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사벨라 H. 데 카르발호Isabella H. de Carvalho가 aleteia.org에 기고한 글을 번역한 내용으로 원문은 https://aleteia.org/2023/07/18/pope-francis-6-most-encouraging-thoughts-on-our-elders/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원활한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에 첨가한 내용이 있음을 밝힌다.(이미지-aleteia.org)
“복음을 선포하는 것과 여러분의 후손들에게 전통을 전해주는 일에는 은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교황 프란치스코는 지금까지의 재임 기간에 우리 사회 안에서 노인의 중요한 역할에 관해 여러 번 강조해 왔으며, 급기야 매년 7월의 네 번째 주일에 거행하는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2021년 1월,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제안하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교황 프란치스코는 기념 날짜를 매년 7월 넷째 주일로 하게 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조부모인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7월 26일)에 가까운 날로 잡아 이를 기념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세 번째 기념일인 2023년 7월 23일이 다가오면서 기고자는 노인에 관해 그동안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강조해 온 중요한 내용을 6가지로 요약하여 정리한다.
1. 노인과 조부모들은 젊은이들에게 풍요로움의 원천입니다
교황께서는 2023년 8월 2일부터 6일까지 포르투칼 리스본에서 개최되는 ‘세계 청년 대회’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영상 메시지를 통해서 “준비를 잘하도록 하십시오. 그러기 위해 여러분의 뿌리를 돌아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노인들과 시간을 보내도록 해보십시오.……여러분의 조부모들과 대화를 나눠 보십시오. 그들이 여러분에게 지혜를 줄 것입니다.”라는 말로 노인들에 관한 내용을 강조한다.
젊은이들이 자기 뿌리를 보존하여 세대 간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는 것이 교황 프란치스코의 노인에 관한 생각의 중요한 축이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첫 번째 ‘세계 조부모와 노인을 위한 날’을 기념하는 메시지를 통해 “오늘 우리 나이에 우리의 소명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뿌리를 보존하고, 젊은이들에게 신앙을 전하며, 어린 그들을 잘 보살피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소명에는 젊은이들을 위한 다양한 책임이 뒤따르는데, “보다 인간적이고 보다 밝은 미래 세상”을 위해 “고통스러운 전쟁의 기억”과도 같은 불편한 기억까지도 젊은이들과 나누는 것이 포함된다고 강조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노인들은 젊은이들보다는 더 많은 경험을 지녔으므로 젊은이들이 올바른 방향을 찾도록 도와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교황은 일반 알현을 통해서 “새로운 세대는 우리 노인으로부터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전망을 열어주는 예언을 기대합니다. 부패나 타락한 관습과도 같은 것에 대한 예언 말입니다.……말하자면, ‘이제는 그만두어야 합니다. 나는 이런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 이런 방식이 여러분을 이끌어가도록 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에게 저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려고 합니다.’와 같은 예언으로 우리 노인들은 젊은 세대에게 부패와 타락에 맞서는 예언을 해야만 합니다.”라고 말한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과 여러분의 후손들에게 전통을 전해주는 일에는 은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2. 젊은이들도 노인들에게 가야 합니다
젊은이들에게 노인이 풍요로움의 원천이 되는 것만이 아니라, 거꾸로 젊은이들도 노인에게 풍요로움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는 교황은 노인과 젊은이들 사이에 “인간성 안에서 지혜의 전달”이라는 다리가 어떻게 놓일 수 있는지 강조한다.
교황은 2023년도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담화를 통해 “마치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었고, 서로의 체험으로부터 서로 지혜를 얻었듯이 하느님께서는 젊은이들이 노인의 가슴에 기쁨을 가져다주도록 원하십니다.”라고 말한다.
“젊은이가 아니라면 그 누가 노인들의 꿈을 현실이 될 수 있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꿈이 현실이 되도록 하려면 노인들이 계속 꿈을 꾸어야만 합니다. 정의, 평화, 연대에 관한 우리의 꿈이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비전들을 가질 수 있도록 하며, 이렇게 해서 우리는 젊은이들과 함께 미래를 건설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교황은 첫 번째 메시지에서 말한다. 또한 젊은이들이 많은 노인이 혼자이며 동반과 동행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필요에 대해서도 잊지 않는다. 아직 많은 국가에 코비드-19라는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담화에서, 힘든 시기에 노인들을 방문해주었던 많은 젊은이가 주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들”임을 상기하면서, “모든 조부모, 모든 노인, 특별히 우리 중에서 대부분 혼자 지내야 하는 외로운 이들이 천사들의 방문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교황은 일반 알현에서 부모들에게 “제발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노인들에게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였다.
3. 노인이 된 나이에도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교황은 두 번째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담화에서 “늙어서도 열매 맺으며 수액이 싱싱하리니 주님께서 올곧으심을 알리기 위함이라네!”(시편 92,15-16ㄱ)라는 시편 구절을 인용하여 노인들에게 자기 나이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도록 촉구하였다. 교황은 “우리는 우리 주름을 숨기고, 다른 한편에서는 영원히 젊은척하면서 우리 나이를 감추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저 우리의 때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상상하며, 더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우울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교황은 노년이 자기 신앙의 증거를 맺기에, 특별히 젊은 세대를 위해서 완벽한 순간임을 강조한다. 일반 알현을 통해서 “노년은 인생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충만을 위한 시작이라는 기쁜 소식을 퍼트리기에 가장 좋은 인생의 단계입니다.”라고 말하는 교황은 “노년은 약속입니다. 약속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최고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가장 최고가 올 것입니다. 이런 것이 신앙을 가진 노년의 메시지입니다.”라고 말한다.
교황은 노인들이 보조적인 활동이나 기도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서 이를 “가장 최고로 가치 있는 도구들”이자 나이에 어울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정의하면서 노인들에게 이를 제안한다. “노년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축복받는 존재들임을 증거해 주어야만 합니다. 이러한 증거는 어렵지만 아름다운 증거로서 인생에서 그 누구도 허무한 존재는 없으며 죽음까지도 허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라고 교황은 말한다.
“저는 제 인생에서 더는 새로운 일이 없을 것 같던, 말하자면 은퇴의 나이에 로마의 주교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원하시며, 그분은 이제나저제나 결코 은퇴하시는 법이 없습니다.”라고 설명하면서 교황은 노인들을 격려하였다.
4. 서서히 죽어가는 안락사를 멈추고, ‘쓰고 버리는’ 문화에 맞서십시오
교황은 의료업계 종사자들과의 만남에서 노인의 생존권을 옹호하고, “비용 문제”로 적절한 의료 행위를 중단하는 행위를 예로 들면서 “숨겨져 있으면서도 횡행하는 안락사”를 강하게 비난한다. 이러한 현상이 좀 더 넓게 말해서 현대 사회와 문화 전반에 팽배해있는 ‘쓰고 버리는 문화’라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교황은 이러한 사고방식의 바탕에 노인을 비생산적인 사회 구성원으로서 ‘치워버릴 수도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2015년 일반 알현을 통한 ‘가정에 관한 교리’에서 교황은 “이윤을 추구하는 문화는 노인을 ‘부담’으로 간주합니다. 노인들이 생산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예 부담이라고 여깁니다. 짧게 말해서 이러한 현대 사회의 문화가 양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런 사고방식 안에서는 노인이 버려집니다. 노인이 어떻게 버려지는가를 보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이는 죄악입니다! 이에 관하여 아무도 공개적으로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쓰고 버리는 문화’는 야비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람을 쓰고 버리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취약함에서 오는 두려움을 제거하고 감소시키고자 합니다만, 오히려 이러한 행동을 통해서 가난하게 버림받고 무시당하며 억압받는 노인에 대한 걱정이 증가하고 있음을 봅니다.”라고 설파한다.
사실 교황은 이 사회가 노인을 “존재론적인 계획이 아닌 보살피는 계획” 정도로만 대한다고 지적하면서 노인들이 “삶을 충만하게 살도록” 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젊은이들의 삶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노인의 삶도 중요하고 아름답습니다.”라고 말하는 교황은 사람들이 점점 더 오래 살게 되면서 노령 인구가 인류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힘주어 말한다.
5. 노년은 완성을 위한 나이이지 죽음으로 끝나는 나이가 아닙니다
교황은 일반 알현 중 하나에서 노년이 사건과 사물을 분명하게, 기쁨으로 보고, 진정한 인생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보는 특권을 누리는 때라고 강조한다. 교황은 “신앙 안에서 우리와 다른 이들을 하느님의 나라에 더욱 가까이 있도록 하는 노년에는 활력의 건너편에 있게 마련이고, 말에는 힘이 없으며, 젊음의 충동과 강함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내용이 정확하고도 투명하게 인생의 진정한 목적지에 대한 약속을 보게 해 줍니다. 우리 인생의 전정한 목적지는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의 식탁에 자리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교황은 노인들에게 죽음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아님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 인생은 우리가 세상에서 끝이라고 상상하는 대로 (멋진 관棺에) 포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죽음 그 너머로 넘어가기 위해 설정된 것이 인생입니다. 죽음은 하나의 통로요 통과 과정일 뿐입니다. 실로 우리가 있어야 할 곳, 우리가 최종적으로 있어야 할 목적지는 이곳이 아닙니다. 영원히 사시는 주님의 곁입니다.”라고 설명한다.
“노년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신 대로 ‘더 큰’ 일 중 무엇인가를 위해 우리에게 허락하신 때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하셨지만, 그것은 당신의 죽음으로 무엇을 끝내기 위해 우리에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부활과 하늘로 오르심으로써 우리에게도 그것이 가능하게 하려고 하심이었습니다.”라고 교황은 말한다.
6. 성경에는 노년에 귀감이 되는 수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교황께서는 2022년 2월부터 8월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16차에 걸쳐 이어간 ‘노년에 관한 교리교육’을 통해 노년에 귀감이 될만한 성경의 여러 인물을 소개한 바 있다. 예를 들어, 나오미와 룻이라는 두 여인,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두 과부가 서로 격려하고 도와가면서 똘똘 뭉쳐 어떻게 힘들고 아픈 시기를 헤쳐나갔는지를 전해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셨는데(참조. 2022년 4월 27일 제7차), 이와 마찬가지로 올해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담화를 통해서는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을 예로 들어 “젊은 세대와 늙은 세대를 하나로 묶어주는” 과정을 설명한다.
다른 예로서 교황은 아흔 살을 먹은 노인으로서 에피파네스 왕의 칙령을 따르라는 명령에 거짓으로 생명을 구걸하지 않았던 엘아자르라는 이름의 노인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참조. 2022년 5월 4일 제8차) “중요한 점은 짧은 세월을 구걸하자고 지금까지 살아온 오랜 세월의 믿음을 거부하는 것이 다음 세대와 그 뒤로도 이어질 모든 세대에게 넘겨주어야만 하는 유산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말하는 교황은 “엘아자르가 참 잘했습니다!” 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성경의 여장부인 유딧을 소개하기도 하였는데, 교황은 “적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켜낸 이 여인의 생의 말년을 요약” 하면서, “유딧은 젊고 덕망 있는 유다인의 과부로, 자신의 믿음과 미모와 계략 덕분에 오만하고 하느님을 업신여기는 원수인 아시리아의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대장군 홀로페르네스의 포위 공격에서 유다 백성과 유다 성읍 배툴리아를 구해냅니다. 그녀는 기민한 방법으로 유다를 적대시하는 대장군의 목을 베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용감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녀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엄청난 사건을 겪은 이후 유딧은 자신이 살던 도시 배툴리아로 돌아와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며 백다섯 살까지 살았습니다. 때로는 치열한 직장생활을 마친 후에, 때로는 모험적인 삶을 살거나 사회에 큰 공헌을 한 후에 노년을 맞이하는 많은 사람처럼 유딧에게도 노년기가 찾아왔던 것입니다. 유딧이 대장군을 죽인 것처럼 화려한 조명을 받는 위대한 사건들로만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가정과 위험에 빠진 공동체를 위해 끈기 있게 사랑을 쏟아낼 때도 종종 영웅이 탄생합니다.”라고 설명한 교황은 “유딧은 주님께서 맡긴 사명을 온전히 완수하고 평온을 살았습니다.……젊은 여성의 용기로 지역 사회의 존경을 얻었던 그녀는 노년의 여성으로서도 부드러운 온유함으로 사람들에게 자유와 사랑을 나눠주며 존경을 얻었습니다.”라고 설명한다.(참조. 2022년 5월 11일 제9차)
이날 교리교육의 마지막에 교황은 “요 며칠 사이에 성경을 펼쳐 들고 유딧기를 읽어보십시오. 아주 짧습니다. 읽기도 쉽습니다. 10쪽도 안 됩니다.”라고 말한다.
유태인 어르신 동료 직원이 좋은 주말을 보냈다며 자랑하던 일이 기억된다. 아버님이 100세가 되어 가시고, 시집간 딸이 3살 된 손자를 데리고 와서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했는데,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테이블 아래 편안히 안전하게 준비된 자리에서 4대 가족이 함께 식사함을 자랑스러워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모습은 마음을 뿌듯하게 만든다. 마냥 젊을 수 만은 없는 시간을 어른들과 가까이하면서 알지 못하게 배움 스며듦을 철이 한 참 든 후에나 알게 되는 것 같다. 나이 6살, 할머니의 최애 손녀인 내가 할머니의 말씀 행동을 종종 기억하며, 돌아가신 할머니, 또한 알지 못하는 조상님들을 위해서도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