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반 고흐, 「기도하는 남자」(1883)

두려움을 나타내는 한자어는 여럿이다. 이들은 두려움이 생겨나는 원인과, 그것에 반응하는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서로 다른 결을 지닌다.

‘두려울 공(恐)’은 외부의 위협 앞에서 마음이 얼어붙는 일반적인 두려움이다. 근거 없이 엄습하는 ‘공황(恐惶)’이나, 높은 곳에서 오금이 저리는 ‘고소공포(高所恐怖)’와 같은 말이 여기에 속한다. ‘두려워할 구(懼)’는 깊이 경계하며 삼가는 두려움이다. 글자의 모양에서처럼, 마치 새가 높은 곳에 앉아 두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살피듯 조심하는 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 ‘송구(悚懼)’나 ‘의구심(疑懼心)’과 같은 말에 쓰인다. ‘두려워할 포(怖)’는 순간적으로 엄습하는 감각적인 떨림이다. ‘공포(恐怖)’와 같이 압도적인 위압 앞에서 몸이 먼저 반응하는 상태를 드러낸다. ‘두려워할 외(畏)’는 우러러보며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두려움이다. ‘경외심(敬畏心)’에서처럼, 두려움과 존경이 함께 깃든 상태이다. ‘두려울 황(惶)’은 마음이 어지러워 갈피를 잡지 못하는 두려움이다. ‘당황(唐惶/驚惶)’하거나 ‘황송(惶悚)’ 할 때의 그 불안과 당혹이 여기에 담겨 있다.

호모 파비두스(Homo pavidus), 곧 두려워하는 인간은 하느님 안에 안식하기까지 끊임없이 불안 속을 살아간다.

두려움 앞에서 인간은 먼저 얼어붙는다(freeze). 그리고 도망치거나(flight), 맞선다(fight). 그러나 이러한 반응들은 단순한 생존 기제를 넘어, 사랑이 제 방향을 잃고 달아나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조셉 피퍼Josef Pieper(1904~1997년)의 말처럼 “모든 두려움은 달아나는 사랑(all fear is love that flees, 그리스도교적 인간관, 27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두려움을 견디기 위해 여러 방식을 택한다. 두려움에 이름을 붙여(naming) 나와 분리시키기도 하고, 스스로를 그 안에 노출시켜 익숙해지려 하며, 미리 예상함으로써 충격을 줄이려 한다. 때로는 우정과 형제애, 공동체의 힘으로 그것에 맞서기도 한다. 그러나 끝내 피할 수 없는 두려움 앞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이고(acceptance) 삶의 일부로 끌어안으며 함께 걸어가려 한다.(동행, accompany)

그런데도 인간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종종 또 다른 덫에 걸린다. 스스로를 안전하게 해 줄 것처럼 보이는 것들, 곧 「옳음, 힘, 우월함, 소속감, 존중, 완벽함, 인정 … 등(양정식, 2026년 살레시오 회원들을 위한 연피정 강의에서)」에 기대어 두려움을 이겨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두려움을 잠시 가려줄 뿐, 근원에서 그것을 치유하지는 못한다.

그리스도인은 이와 다른 길을 산다. 그 길은 역설적으로 ‘일종의 자기 없는 자아실현(a kind of selfless self-realization)’, 곧 자기를 스스로 완성하고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내어놓음’으로 완성되는 삶이다. 피퍼의 말처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으며, 잘못 사랑하는 사람은 잘못 두려워한다.(a person who does not love, does not fear either, and he who loves falsely fears falsely, 4추덕, 126쪽)” 결국 “그리스도인에게 인간의 가장 깊은 두려움은, 죄를 통해 스스로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분리될 가능성 그 자체이다.(The ultimately terrible is none other than the possibility that the person, through guilt, willingly separates himself from the ground of being. 4추덕, 127쪽)”

그러므로 신앙인은 두려움을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하느님께 내어 맡긴다. 은총에 의탁한다.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이사 41,10) 하시는 하느님의 약속 안에서 인간은 비로소 두려움을 넘어, 경외敬畏 속에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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