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6,1-6.16-18(재의 수요일)

사순절 여정을 시작합니다. 사순절은 우리가 따라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요엘 예언자의 말씀으로 열립니다. 사순절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그리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우리에게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어,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요엘 2,15)라고 간청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에서 나오는 초대입니다. 너희가 나에게로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사순 시기는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여정입니다. 바쁘다는 핑계, 무관심의 핑계를 대며 “주님, 조금만

마르 1,40-45(연중 제6주일 ‘나’해)

몇 주째 우리는 여전히 마르코복음 1장에 머물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주일 복음에서 우리는 특정 시간이나 장소가 명시되지 않은 이야기 하나를 다소 갑작스러운 듯 듣는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에서 일어난 일처럼 들을 수 있게 된다. 예수님과 어떤 나병 환자의 만남 이야기이다. 1.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성경에서는 문둥병(한센병)뿐 아니라 타박상이나 상처들 및

마르 1,29-39(연중 제5주일 ‘나’해)

지난주 우리는 이른바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마르 1,21-34)라고 알려지는 대목의 전반부에서 예수님의 일과에 관해 듣기 시작했다. 예수님께서는 대중들에게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말씀을 선포하셨고, 그에 관한 표징을 일으키시어 사람들이 놀랐으며, 예수님의 소문은 갈릴래아 지역에 두루 퍼져나갔다. 오늘 복음은 그러한 말씀과 표징들의 연장이며,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 중 후반부에 해당한다. 1.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예수님과 첫 번째로

마르 1,21ㄴ-28(연중 제4주일 ‘나’해)

지난주 복음에서 네 제자의 부르심(마르 1,16-20)을 전한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제 예수님께서 더는 혼자가 아니시라고 강조한다. 바야흐로 예언자이자 교사였던 세례자 요한이 체포된 후에 그의 제자라고 추정되는 예수라는 라삐 한 분이 사해 해안을 따라 갈릴래아로 오셨는데, 그 라삐 예수님을 따르는 작은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 작은 공동체는 점점 커질 것이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그분 삶에 끝까지 동행할 것이었다. 복음사가

마르 1,14-20(연중 제3주일 ‘나’해)

노인이더라도 노인성 치매에 걸리지 않는 한 종종 과거의 기억, 특별히 뭔가를 새롭게 시작했거나 그로써 인생이 달라졌다거나 인생에 흔적을 남긴 사랑과도 같은 것, 아직도 나의 인생을 일정부분 사로잡고 있는 무엇인가를 기억하며 회개와도 같은 순간을 다시 되살리려고 노력하곤 한다. 감히 회개의 순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성소聖召의 순간, 부르심의 순간, 소명召命의 순간, 주님께서 그때까지 살았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기를 원하신다고

요한 1,35-42(연중 제2주일 ‘나’해)

1.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insegnare<in+signum: 방향을 가리키는 신호 / educare: 끌어내다 2. “무엇을 찾느냐?” 공생활 시작의 예수님의 제1성→부활하신 주님의 제1성 “누구?” “무엇”에서 “누구”에로 가는 여정 3.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매력에 이끌리는 삶, 사랑의 시작, 삶에 동참하려는 원의 4. “와서 보아라” 발과 눈이 할 수 있는 인간의 기본 동작 ‘보다’, ‘눈여겨보다’ 가다→보다→믿다 내가 가고 내가 보아

주님 세례 축일

교회는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에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를 마감하고, 성탄의 화려한 장식을 모두 거둔 다음, 사순 시기까지 특별한 대축일이 없이 연중 시기를 지낸다. 옛 전통에서는 공현 대축일 전례 안에서 적절한 순간에 성삼일과 부활절을 예고하는 관습이 있기도 했다. 성탄 시기를 마감하는 주님 세례 축일의 전례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마태 2,1-12(주님 공현 대축일 ‘나’해)

“하느님 경배는 평범한 상황 속에 숨어 계신 하느님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눈을 들다”, “길을 떠나다”, “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1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미사 강론에서 동방박사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르침을 이같이 세 가지 동사로 요약했다. 교황은 동방박사들이 아기로 오신 주님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었는지 기억하라면서 물질적 재화나 성공과 비교할 수 없는 내적 기쁨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루카 2,16-21(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나’해)

성탄 후 8일째 되는 날로서 복음상으로는 예수님의 할례와 작명 기념일이다. 교회는 1970년 이래로 오늘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낸다. ‘하느님의 어머니’, 곧 ‘천주의 성모’라는 호칭은 초 세기부터 신자들이 사용했으며 우리 성모송에 담겼다. 성모 마리아께 ‘천주의 성모’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부여한 것은 에페소 공의회(431년)이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천주의 성모 마리아 축일’을

루카 2,22-40 또는 2,22.39-40(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나’해)

성탄 후 12일간 주님의 탄생을 경축하는 동안 만나게 되는 유일한 주일에 교회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기리는 주일을 지내면서 인간의 시간 속에 들어오신 영원하신 하느님의 “아기가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2,40)라는 사실을 기념한다. ‘가족’이라는 가치가 무너져 가는 현시대에 내가 사는 ‘가족’의 가치를 돌아보는 축일이기도 하다. 성탄절에 교회가 이스라엘의 가난한 목자들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