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신부가 예수님께서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제자들과의 공개적인 식탁에서 말씀하시고, 실제로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요한 13,26) 하였는데도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요한 13,28)라는 구절에 관하여 질문을 제기했다. 공공연하게 유다를 지목하셨는데도 제자들이 유다의 배반을 왜 알아차리지 못했느냐는 것이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던 요한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기”(요한 13,24)까지 했었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눈치채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관해 요한 크리소스토모(349년경~407년) 성인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겨 놓으신다.
「그리스도께서 유다의 정체를 숨기신 까닭과 방법: 제자들이 ‘그가 누구냐?’고 묻고 예수님께서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대답하셨는데, 제자들이 그 말씀을 어째서 알아듣지 못했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아주 작은 소리로 말씀하셨고 그 물음에 답할 때 요한이 그분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그분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것] 아닐까요?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배반자의 정체가 알려지지 않도록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 예수님께서 그가 누구인지 밝히셨더라면 … 아마 베드로가 그자를 죽여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식탁에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아무도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요한도 몰랐을까요? 그는 제자가 그런 사악함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그런 사악함과 너무나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그래서 아무도 의심할 줄 몰랐습니다. … 제자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요한이 우리에게 전해 주는 대로입니다.(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요한 복음 강해」 72,3) – (교부들의 성경 주해, 요한복음서 11-21장, 분도, 2013년, 180쪽)」
적어도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에 따를 때, 정답은 배반자 유다를 빤히 아셨으면서도 그를 “끝까지 사랑”(요한 13,1)하시고, 다른 형제들이 행여 그것을 알아차릴까 노심초사하시면서 그를 숨겨주고자 하였으며, 나중에라도 유다가 예수님의 그런 마음을 기억하고 알도록 바라셨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유다가 목매달아 자살한 뒤에도 무척 가슴 아파하시면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그를 어깨에 메시고 눈물지으셨을 자비하신 분, 잃은 양 한마리를 어떻게라도 찾아 그를 어깨에 메셨을(참조. 루카 15,5) 착한 목자이시다.(참조. 유다를 어깨에 지신 예수님 http://benjikim.com/?p=1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