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일 ‘가’해(요한 1,29-34)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리는 대림절 동안 우리를 동행했으며 지난주 월요일 ‘주님 세례 축일’에 만났던 세례자 요한을 오늘 전례에서 다시 만난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어린양”이요 하느님의 종이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기꺼이 자신을 내놓는다. 성탄 시기를 마감한 교회는 연중 시기를 시작하면서 연중 제2주일 복음을 요한복음에서 취한다. 연중 시기 ‘가, 나, 다’ 해의 복음은

주님 세례 축일 ‘가’해(마태 3,13-17)

오늘의 전례에서는 주님의 공현 대축일에 기념하던 주님의 세례를 따로 떼어 별도로 기념한다. 성 막시모(4세기)께서 『동정녀의 몸에서 나신 첫 번째 성탄,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음성)과 성령 안에 나신 두 번째 성탄』이라고 말한 이 날 교회는 주님의 세례를 기념하고 우리의 세례를 상기한다. 동방교회에서는 공현 축일에 세례수를 축복하는 전통이 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인간을 위해 영원한 생명의

주님 공현 대축일 ‘가’해(마태 2,1-12)

교회의 전례는 주님의 탄생으로부터 공현까지, 주님의 현존으로부터 현시顯示까지의 역동성力動性을 기념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예수님께서는 요셉과 약혼한 나자렛의 처녀 마리아를 통하여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심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목자들은 천사의 알림을 듣고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를 찾아냈다.”(루카 2,12.16) “목자들은 아기(예수님)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주었다.”(루카 2,17) 그렇게 예수님, 구세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가’해(루카 2,16-21)

교회는 해마다 1월 1일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낸다. 원래 전례적으로 이날은 성탄 후 8일째 되는 날이므로 과거에는 성경의 전통에 따라 예수님의 할례와 작명 기념일로 지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및 ‘세계 평화의 날’로 정리되었다. 성모 마리아께 ‘하느님의 어머니’를 뜻하는 ‘천주의 성모’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부여한 것은 에페소 공의회(431년)이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가’해(마태 2,13-15.19-23)

성탄절 다음 주일이다. 성탄으로 나신 예수를 기리는 교회가 그 첫 주일을 성 가정 축일로 지내는 것은 이 세상을 찾아오신 예수께서 인간들의 일상과 가정, 곧 인간들의 법과 제도 안에 들어가셨음을 새기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가정이라는 제도와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함이다. 이 축일에 우리는 ① 나자렛의 성 가정, ② 우리들의 가정, 그리고 ③ 교회라는 하느님의 가정에 대하여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가’해(루카 2,1-14)

성탄 대축일을 두고 로마인들은 원래 ‘festum solis invicti’, 즉 ‘정복되지 않은 태양의 축일’이라 불렀다. 다시 말하면, 이제 동지를 갓 지내고 다시 태양이 더 커지는 날들의 시작 시기를 기념하였던 것이다. 죽은듯싶었던 나무들도 이제 다시 생명을 향하여 새로운 잎들을 준비할 것이다. 그렇게 구유 위의 아기 예수님께서는 세상 만물에 생명을 다시 주실 분이시다. 복음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이다. 예수님의

대림 제4주일 ‘가’해(마태 1,18-24)

현대인들은 주님의 탄생에 관한 이 ‘기적적’인 이야기를 신화로 읽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렇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이 이야기가 우리 신앙에 전달하고자 하는 그 깊은 내용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복음사가의 의도이다. 복음사가는 이 복음을 읽는 이들이 예수님이라는 인물이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보내시고자 하는 바로 그분이며, 하느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을 전하고 싶어 한다.

대림 제3주일 ‘가’해(마태 11,2-11)

세례자 요한의 위대함을 두고 그가 그리스도 앞에서 진정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한 선구자로 남으려 했다고 말하지만, 그의 또 다른 위대함 중 하나는 어둠과 시련의 순간에 홀로 결정하거나 답을 내리지 않으면서 예수님께 그 답을 청하려고 한다는 점에 있다. 세례자 요한은 이 세상의 권력과 권세 앞에서 움츠러들거나 떨지 않고 확신에 차서 단호하게 거침이 없었다. 그는 주님 앞에서가

대림 제2주일 ‘가’해(마태 3,1-12)

대림 제2주일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만나도록 인도한다. 복음서가 전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은 ‘선구자’인데, 이는 자기 “뒤에 오시는 분”(마태 3,11), 곧 메시아에 앞서 와서 이 세상에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거의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참조. 마태 4,19;10,38;16,24) 제자처럼 비치는데도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비교해 세례자 요한이 더 큰 힘을 지니고 있으며, 훨씬 더 급진적인

대림 제1주일 ‘가’해(마태 24,37-44)

전례력으로 새해 첫 주일이다. 대림 제1주일을 라틴어로는 ‘레바비 주일’(Levavi, 들어올리다)이라는 명칭으로 불렀다. 그 이유는 이날 부르는 그레고리안 성가 입당송 구절이 “Ad te levavi animam meam.”(주님, 당신께 제 영혼을 들어 올립니다)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가’해의 대림절 4주 동안 제1독서는 이사야 예언서에서 취한다.(이런 의미로 이사야를 ‘대림시기의 예언자’라고 부를 수도 있다) 기원전 7∼8세기의 암울한 시기에 이사야 예언자가 메시아께서 오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