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대축일 밤 미사 ‘나’해

오늘 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이사 9,5)라는 이사야 예언자의 위대한 예언이 성취됩니다.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인생에서 한 아기가 태어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이는 특별한 사건이며, 모든 것을 바꾸고, 생각지도 못한 힘을 내게 하며, 불편과 피로, 밤샘을 뛰어넘게 하는 특별한 일이고,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을 것

루카 1,26-38(대림 제4주일 ‘나’해)

대림절의 막바지인 대림 제4주일에는 항상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9)라고 노래하였던 나자렛의 한 여인 마리아에게 일어났던 하느님의 일에 관한 복음을 듣게 된다. 천사가 마리아라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몸에 구세주께서 사람이 되어 오시고 잉태되신다는 사실을 알렸던 그 장면은 수도 없이 많은 예술 작품으로 묘사된다. 이는 당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느님 말씀의 성취이다. 1.

요한 1,6-8.19-28(대림 제3주일 ‘나’해-자선주일)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태오나 루카 복음사가(참조. 마태 3,7-12 루카 3,7-18)와는 달리 복음의 기록을 시작하면서 세례자 요한의 출현에 관해 간결하면서도 종합적으로 짧게 전한다.(참조. 마르 1,1-8) 그런 까닭으로 전통적으로 세례자 요한에 관한 복음을 읽는 대림 제3주일 ‘나’해에는 세례자 요한에 관하여 다른 내용을 알려주는 네 번째 복음인 요한복음에서 복음을 취한다. 그런 배경 안에서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의 서문에서 3구절을 취하고,

마르 1,1-8(대림 제2주일 ‘나’해)

1.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전례력에 따라 읽는 오늘 마르코복음의 첫 대목에는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마르 1,1)이라는 마르코복음의 제목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제목을 붙인 다음에 마르코 복음사가는 그 제목에 걸맞은 내용의 시작을 위해 곧바로 이사야 예언서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세례자 요한의 선구자적 사명을 언급한다. 복음의 제목에 등장하는 “시작”이라는 말은 즉시 구약 성경의

마르 13,33-37(대림 제1주일 ‘나’해)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나’해 대림待臨 제1주일이다. 대림 시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지만, 스페인과 갈리아 지방에서 성탄을 앞두고 참회의 기간을 가졌던 관습이 생겨났던 4세기 말 무렵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본격적인 의미에서 대림 시기 거행은 6세기 이후부터 로마에서 전례에 도입되면서부터이다. ‘대림’은 ‘도착’을 뜻하는 라틴 말 ‘아드벤투스’(Adventus)에서 온 것으로 ‘오시기를 기다린다’는 뜻이므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마태 25,31-46(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가’해)

전례력으로 연중 마지막 주일인 이 축일을 줄여서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라고도 하는데, 이 축일은 1925년(*1924년은 아돌프 히틀러가 ‘Mein Kampf’라는 저서를 발간하여 소위 독일식 사회주의인 나찌즘을 주창하며 세계의 왕이 되고자 하던 시기였고, 1925년은 러시아에 무신론적 공산주의가 그 뿌리를 깊숙이 내려 세계 제국을 꿈꾸어가던 시기였다. 오늘도 소위 G2는 세계의 패권을 두고 다툰다) 교황 비오 11세 교황님에 의해 제정되었다. 이는

마태 25,14-30 또는 25,14-15.19-21(연중 제33주일 ‘가’해)

지난주부터 듣는 마태오 복음 25장에 있는 ‘열 처녀의 비유(1-13절)’, ‘탈렌트의 비유(14-30절)’, ‘최후의 심판 비유(31-46절)’ 중 두 번째이다. 종말에 관한 말씀으로 들려주시는 세 비유 중 열 처녀의 비유에서는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고 나뉠 수도 없는 것을 묵상하고, 루카복음에도 전하는 오늘 복음의 탈렌트 비유에서는 주님 앞에서 셈해야 할 때 결코 땅에

마태 25,1-13(연중 제32주일 ‘가’해)

마태오 복음 24장과 25장에는 그리스도의 재림, 세상의 종말과 심판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후반부 격인 25장에만도 3개의 비유가 담겨있는데, 오늘부터 그리스도 왕 대축일까지 3주간 동안 이 비유들을 나누어 듣는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만이 전하는 비유이다. 이 비유는 “깨어 있어라”하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비유이면서, 동시에 신랑은 반드시 올 것이고 신랑과 함께 잔치에 들어가는 이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마태 23,1-12(연중 제31주일 ‘가’해)

마태오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 “바리사이들”, “사두가이들” “율법 교사” 등과 몇 번에 걸친 논쟁과 의견 다툼을 가지셨다.(참조. 마태 21,23-22,46) 이런 일들이 있고 나서 예루살렘에 머무시는 마지막 시기 동안 예수님께서는 최종적으로 종말에 관한 말씀을 하시기 전에 또 하나의 긴 연설을 하신다. 이 연설의 내용은 당신에게 시비를 걸어 왔고, 당신을 시험하려 들었으며, 중상모략을 통해

마태 22,34-40(연중 제30주일 ‘가’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성전에서 상인들을 내쫓으신 사건(마태 21,12-17)이 있었던 뒤에,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 바리사이, 사두가이 등 소위 기득권층이나 지도자들과 논쟁이 벌어진다. 이러한 논쟁 끝에 “예수님께 감히 묻는 사람이 더 이상 없었다.”(마태 22,46) 그렇지만, 이러한 논쟁은 예수님께 수난과 죽음을 향한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때 벌어진 논란은, ① 예수님의 권한(21,21-46) ② 세금-주민세의 납부(22,15-22) ③ 부활 여부(22,3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