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6,41-51(연중 제19주일 ‘나’해)

연중 제17주일부터 제21주일까지 다섯 번으로 나누어 듣게 되는 요한복음 6장의 내용 중 그 세 번째인 오늘 복음은 한 마디로 예수님 자신의 신원과 정체성(identity)에 관한 자기 계시이다. 오늘 복음은 지난 주 복음의 마지막 절을 반복하고 그에 이어지는 대목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빵”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주님 앞에 유다인들이 수군거리니 주님께서는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 하시며 당신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요한 6,24-35(연중 제18주일 ‘나’해)

빵을 많게 하시어 이를 나누게 하신 표징을 보고 배불리 빵을 먹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면서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이를 거부하시고) 혼자서 산으로 물러가셨다.”(요한 6,14-15)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카파르나움으로” 가려는 제자들을 뒤에 남겨 놓으셨다.(참조. 요한 6,16-17) 제자들이 호수를 건너가는 중에 날은 “이미

요한 6,1-15(연중 제17주일 ‘나’해)

‘나’해에는 마르코복음을 따라가는 것이 원칙이다. 이에 따라 지난주 연중 제16주일까지 마르코복음이 계속 낭독되었다. 그러나 ‘나’해의 연중 제17주일부터 21주일까지 다섯 주 주일은 요한복음 6장에서 복음을 취한다. 마르코복음의 순서를 따라가되 내용상으로 더욱더 풍부한 요한복음을 취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연중 제22주일에는 다시 마르코복음 7장으로 돌아와 연중 제33주일까지 마르코복음이 주일 복음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복음은 원래

마르 6,30-34(연중 제16주일 ‘나’해)

오늘 복음은 전개 순서로 보아 세례자 요한의 죽음(마르 6,17-29)과 빵을 많게 하신 기적(마르 6,35-44) 사이에 배치되어 있다. 예수님으로부터 파견된 “사도들이” 예수님께 돌아와 그동안의 활동을 보고한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중에 쉴 틈이 없는 사도들의 활약으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특별한 능력들이 실제로 발휘되었고, 예수님 역시 가엾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시기에 여념이 없으셨다. 1.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다 보고하였다”

마르 6,7-13(연중 제15주일 ‘나’해)

오늘 복음은 공관복음이 공통으로 전하는 복음이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을 예수님이 자기 고향인 나자렛에서 무시를 당하시고, 또 세례자 요한이 죽음을 당한 다음에 배치한다. 이는 어려움에 부닥친 상황에서 제자들을 파견하셨다는 이야기가 된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파견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기 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사명 수행에서 지녀야 할 생활 방식과 태도에 대하여 당부하신다. 어려움 속에서 이루어진 파견이었지만, 제자들의

마르 6,1-6(연중 제14주일 ‘나’해)

전도 여행을 나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고향 나자렛으로 가신다.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많은 이들이 주시하며 예수님을 관찰한다. 고향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닌 선입견, 천한 노동 계급이라는 예수님의 출신 배경, 그 배경을 잘 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거부하고 못마땅하게 여긴다. 오늘 복음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서 우리의 습관적인 태도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일상 안에서 그저 그

마르 5,21-43(연중 제13주일 ‘나’해)

오늘 복음에서는 백방으로 딸을 살려보려 했던 회당장 딸의 소생 이야기와 남모르게 눈물 흘리며 철저한 냉대와 외로움 속에서 자신의 치유를 갈망하던 한 여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전자가 자기 밖에서 치유를 찾던 딸과 아버지의 이야기라면, 후자는 숨어서 자기 안에서 번민과 갈등으로 치유를 모색하던 여인의 이야기이다. 오늘 복음의 내용은 공관 복음사가들이 공통으로 전하는 내용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가부장적인 관습에 따라

마르 4,35-41(연중 제12주일 ‘나’해)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의 초반부에 위치한다. 마르코 복음의 초반부는 예수님의 갈릴래아 활동 시절 이야기로서 그분께 대한 사람들의 믿음과 그분의 능력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성경에는 성난 바다나 두려운 큰물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다.(참조. 탈출 15,8 시편 89 이사 51,9-10) 오늘 복음에서도 호수는 거칠고 두려우며 위험한 곳이다. 오늘 복음이야기는 요나서와 그 얼개가 매우 흡사하다. 『요나는 주님을 피하여

마르 4,26-34(연중 제11주일 ‘나’해)

마르코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았던 제자들과 다가올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군중들에게 비유로 긴 말씀을 하신다.(참조. 마르 4,1-34) 비유는 얼핏 수수께끼처럼 들리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 그리고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려는 이들, 예수님 “밖에서…밖에 서서”(마르 3,31.32) 있는 “저 바깥 사람들”(마르 4,11)이 아닌, ‘안에’ 있으려는 이들에게 ‘비유로 남지 않고’(참조. 마르 4,11) “신비”(마르 4,11)가 된다.

마르 3,20-35(연중 제10주일 ‘나’해)

부활 시기를 끝나고 연중 시기를 시작하면서 우리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두 대축일, 곧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지내고 이제 ‘나’해의 복음인 마르코의 복음으로 돌아와 연중 제10주일을 맞는다. 바야흐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스승으로 인정받고 계셨으며,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의 사명을 잇는 예언자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