서도 성체성사의 다할 길 없는 신비를 특별한 날, 곧 성령 강림절 후 두 번째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다’해(요한 16,12-15)

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첫 주일로 삼위일체 대축일을 규정한다. 이는 1334년 교황 요한 22세께서 교회의 공식 축일로 지정하면서 그렇게 되었다. 이 축일은 예수님의 생애와 관련된 어떤 복음적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역사 안에서 니체아 공의회(325년)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를 통하여 확정된 교의를 기념하여 거행하고 이에 관해 신앙을 고백하고자 함이다. ‘삼위일체’라는 말 자체는 교의적인 말마디로서 성경에서

성령 강림 대축일 ‘다’해(요한 20,19-23)

교회는 부활 시기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낸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3-17장에 이르는 이른바 ‘고별사’에서 모두 5번에 걸쳐 “보호자”요 “진리의 영”이신 “성령”(파라클리토, παράκλητος, paráklētos라는 말에서 유래, 우리말 성경에서는 모두 “보호자”로 옮겼다. 위로자나 변호인 등의 뜻이 담겼고 현대 영어에서는 Advocate, the Spirit of truth로 옮겼다)을 약속하셨는데(참조. 요한 14,16-17.26;15,26-27;16,5-11.12-15), 교회는 성령 강림으로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주님 승천 대축일 ‘다’해(루카 24,46ㄴ-53)

암브로시안 전례력을 따르는 곳이나 미국의 몇몇 교구들은 부활 제7주일을 지내지만, 이탈리아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많은 곳에서는 부활 후 40일째(부활 제6주간 목요일)에 지내는 주님 승천 대축일을 주일로 옮겨 지내는데, 전례적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기리는 일곱 번째 주일의 의미를 상실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루카복음의 저자와 사도행전의 저자는 동일 인물로 알려지는데, 루카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 곧 루카복음의

부활 제6주일 ‘다’해(요한 14,23ㄴ-29)

부활 시기를 지내고 있는 교회는 지난주부터 예수님 ‘최후의 만찬’이 담겨있는 이른바 ‘예수님의 고별연설’(참조. 요한 13,31-16,33)에서 전례 복음들을 취한다. 이 복음의 내용들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시고”(요한 13,1) 제자들과 당신 공동체가 부활하시어 살아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안에서 어떻게 현실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깨우치고자 하시는 말씀들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장면에서 몇몇 제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