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devil의 네 가지 술책-4가지 D

*davidjeremiah.blog-satans-strategies-revealed

최근 몇 년 마귀가 들렸다든지 귀신이 들렸다든지 하는 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책들을 통해서 인간의 두려움이 표출된 결과들이다. 마귀가 들린 경우는 드물지만, 실제로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교회법에 따라 각 교구는 마귀가 들린 경우와 관련하여 구마驅魔(사람이나 사물에서 악마나 악의 감염을 구축驅逐·몰아서 내쫓음. 가톨릭대사전) 사제가 있어야만 한다. 이 구마 사제는 사실에 근거하여 윤리적으로 마귀가 들린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소속 주교의 허락을 받아 구마 의식을 행한다.

실제로 마귀가 들린 경우는 상당히 드물기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마귀가 우리를 어떻게 공격해오는가를 알아야만 한다. 일반적인 마귀의 술책들은 대단히 교묘하고 훨씬 광범위하게 숨어있으므로 우리는 일상생활 안에서 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야만 한다.

무슨 일에 있어서나 적대자의 전술을 이해하고 교묘한 술책을 인식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인생살이 안에서 영적 전쟁에 임하면서 우리도 마귀의 일반적인 전술과 전략을 파악하고 규명하며 이해하는 데에 체계적인 발전을 거듭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2011년도에 발행된 루이스 카멜리Louis Cameli 신부가 쓴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악마The Devil You Don’t Know>라고 하는 책은 대단히 유용한 도움을 준다. 몇 년 전에 이 책을 읽으면서 카멜리 신부가 자기의 저서를 통해서 4가지로 분류한 악마의 4가지 술책은 함께 묵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 거론하는 이 네 가지 범주는 기본적으로 카멜리 신부의 저서에 바탕을 두고는 있지만, 광범위하게 나의 성찰들을 적어나간 것이다. 더욱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카멜리 신부의 훌륭한 책을 읽도록 강하게 추천한다.

1. 속임수(deception) –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고…처음부터 살인자로서, 진리 편에 서 본 적이 없다. 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요한 8,44)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악마는 자기의 본성을 따라서 거짓을 말하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이다.

마귀는 많은 거짓과 공허한 약속으로 우리를 속인다. 이는 대부분 우리가 죄를 짓거나 진실을 거부할 때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거나 무엇인가를 더욱 성취할 수 있다는 내용과 관련이 있다. 죄를 지어 어떤 일시적인 쾌락이 우리에게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이는 그저 지나가고 마는 것이다. 엄청나게 쌓이고 쌓인 고통은 결국 모두 죄를 짓는 행위들에서 온다. 인간들은 체험으로 이런 내용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속고 또 속는다. 아무래도 인간은 헛된 약속들을 사랑하고 그 안에 온갖 거짓 희망들을 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또한, 악마는 우리들의 생각에 온갖 복잡미묘한 것들을 더하면서 우리를 속인다. 우리를 헷갈리게 하고 우리 행동에 대한 근본적인 진실을 숨기려 든다. 우리들의 마음은 하염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진실을 외면하고 변명거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복잡한 상황에 빠지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마귀와 함께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끝없는 의문문 놀이에 빠져든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진실과 진리에 따라 그저 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회피하기 위해 악마의 농간에 따라서 온갖 종류의 어려운 가능성을 점쳐보거나 그럴듯하고 슬픈 이야기들을 꾸며댄다.

악마는 ‘말장난으로 우리를 속이려 든다. 예를 들어 ‘선택’이니 ‘출산의 자유’와 같은 고상한 말로 어린이를 죽이는 낙태를 괜찮은 것이라고 속이는 경우라든가, 남색男色을 ‘게이’(원래 게이라는 말은 ‘행복’, 즐거움carefree, 명랑함cheerful, 밝고 보기에 좋은bright and showy 등을 뜻하는 말이다)라고 한다든가 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악마는 우리들의 빛나는 신앙과 오래된 지혜를 곧잘 ‘무식’이라든가 ‘고리타분’ 내지는 ‘어둠’이라 말하면서, 음란한 공조를 두고 ‘동거’라고 치장하거나 수천 년을 두고 이어져 온 신성한 혼인을 두고도 ‘자유결혼’이니 ‘동성(평등)결혼’이니 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과장과 노골적인 거짓 이름표나 꼬리표를 붙여서 악마는 우리를 속인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도 짐짓 자신의 진보성이나 아량을 과시라도 하려는 듯이 ‘뭐, 그럴 수도 있지!’라든가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하느님께서 ‘죄’라고 하셨던 내용을 두고 쉽게 타협하거나 동조하고 심지어 협력자가 된다.

또한, 악마는 많은 정보로 우리를 속이려 든다. 정보라는 것이 꼭 진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많은 정보가 속임수를 위해 교묘하게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거의 일반적인 내용이다. 많은 정보가 특정 사실과 수치를 강조하면서 균형 잡힌 진실을 호도하고 왜곡하고 가짜 뉴스가 범람한다. 사실 그 자체로 진실인 정보라 하더라도 그 정보 역시 속임수가 될 수도 있다. 대중 매체는 그들이 전달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위해 가장 큰 영향력과 권력을 행사한다. 이렇게 악마는 정보를 통해서도 우리를 속인다.

* 악마는 악을 선으로 뒤집어 가장하는 기막힌 재주를 가지고 있고, 평범함으로 가면을 쓰기도 한다. –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대표적인 나치 학살자는 전쟁 후 아르헨티나로 도망쳐 이스라엘 비밀정보 요원들에 의해 체포될 때까지 15년간 피신해 살다 재판에 넘겨졌을 때 무고를 주장했다고 한다. 아이히만에 대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쓴 한나 아렌트는 그 책의 부제로 ‘악의 평범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시해야할 우리 시야의 사각지대일지 모른다. 달리 말하면 악을 악으로 보지 못하거나 아예 악을 의로움으로 뒤집어 놓기까지 하는 현시대의 모습을 적절하게 묘사한 말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 책의 소개글에서 아모스 엘론은 이렇게 말한다. “나치 정권은 잘못된 악을 새로운 의로움의 토대로 세움으로써 법질서를 그 머리로부터 뒤집는 데 성공하였다.…이렇게 뒤집힌 세상 안에서 아이히만은 자신이 악을 저질렀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호명환 신부, ‘이 세상 불의까지도 하느님 선에 맡겨드려야 할 때’-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57>, 미주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9월 12일)』

우리는 사탄이 우리를 속이려고 하는 여러 술책을 주의 깊게 평가해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고 듣는 모든 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에 냉소적일 필요는 없지만, 냉정해야 할 필요는 있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을 검증해야 하고 그것을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계시와 하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2. 분리·분열(division) – 예수님께서는 지상 여정 동안 마지막 기도를 드리실 때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요한 17,22)을 기도하셨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죽기 직전 소위 최후의 만찬에서 이 기도를 올리셨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사탄이 획책한 분리와 분열을 십자가 위에서 이겨내고자 하심을 강조하신다. 어떤 이들은 악마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 devil의 어원을 따라 올라가면 희랍어의 διάβολος, diabolos라는 말에 이르고, 이는 무엇인가를 자르거나 찢어 나누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는 악마가 갈라놓은 것을 다시 하나로 만드시고자 하셨다.

악마의 분리와 분열을 위한 작업은 우리 각자의 내면에서 서로 이율배반적인 충동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고상하고 창의적이며 사교적인 데 반해 또 어떤 이들은 저속하고 비열하며 파괴적이라고 느끼는 충동 같은 것이다. 바오로 사도께서 “생명으로 이끌어야 하는 계명이 나에게는 죽음으로 이끄는 것…죄가 계명을 빌미로 나를 속이고 또 그것으로 나를 죽인 것…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죄…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로마 7,10.11.17.19)라고 누누이 역설하신 분리와 분열을 느끼는 것이 우리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내면을 분리하고 분열시키는 악마의 작업이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이어지는 로마서 8장에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로마 8,1-2.4)라고 하면서 우리 주님께서 이루고자 하셨던 일이 당신께서 계시하신 진리에 따라 바로 우리 안에 영과 육이 하나가 되도록 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악마가 우리 내면에서 분리와 분열을 느끼도록 공격하면, 우리 내면에서 우리가 체험하는 분리와 분열이 외부로 퍼져나간다. 분노, 과거의 상처, 화火, 두려움, 오해, 탐욕, 교만, 오만과도 같은 것들이 타인을 향하여 분출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 주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금방 못마땅하여지고 조급증이 생기면서 누군가 좀 더 완벽한 다른 이를 찾아야 할 것같이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렇게 해서 결국, 많은 이가 현재의 결혼이나 가족, 교회, 내가 속한 공동체를 등지면서 모호하고 막연한 상태에서 더 나은 사람과 더욱 완전한 상황을 찾으려 시도한다.

그렇다. 악마는 우리 내면의 충동이라는 현실적인 놀이마당에서 매일매일 장난질을 친다. 악마의 목표는 우리 내면을 찢어놓고 주변과 나 사이를 갈라놓는다. 타인과 나 사이에 언짢은 일이라는 것이 생기게 마련이지만, 인간이 공동의 적을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만 한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에페 6,12)라고 명쾌하게 이를 정리해 준다. 내 방문 앞에 미치광이가 찾아왔는데도 그저 그를 맞아들이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우선 그가 내 방문 앞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를 갈라놓으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 소소한 것부터 한쪽으로 제쳐놓아야만 한다.

3. 우회(diversion) – 우리의 원래 목표에서 우리를 돌아서게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우리를 맞아들이기 위해 기다리는 하느님의 나라이다. 우리 인생의 여정은 하늘로 가는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길이다. 악마는 이러한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에서 우리를 돌아서게 하려고 온갖 술책을 다 부린다.

악마는 주로 지나가고 말 세속적인 것들에 몰입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를 꾀한다. 많은 이들이 기도하기에, 성당에 나가기에, 그리고 영적인 자양분을 취하는 데에는 너무 바쁘다고 말하면서 조금 형편이 나아지면 그러한 것을 찾으려 한다고 말하면서 일시적인 것에 몰두하여 영원히 남을 것은 소홀히 한다.

걱정과 두려움은 우리를 산만하게 한다.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들을 잃을까 봐 조바심 나게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우리가 종국에 맞을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잊어버리게 하고 보지 못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주님을 향한 두려움거룩한 경외심을 가져야만 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느끼는 소위 두려움이라는 것을 많은 경우에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게 되거나 그것들이 아예 사라지고 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악마는 정반대의 주장을 펼친다. 악마는 이 땅 위의 지나가는 수천수만 가지 것들을 두려워해야만 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심판 따위는 별로 생각할 거리조차 되지 못한다고 속삭인다.

우리의 시선을 돌려놓으려 드는 악마의 ‘우회’라고 하는 술책의 핵심은 본질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신선을 잡아끌어 좀 더 작고 별 볼 일 없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도록 획책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에 우리의 초점을 맞추는 법을 배워야 하고, 우리의 관심사가 보잘것없는 것으로 향하지 않도록 이를 거부해야만 한다.

4. 낙담·좌절(discouragement) –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고상한 이상과 열망을 품는 일은 좋은 일임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악마는 종종 좋은 것에 독을 주입하곤 한다. 이러한 독은 가장 좋고 최선의 것을 향한 높은 열망과 함께 겸손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한다. 사탄은 너무 쉽게 우리가 우리 자신과 타인을 향해 조바심이 나도록 우리를 유혹한다. 우리는 때때로 너무도 짧은 시간 안에 우리의 이상이 달성되리라 생각하거나, 거꾸로 우리 자신이나 타인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부족한지를 생각하곤 한다. 그러면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많은 이가 낙담하고 좌절하면서 거룩함의 추구를 포기하고 만다. 또 많은 이가 교회 안에도 불완전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교회를 포기한다.

역설적으로 악마는 끝이 없는 열망을 갖도록 하면서 우리를 실망하게 한다. 부족함이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뭔가를 더 할 수 있는 개선의 여지가 항상 있다는 것이지만, 악마는 교묘하게 이 부분을 파고든다. 뭔가를 더 할 수가 있다면, 그것은 절대 완성되지 않고 충만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식으로 악마는 우리가 실망하게 하고 우리 내면에 우리가 매일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 일조차도 못하도록 불합리한 요구를 심는다.

악마는 또 피곤이나 개인적인 작은 실수와 실패와도 같은 장애물을 우리 인간 삶의 나약한 조건이나 부족함의 일상 안에 설치하면서 우리를 단순하고 작은 일에서부터 실망하고 좌절하게 한다.

이런 식으로 악마는 우리를 낙담하게 하고 포기하게 유도하려 든다. 인간의 나약함과 나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솔직한 겸손이 이 모든 사탄의 작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을 알고 받아들이려고 하는 이러한 겸손은 우리가 조금씩 성장하게 하고 발전하게 하며, 어렵고도 힘든 이 세상, 완전과는 거리가 먼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겸손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더욱 주님께 의지할 수 있게 해주고, 주님의 섭리적인 도우심을 믿고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끈다.

이상이 악마들의 4가지 술책들이다. 이런 내용을 잘 이해하고 우리가 그때그때 만나는 상황을 규명하여 이름 붙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악마를 압도하는 권위를 얻기 시작할 수 있다. 더욱 깊은 이해를 위해서 앞서 언급했던 루이스 카멜리 신부의 책을 읽도록 권고한다.

나는 이 글에서 악마니 사탄이니, 마귀니 해가면서 여러 호칭을 혼용해서 ‘거짓의 아비’를 부르는 용어로 사용했는데, 이는 주요 구마의식의 전례서에서 따왔음을 밝힌다.

*번역글(보다 부드러운 연결을 위하여 첨삭하고 예를 추가한 부분이 있음) : 몬시뇰 찰스 포프Monsignor Charles Pope(1961년~), Catholic Standard, <Four Common Tactics of the Devil>,

One thought on “악마devil의 네 가지 술책-4가지 D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