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커타의 성녀 마더 테레사,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 성 요한 바오로 2세 등 희망이 보이지 않고 전쟁이 끊이지 않는 현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다른 한편에서 멋진 성인들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시대를 사는 행운을 누린다. 10월 22일은 우리나라에 오셔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 땅에 입 맞추셨으며, 이 땅의 성인 성녀들의 시성식을 거행하시기도 하셨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20~2005년)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나로서는 운 좋게도 생존해 계시던 중에 몇 번 개인적인 사진까지도 찍을 수 있었던 교황님이시다. 부제 때 제의방에서 어머니께 보내드릴 수 있도록 멋진 사진을 찍어주시라고 말씀드렸더니 한국 방문 때 배우셨던 “찬미 예수!”라는 우리말로 인사를 해 주셨던 교황님이시다. 그분의 가르침, 지혜, 영감을 주는 생애, 뛰어난 인품과 능력은 실로 인류의 역사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그분께 많은 사랑과 존경을 드린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평범함에 만족하지 마십시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십시오.’(루카 5,4)” 성경을 인용하신 말씀이면서도 ‘Duc in altum’이라는 라틴말로 더 유명해진 성인 교황님의 말씀이기도 하다. 사실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는 성인에 관하여, 더구나 그분 삶의 깊은 신비를 섣부르게 이해하여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많은 이가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성인 교황님께 매료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폴란드어: Karol Józef Wojtyła)라는 이름을 지니셨던 폴란드 태생 성인께 감동하는 본질은 무엇일까? 어쩌면 답이 간단할지도 모른다. 부인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진실로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총이 흐르도록 하였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는 인생을 살면서 실제 큰 고통을 겪었다. 12살이 되기 전 이미 형과 어머니를 모두 잃었다. 나치의 점령으로 폴란드의 지하 신학교에서 사제 양성과정을 거쳤다. 그렇게 혹독한 어려운 환경 안에서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길은 쉽지 않습니다. 그 길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절망하지 마십시오! 가파른 길이어도 오르다 보면 훨씬 더 넓은 지평선을 향해 더 빨리 올라갈 수 있습니다.”라는 말로 자신을 위로하며 주님께 의지했다.
그뿐만 아니라 고통과 고뇌 속에서도 우리의 복되신 어머니 성모님을 향한 신심을 잃지 않았다. 교황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것이 예수님의 성심에 곧바로 이르게 되는 길이라는 것을 이해했던 성인이었다. 교황으로서 문장에 새긴 그분의 표어는 그래서 “Totus Tuus, Maria(영어: Totally yours, Mary, 온전히 당신의 것, 마리아)”였다. 그분의 성모님 사랑은 묵주기도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우리가 매일 바치는 묵주기도에서 ‘영광·환희·고통’의 신비에 ‘빛의 신비’를 더한 이가 바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시다. 성인은 “성모님처럼 성령을 힘입어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강조하면서 성모님께 의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거듭 말했다.
성인은 성모님의 신심뿐만 아니라 특별히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신심을 널리 퍼뜨리고자 애쓴 성인이시기도 하다. 그는 세상 모든 이가 하느님께서 온전히 사랑이시며 자비로우신 분, 그 어떤 죄라도 용서하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시는 분이심을 알기 바랐다. “우리는 많은 연약함과 실패들의 총합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과 그분 아드님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진정한 능력의 총합체입니다.(We are not the sum of our weaknesses and failures; we are the sum of the Father’s love for us and our real capacity to become the image of His Son.)”라고 말하는 성인은 1983년 12월 28일 자신이 늘 강조해왔던 심오한 자비의 행동을 몸소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날 교황은 1981년 5월 13일 베드로 광장에서 자신을 암살하려고 했던 메흐멧 알리 아카Mehmet Ali Ağca가 수감되어 있던 감옥을 방문하여 자신에게 총을 쏘았던 이를 진심으로 용서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누누이 강조했던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는 자비, 가난, 성性, 여성성과 남성성이 지닌 고유성 등에 관한 가르침이 망라된다. 그는 인간 개개인이 지닌 무한하고 대체불가능한 가치를 본다. “인간 하나하나는 유일하며 독특하고 반복될 수 없는 존재로서 영원으로부터 생각되고 선택된 존재, 자기만의 이름으로 불리고 식별되는 존재입니다.”라고 말하는 성인은 파킨슨병으로 오랫동안 시달리면서도 세계 곳곳을 방문하기 위해 사목 방문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지구라는 이 별 위에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리지외의 성녀 테레사는 “세상은 여러분의 집이라기보다 오히려 항해하기 위한 배(船)입니다.”라고 말한다. 성녀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이러한 지향으로 열심히 살았던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삶은 우리 삶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성인 교황은 성덕과 성화를 향한 보편적인 부르심을 강조하면서 각 개인이 매일 노력하도록 촉구한다.
돌아가시기 세 해 전이었던 2002년 세계 살레시오 총회에 참석했을 때가 교황님을 뵈었던 마지막이었는데, 그때 교황님께서 쉼 없이 흘러내리는 침을 흠뻑 적셔가면서, 원고를 손에 쥐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떨리는 손으로, 전동 휠체어에 앉으신 채로 발음이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알아들을 수는 있게 “Siate Santi!(성인이 되십시오!)”라는 제목의 말씀을 주시던 순간의 감동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성인에 따를 때,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세 번 거룩한 하느님의 모상으로 지어진 우리 인간 모두의 소명이다.
교황은 “이 땅의 좋은 모든 것, 직업상의 성공, 여러분이 꿈꾸는 인간적인 사랑, 그 어느 것일지라도 여러분의 가장 깊고 내밀한 욕구를 결코 완전하게 충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과의 만남만이 여러분의 삶에 완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신다. 많은 이가 이미 알고 있듯이 그리스도인의 삶은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삶이 아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로 문을 활짝 여십시오!”라는 교황님의 말씀처럼 그리스도께 우리 마음의 문을 열고 그분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어 자리 잡으시면 우리는 진정 우리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충만하게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발견한 의미는 우리에게 하나의 사명이 된다. 사랑의 사명이다. 자비의 사명이다. 거룩함의 사명이다. “행복을 꿈꿀 때 그 행복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무엇도 당신을 만족시킬 수 없을 때 예수님께서 당신을 기다리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그토록 매력을 느끼는 아름다움이십니다. 적당한 타협에 안주할 수 없도록 당신을 자극하면서 충만함에 이르고자 하는 갈증을 일으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저희를 위하여 빌으소서. 아멘!
더욱더 하느님과 가까이 하는 삶을 살도록 말씀으로 나눔의 선교를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동입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귀한 순간을 가졌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