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을 노/로老’라는 글자는 ‘耂’라는 글자와 같은 글자이다. ‘늙을 노/로老’라는 글자가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부모님으로부터 얻은 신체의 부분이므로 함부로 자르지 못하고 길러야 했던 옛날에, 머리카락이나 수염, 눈썹 등이 길게 자란 노인이 지팡이를 들고 서 있는 모습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얘기이다. ‘耂’는 털이 긴 노인의 모습이고, 지팡이 모양이 변해 현재의 ‘匕’ 모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毛+人+匕 라고 보기도 하는데, 이 역시 ‘털 모毛’와 ‘사람 인人’, 그리고 ‘비수 비匕(‘사람 인人’을 뒤집은 모양)’를 모두 합하여 머리털과 같은 털이 긴 사람을 뜻한다고 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혹자는 70세 정도의 나이는 먹어야 연로한 노인이므로 ‘老’를 숫자 7(七)과 10(十)을 담은 글자로 풀이하기도 하고, ‘늙을 노老’는 본디 ‘털 모毛’에 변화를 나타내는 ‘匕’(‘될 화化’에서 ‘사람 인人’을 떼어낸 것)을 붙여 만든 글자로서 즉 털이 흰 상태로 변화된 사람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늙을 노老’라는 글자와 ‘살필 고考’라는 글자의 자원字原이 같다고 하여 둘의 의미를 연결해서 나이를 많이 먹을수록 이것저것 살피고 생각이 많아진다는 식으로 풀기도 하고, 애들에게 그림으로 가르칠 때는 노인이 지팡이를 어깨에 걸치고 결가부좌를 하여 앉아 있는 모습 그대로 글자가 생겼다고 가르치기도 한다. 어떤 것이 정설이든 아니든, ‘늙을 노/로老’에는 길고 흰 털(머리털·눈썹·수염), 지팡이, 깊은 생각, 이런 것들이 담겨있는 글자임은 틀림이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글자를 볼 때마다 로댕Rodin(1840∼1917년)의 유명한 작품인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리니 글자가 그 모습 그대로인 것만 같다.
‘늙을 노/로老=耂’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글자들은 다양하고 많다. 잘 아는 ‘효도 효孝’ ‘생각할 고考’ ‘늙을 기耆’ ‘즐길 기嗜’ ‘사람 자者’ 등등이다. ‘효도 효孝’는 ‘아들(子)이 늙은(老) 어버이를 업고 있는 모습’으로, ‘효도하다’는 뜻이라 하고, ‘생각할 고考’는 ‘공교할 교巧’가 들어있어 ‘노인(耂)은 생각을 교묘하게(丂) 잘한다’ 하는 의미라 하며, ‘늙을 기耆’는 ‘가로 왈曰’이 더해져 점잖은 말씀의 어르신을 생각나게 한다 하고, 여기에 ‘입 구口’마저 더하면 ‘즐길 기嗜’가 되면서 입으로 먹는 것이든 말씀하시는 것이든 이를 즐기시는 어르신이라 할 수 있으며, ‘사람 자者’ 혹은 ‘놈 자者’라 하는 글자는 ‘가로 왈曰’과 함께 ‘이놈!’ 하시는 어르신이 연상된다 하겠다.
우리 말의 ‘늙다’는 ‘느리다’ ‘늦다’에서 온다. 시간이 오래 걸린 상태이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러 물건이 오래되면 ‘낡다’라고 표현하고, 사람이 오래되면 ‘늙다’로 표현한다. 어근은 같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늙다’의 반대말인 ‘젊다’는 형용사로서 성질이나 상태를 묘사하는 데 비해, ‘늙다’는 어떤 상황이 되어가는 과정이요 움직임의 진행이므로 동사이다. 중고등 시절에 곧잘 시험 문제로 기억에 남았던 내용이다.
이곳 미국 생활에서 한 가지 큰 소득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장차 나의 노년 시절을 매일 적나라한 현실로 마주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매일 나는 이곳 울타리 안에 있는 산 필립이라 이름 지어놓은 소위 은퇴한 수도자들 20여 명과 함께 살고, 매 끼니를 같이 한다.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은 아흔다섯 살이시고, 전문 의료인이나 간병인의 24시간 보조를 받아야 하는 분들, 기계적인 보조 장치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 혼자서 자기 생활을 진행할 수 있는 분들로 나뉘는데, 환갑이 넘었다지만 아직 젊고 싱싱한 나는 아무 기구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거동이 자유로운 사람들 6명 중에서 세 번째로 젊다. 1년 남짓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두 번 초상을 치렀다. 그리고 평상시에도 찾아오는 이가 없지만, 장례식에도 찾아오는 이가 없다는 사실도 알았다. 모두 주차장에 정차된 자동차처럼 시동이 걸린 상태에서 서로 마주 보며 누구의 연료가 언제 어떻게 떨어지는지를 말 없는 두려움 속에서 함께 지켜보는 일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어느 날 어떤 이유로든 예기치 않게 병원에 다녀오게 되면 어김없이 헤드폰을 하나씩 쓰고 돌아오는 것이 웬일인가 싶었는데, 그것이 귀가 들리지 않으므로 헤드폰에 조그만 마이크 장치를 해서 적어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첫 번째 조치라는 것을 나는 한참 지난 뒤에야 알았다. 노인들은 일반적으로 냄새가 난다. 내 몸을 내가 씻지 못할 상황이라는 한계 때문이고, 불편한 몸이어서 음식물을 자주 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씻는 것은 관두고라도 내 바지의 허리띠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끌러야 하고 잠가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참 고역이고 슬픈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를 노인들은 과거의 화려했던 흘러간 얘기들을 자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아직 기력이 있는 노인들의 이야기일 뿐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주로 오늘의 현실에 충실하다.
현실의 오늘 중에서도 특별히 식사는 대단히 중요하다.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서로 돌릴 때마다 누구에게 먼저 어떤 음식을 돌려야 하는지, 보지 않는 것 같아도 예민하게 그것들을 서로 지켜본다. 음식 접시를 들고 옆에 갈 때마다 농담처럼 ‘이것 내가 다 먹어도 돼?’라고 물으시는 신부님의 말씀이 그저 농담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느낀다. 노인들은 에너지원인 음식이 곧 생명이라는 잠재의식을 갖는다. 노인들은 어리바리해서 동작이 느리고 이것인지 저것인지 구분을 잘 못 한다고 하지만 한 번 식탁에 오른 음식이 다시 변형되어 나왔는지 아닌지는 금방 알아서 새 음식만을 먹고 싶어 한다. 노인들은 어느 날 자기 혼자 걸을 수 없어서 지팡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손에 들려주는 지팡이를 한사코 거부하는 습성도 지녔다. 어떤 수사님이 한 두어 달 장기간 입원하시게 되어 입원 전날 저녁에 방으로 함께 가서 짐을 싸는 것을 도와드린 적이 있다. 병원에서는 환자복을 입을 것이므로 실제로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쓰레기 더미에서나 찾을 법한 낡아빠진 여행용 가방에 맨 먼저 내게 싸달라고 부탁한 짐은 다이얼로 주파수를 맞추는 작은 아날로그식 안테나 라디오였다.
사람들의 이야기와 세상 이야기가 끊어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수사님은 대략 3달 동안 병원에 계셨는데, 병실에 있는 전화로 거의 매일 저녁 시간에 맞추어 어김없이 우리 식당으로 전화를 해 오셨다. 당뇨가 아주 심한 수사님이셨는데도 당신 생일날 수사님은 생일 핑계를 대고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4번이나 드셨고, 누군가 홈 메이드로 치즈케이크를 가져왔다는 말에 주변에서 극구 만류하는 치즈케이크마저 기어이 드셨다. 아흔네 살 할아버지 신부님이 돌아가신 바로 다음 주 도착한 아흔다섯 할아버지 신부님은 계시던 곳에서 그저 어떤 곳인지 가서 둘러보고만 오라는 말에 속아서 이곳으로 강제 이주를 하셨다. 그렇게 된 사연은 평생 애들하고만 살았던 살레시오회 신부님이시라 애들이 있는 학교에서 애들이 보고 싶어 자주 교실에 드나드는 사고 아닌 사고를 친 결과였다.
누구에게나 다가올 노인이고 노년이다. 노인이 품위 있는 노년을 보장받는 사회만이 건전한 사회라지만, 품위는 제쳐놓고 치매가 와서 처치 곤란하고 고약한 냄새가 풀풀 나는 나의 노년일지라도 되도록 주변에 부담 주지 않고, 하는 짓이 우스워 그저 가끔 웃음이라도 주변에 선물할 수 있는 나의 노년이었으면 좋겠다.(20180718 *이미지-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