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 산(유다교에서는 모리야 산, 이슬람에서는 알-하람 알-샤리프로 부름)에 세워진 유다교의 총본산으로서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항상 중심이었다. 성전 건립의 역사는 필리스티아인에게 빼앗긴 계약 궤(1사무 4,3)를 되찾고, 다윗 왕이 이를 예루살렘에 모신 다음(2사무 6장) 건립을 추진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성전의 건립은 다윗 왕의 뒤를 이은 솔로몬 임금에 의해서 기원전 10세기 중반, 전통적으로는 957년경에 완공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솔로몬 성전이다.(참조. 1열왕 6-8장, 2역대 2-7장) 이후 이 성전은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외적에 의해서 파괴와 재건을 되풀이하는 수난을 당하다가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져”(마태 24,2) 오늘날까지 끝내 복원되지 못하고 말았다.
최초의 솔로몬 성전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유다 왕국만의 성전으로 남았다가, 기원전 586년 바빌론 침공으로 파괴되었다. 바빌론 멸망과 함께 계약 궤는 성경 기록에서 사라지며 후대에는 유실된 것으로 전승된다. 전승은 성전에 모셨던 계약 궤나 십계명을 새긴 모세의 돌판, 만나가 담긴 그릇, 아론의 지팡이 등이 유실된 것으로 전한다. 바빌론에 이은 페르시아 제국이 관용 정책을 펼치면서, 바빌론 포로 석방과 함께 기원전 536년에 성전 재건도 허락되어 성전 재건이 중단과 재건을 반복하다가 기원전 516년에 마침내 재건되었다. 이렇게 재건된 성전은 제2성전, 혹은 성전 재건을 주도한 인물의 이름을 붙여 즈루빠벨 성전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후 500여 년간 유지된 이 성전은 솔로몬 성전에 비교하면 초라했다. 그나마 이 성전은 페르시아 제국의 붕괴로 뒤를 이은 다른 강대국들에 의해 다시 한번 유린을 당했으며(예. 셀레우코스의 안티오코스 4세는 성전 안에 신상 설치), 이에 반기를 든 마카베오 혁명으로 제2성전이 복구되는 역사를 거치기도 하였다. 로마의 지원을 받은 헤로데가 유다의 지배권을 갖게 되었을 때 헤로데는 유다인의 환심을 사고 자신의 정통성 확립을 위해 기원전 20년(혹은 19년)에 성전 증축을 시작하였으며, 그의 사후에도 주변 전각과 부속 시설 공사의 완공은 기원후 63년(혹은 64년)까지 계속되었다. 성경에는 예수님 시대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던 공사를 두고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다”(요한 2,20)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 성전은 완공을 본지 불과 6년이나 7년 뒤인 기원후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이스라엘인들의 독립운동 거점이 된다는 이유로 철저히 파괴되고 말았다. 이때 로마인들이 성전의 마지막 흔적으로 성전 건물 자체가 아니라 성전 산 지지벽의 잔존물로 서쪽의 축대 겸 담장 한 부분을 남겨두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예루살렘에서 보는 ‘통곡의 벽’이다. 이렇게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은 오늘날까지도 원래의 모습을 되찾지 못하였다. 363년에 재건 공사가 시작하기도 했으나 중단되었다. 1948년까지 나라 없는 민족으로 살았던 유다인들은 나라가 생긴 이래 한편에서 소위 제3성전 건립을 추진해오기도 한다.
그러나 성전 건립을 두고 유다교 내부에는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는 유다교에서는 메시아가 오시면 하느님이 때가 되면 행하실 일로 남겨두어야 한다거나, 성전 산의 성전 자리에 세워진 바위의 돔을 허물고 제3성전을 지어야 메시아께서 재림하실 것으로 믿는 이들이 있기도 한다. 유다교에서는 성전 터가 바로 신이 직접 선택한 자리이고, 그 자리에서만 율법에 따른 올바른 제사를 올리 수 있다고 믿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성전 산에서 예루살렘 성전인양 보는 것은 7세기 말에 우마이야 왕조가 이슬람 사원인 알 아크사 모스크(회색 돔)와 바위의 돔(금빛 돔)을 세워놓은 모습이다.(*사진 참조)
일부 연구에 따를 때 바티칸의 시스티나 경당의 비례가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 성전의 수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보지만, 학계의 공통된 의견은 아니다. 그러나 교황 식스투스 4세께서 시스티나 경당을 새로운 예루살렘의 성전이자 로마가 예루살렘을 대신할 새로운 성지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를 가지셨던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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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복음’에서 “성전”이 등장하는 구절들은 68개나 된다. 여느 유다인들의 삶과 마찬가지로 성전은 예수님의 삶에서도 중요한 곳이었다. 아기 예수님은 부모님에 의해 성전에서 봉헌 되셨고(루카 2,27), 소년 예수님은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발견되셨으며(루카 2,46), 예수님께서는 축제를 지내러 성전에 자주 올라가셨고(요한 7,14;11,56), 공생활 시작에서 악마가 예수님을 유혹한 곳도 성전 꼭대기였다.(마태 4,5 루카 4,9)
예수님께서는 성전보다 더 큰 이로 몸소 자신을 지칭하신 바 있으며(마태 12,6), 제자들에게 성전세를 내도록 하셨다.(마태 17,27)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이들을 꾸짖으시며 성전을 정화하셨고(마태 21,12 마르 11,15 루카 19,45 요한 2,14-15),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많은 사람을 만나시거나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하셨다.(마태 21,23;26,55 마르 12,35;14,49 루카 19,47;20,1;21,37-38 요한 7,28;8,2.20;18,20) 혹자들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우신 것처럼 알고 있으나, 정확한 복음의 기록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루카 19,41)이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성전을 두고하는 맹세가 성전과 그 안에 사시는 분을 두고 하는 맹세임을 알라고 말씀하셨고(마태 23,17.23), 성전 뜰이나 주랑을 거닐으신 바 있었으며(마르 11,27 요한 10,23),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셨고(마태 24,1 루카 21,6), 성전을 두고 당신 몸을 가리켜 사흘 안에 다시 세울 수 있다고 하셨고(마태 26,61 마르 14,58;15,29 요한 2,19.21),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두 갈래로 찢어졌다.(마태 27,51 마르 15,38 루카 23,45) 예수님께서는 벳자타 못가에서 치유해주신 병자를 성전에서 다시 만나시고는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하셨다.(요한 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