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호칭기도

1월 하순 어느 토요일이었다. 친한 친구가 우리 집 거실 마룻바닥 까는 것을 도와주었다. 점심을 함께 먹느라 잠시 쉬었다가, 잡담으로 수다를 떨다가, 그렇게 친구는 돌아갔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나 말도 안 되는 문자와 함께 전화들을 받았다. 친구가 쓰러졌고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나는 친구가 매우 희귀하면서도 대단히 빨리 진행되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친구는 치료에 성실하게 임했고, 결국 완치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처음에 단순한 감기인 줄 알았다가 암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급속도로 부정적인 상황에 직면해야 했던 내용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면서 내 인생에도 뜻밖의 ‘모닝콜’을 접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몇 주간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머릿속에 찾아드는 생각들은 인생이 그리도 허무하고 인간 존재 자체가 그리도 허약하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대부분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함께 별다른 걱정 없이 그렇게 일상을 지낸다. 그렇지만 우리의 인생은 한순간에 걷잡을 수 없이 전혀 다른 국면으로 바뀔 수도 있다.

우리 대부분은 혹독한 시련에서 나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막연한 오해 속에서 살아간다. 집안의 재정적인 문제를 비롯하여 건강, 가족 구성원의 죽음, 자녀 문제 등 나름대로 큰 십자가 속에 산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가 나보다 낫게 산다고 여기지만 그래도 대충은 그저 사는 것이 거기에서 거기겠지 하는 가정假定 하에 산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부분은, 특별히 소셜 미디어에서 자신의 깊은 고민과 갈등에 관한 자기의 본모습을 감추거나 그럴듯하게 포장하면서 살아간다.

우리 모두 시련을 맞으면서는 이에 맞서 싸우며 살아간다. 시련 속에서도 운이 좋으면 그때그때 그런 쉼의 순간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기도 한다.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 또 가족 중의 누군가와 얘기하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그가 실제 내면적으로는 엄청난 도전과 시련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무척 놀란다. 맞다. 우리 모두 각자가 져야만 하는 자기만의 십자가가 있게 마련이다. 인생에서 오는 스트레스들을 날려버리기 위해 인생 자체를 날려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야 할 바들을 일목요연하게 공책에 써본다고 한들 그것이 문제 자체를 해결해 줄 리도 없다. 완전한 행복을 발견하기 위해 내 인생을 내가 통제할 수도 없다. 세속적인 방식으로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하려 들면 결국 실패하게 마련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장애물만 넘고 나면 모든 것이 편안해질 것 같지만, 그것을 넘고 나면 금세 다음 장애물이 나타난다. 진정한 평화와 행복, 기쁨을 찾는 길은 세속적인 경쟁방식을 포기하고 하느님을 믿어 그분께 의탁하는 길뿐이다.

내 여동생은 가톨릭 수녀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뉴욕에 있는 ‘생명의 자매Sister of Life’라는 수녀회의 수녀이다. 브롱스에서 몇 년을 수련하다가 수녀가 되었다. 수녀로서 뉴욕의 길거리를 오가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고, 어떤 사람들은 수녀에게 다가가 질문들을 하곤 한다. 동생 수녀에게는 이런 얘깃거리들이 참 많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수녀에게 다가와 자기들의 깊은 고민거리들을 자주 나눈다 한다. 그런 과정에서 동생은 사람들이 두 가지 방식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한쪽은 자기들 인생에 나쁜 일이 생겨서 하느님이 못 되고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나 재정적인 파산과도 같은 경우에 하느님을 욕하고 원망한다. 다른 한편은 자기들이 자기 인생에서 과거에 어떤 못된 일을 저질렀으므로, 예를 들어 낙태나 가족 구성원들과 원수가 되었다는 것 등, 자기 자신들이 나쁘다고 믿는다. 다시 말하자면 자기 인생에서 나쁜 일이 생긴 것을 과거 자기들의 잘못 때문에 받는 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편이든 저편이든 이들은 모두 하느님과 불편한 관계로 살거나 관계 자체가 없는 듯이 살아간다. 이들은 하느님이 누구이신지를 모르고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모르며, 또 하느님께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모른다.

동생 수녀는 이런 경우의 만남 속에서 하느님 자비의 메시지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한다. 동생 수녀는 하느님 자비의 사도로 알려진 성녀 파우스티나(1905~1938년)께 깊은 신심을 갖고, 성녀의 메시지야말로 현대 세속적인 아픔을 살아가는 영혼들에게 완벽한 해독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동생 수녀는 아픔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은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는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이시며, 과거에 어떤 죄를 저질렀든 이를 개의치 않는 분이라고 알린다. 하느님께서는 과거 잘못을 모두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고, 모든 사람을 당신의 거룩한 성심聖心에로 이끌고자 하시는 분이라 한다. 현재의 문제를 두고 하느님과 대결하고 싸울 것이 아니라, 그런 문제들을 그분께 맡겨야 한다 한다. 현재 나의 건강과 재정, 사람들과의 관계, 직장…모든 걱정을 그분께 드리고 그분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동생 수녀의 이러한 믿음은 자신의 경험 안에서 숙성된 것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의 성소聖召와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방황했다. 그녀는 한동안 무척 불안했고 내적인 혼란 속에서 지내다가 자기의 의지를 접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려 그분만을 믿으면서 진정한 평화를 발견했고 수녀로서의 소명을 발견했다. 그녀는 하느님을 믿는 것에 대해 여러 번 말했고,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결국 그녀는 아래에 게재하는 소위 ‘믿음 호칭기도’라는 것을 만들고, 만나는 사람마다 이를 나누어 준다. 이 기도는 나 자신을 의지하기보다 예수님을 더 의지하도록 해준다. 괜찮은 시절에는 그 시절대로 도움이 되고, 아주 큰 어려움을 맞을 때에도 큰 위로와 믿음을 얻는 데에 도움이 된다.

믿음 호칭기도

당신의 사랑을 얻고자 하는 믿음에서, 

예수님 저를 구하소서.

제가 사랑스럽지 않다는 두려움에서, 

예수님 저를 구하소서.

제가 지닌 거짓 안전에서, 

예수님 저를 구하소서.

당신을 믿는 것이 

나를 더욱 궁핍하게 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예수님 저를 구하소서.

당신의 말씀과 약속에 대한 의심에서, 

예수님 저를 구하소서.

어린이처럼 당신께 의탁하는 것에 대한 반항에서, 

예수님 저를 구하소서.

당신 뜻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머뭇거림에서, 

예수님 저를 구하소서.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예수님 저를 구하소서.

과거에 대한 원한이나 과도한 집착에서, 

예수님 저를 구하소서.

지금 이 순간 불안한 자기 추구에서, 

예수님 저를 구하소서.

당신의 현존과 사랑에 대한 불신에서, 

예수님 저를 구하소서.

제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이 주라고 요청받을까 싶은 두려움에서, 

예수님 저를 구하소서.

제 삶이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다는 생각에서, 

예수님 저를 구하소서.

사랑의 요구에 대한 두려움에서, 

예수님 저를 구하소서.

실망에서, 

예수님 저를 구하소서.

계속 저를 붙드시고 잡아주시며 사랑하시니, 

예수님 제가 당신을 믿나이다.

저의 죄와 허물들에도 

당신의 사랑은 더욱 깊어가고 저를 변화하게 하시니,

예수님 제가 당신을 믿나이다.

내일 일을 모른다는 것은 

당신께 의탁하라는 초대이오니, 

예수님 제가 당신을 믿나이다.

저의 고통 중에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니, 

예수님 제가 당신을 믿나이다.

저의 고통이 당신의 고통과 하나되어 

이승과 내세에서 열매를 맺게 하시니,

예수님 제가 당신을 믿나이다.

저를 고아로 남겨두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당신의 교회 안에 계시니, 

예수님 제가 당신을 믿나이다.

그 무엇보다도 당신의 계획이 더 나으니, 

예수님 제가 당신을 믿나이다.

언제나 저를 들어주시고 

당신의 선하심으로 답해주시니, 

예수님 제가 당신을 믿나이다.

용서를 받아들이고 

다른 이를 용서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시니, 

예수님 제가 당신을 믿나이다.

저에게 필요한 모든 힘을 주시니, 

예수님 제가 당신을 믿나이다.

저의 인생은 하나의 선물이오니, 

예수님 제가 당신을 믿나이다.

당신을 믿도록 당신께서 가르치실 것이니, 

예수님 제가 당신을 믿나이다.

당신이 저의 주님이요 저의 하느님이시니, 

예수님 제가 당신을 믿나이다.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바로 저이오니, 

예수님 제가 당신을 믿나이다.

아멘!(20211124, 번역글, 글과 그림 출처 : 해나엘 비앙키Hanael Bianchi, 2017년 4월 3일, https://catholicreview.org/author/hanael-bian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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