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제의 숭배를 강요했던 고대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 박해는 공개적인 처형이나 화형, 맹수의 밥으로 던지는 등의 잔혹함 자체였다. 형세가 역전되던 중세 유럽에서는 이단을 척결한다는 소위 종교 재판이 국가의 정치적 목적과 결탁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종교적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20세기가 되면서는 “종교가 아편”이라고 규정한 공산주의를 비롯하여 이상한 이데올로기들이 등장하면서 종교 활동이 제한되거나 파괴되었고, 종교인들이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지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행방불명이 되는 시대를 살았다. 20세기를 넘어 21세기의 4분의 1을 보내는 시점에서 우리는 이제 그러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고,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세상 어디서나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듯한 착각 속에 산다.
하지만 우리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종교의 극심한 통제 사회를 머리 위에 이고 옆에 끼고 사는 비극적 현실 속에 있다. 많은 이들은 현대 사회야말로 역사상 종교적 박해가 가장 광범위하며 종교적 이유로 목숨을 잃는 이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가장 많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인류의 역사 안에서 훨씬 더 악랄하고 교묘하게 종교적 이유로 박해가 가해지고, 종교 때문에 목숨을 잃는 순교자들이 훨씬 더 많은 오늘의 시대와 세상이다. 그중에서도 그리스도인,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고 목숨을 잃는 이들이 아직 너무도 많고, 어쩌면 가장 많은 현시대를 우리는 산다. *참조. 2023년도 9월 20일 순교자 대축일 복음 강해(https://benjikim.com/?p=5710)를 통해서 현대에도 계속되는 박해와 세계 박해 상황(2022년)을 볼 수 있다.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태어나 그리스도교의 수많은 신학적 개념들을 라틴어로 정리하셨으며, ‘삼위일체(라틴어: trinitas)’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하신 분으로도 알려지는 교부 테르툴리아노(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 155~240년)께서는 순교로 신앙을 증거하는 그리스도교인들에게서 감동을 받아 자신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교부께서는 <호교론(Apologeticus)>에서 오늘날까지도 순교성월이면 늘 회자하는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다.(라틴어: Semen est sanguis Christianorum. / 영어: The blood of the martyrs is the seed of the Church.)”라는 유명한 말씀을 남긴다.
순교, 순교자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순교와 순교자에 관하여 「순교는 신앙의 진리에 대한 최상의 증거이다. 순교란 죽음에까지 이르는 증거를 가리킨다. 순교자는 자신과 사랑으로 결합된 그리스도,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순교자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와 그리스도교 교리의 진리를 증언한다. 순교자는 용기 있는 행동으로 죽음을 참아 받는다.(제2473항)」라고 정의한다.
전통적으로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순교’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서 확인된다. 첫째는 “신앙을 포기하기를 거부”하거나 “신앙이나 윤리에 위배되는 어떤 행위를 거부하면서 목숨으로 신앙을 지키는” 경우이고, 둘째는 어떤 이가 “odium fidei(신앙 증오)”로 누군가에 의해 살해될 때이다. 그런데, 교회는 이러한 순교의 개념이 다양하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다른 형태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새로운 순교의 개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20~2005년)께서는 1993년의 회칙 “진리의 광채(Veritatis Splendor)” 제93항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이를 확인한다: 「순교는 교회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가장 두드러진 표시입니다. 죽음으로써 증언한 하느님의 거룩한 법에 대한 충실성은 피를 흘리기까지(usque ad sanguinem) 한 장엄한 선포요 선교적 투신입니다. 이로써 윤리적 진리의 빛은 개인과 사회의 행동과 생각에 빛을 비춰줍니다. 이 증거는 사회와 교회 공동체에서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 최악의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특별히 귀한 공헌을 합니다. 최악의 위기란 바로 선악에 대한 혼란이며, 이 혼란은 개인과 공동체들의 윤리 질서를 세우고 보존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교회의 순교자들과 모든 성인은 일생을 윤리적 빛으로 변화시킨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범을 통하여, 그 윤리 감각을 일깨움으로써 역사의 모든 순간을 밝게 비추었습니다. 그들은 선에 대해 확실하게 증언함으로써 법을 어기는 사람들에게 역으로 증거를 보여 준 살아있는 증인이며(참조. 지혜 2,12), 이 시대에도 예언자의 말을 생생하게 메아리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불행하여라, 좋은 것을 나쁘다 하고 나쁜 것을 좋다 하는 자들! 어둠을 빛으로 만들고 빛을 어둠으로 만드는 자들! 쓴 것을 단 것으로 만들고 단 것을 쓴 것으로 만드는 자들!”(이사 5,20)
순교가 윤리적 진리에 대한 증거의 극치를 보여 줄 지라도, 그래서 비교적 적은 수의 사람들이 순교의 부르심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모든 그리스도인이 매일매일 고통과 큰 희생을 각오하면서까지 해내야 할 변함없는 증거가 있습니다. 실로 예사스러운 상황 속에서 윤리 질서에 대한 성실성에 수반되는 무수한 어려움 앞에서도, 그리스도인은 기도 안에서 받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끔은 영웅적인 투신에 부름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용덕으로 무장되어 – 대 그레고리오 성인이 가르치는 바와 같이 – 실로 “영원한 상급을 위하여 이 지상의 어려움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교황님께서는 피를 흘려 신앙을 증거하는 순교도 영웅적인 순교이지만, 피를 흘리지 않으면서도(이른바 ‘백색 순교’) 투옥과 고문, 강제 노동을 겪거나, 나아가 신앙 때문에 일자리를 잃거나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하는 경우를 넘어 물질주의, 쾌락주의, 상대주의, 소비주의 등 현대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가치관에 동조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으며, 미움과 분열, 경쟁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용서와 사랑, 자비로 진리를 증언하고 자신의 신앙적 양심을 지키는 삶을 사느라 고통과 희생을 겪는 것이 영웅적인 순교 행위일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재임 동안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겪어야 하는 일상의 순교를 누누이 역설하신 바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새로운 천년 기의 시작인 2000년을 앞두고 희년을 선포하기 위해 1998년 11월 29일에 “강생의 신비(Incarnationis Mysterium)”라는 교황 교서를 발표하였는데, 이때에도 지난 세기를 돌아보면서 제13항에서 「…이제 막을 내리는 이 세기는 특히 나치즘, 공산주의, 인종적·부족적 갈등으로 인해 수많은 순교자를 낳았습니다.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신앙을 위해 고통받았으며,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충실함을 피로써 대가를 치르기도 하였고, 무자비한 독재 정권으로 변질된 이념에 굴복하기를 거부하여 끝없는 수감 생활과 온갖 박해를 용감히 견뎌내야만 했습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순교는 신앙의 진리를 가장 설득력 있게 증명합니다. 가장 잔혹한 죽음에도 신앙은 인간의 모습을 부여하고, 가장 끔찍한 박해 속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지구의 모든 구석에 있는 교회는 순교자들의 증언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시샘하듯 그들의 기억을 지켜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흠숭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이며 주님을 본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순교자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의 왕이시며 스승이신 분을 향한 그들의 비할 데 없는 신앙심 때문에 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그들의 순교에 동참하고, 동료 제자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성 폴리카르포의 순교록」, 17, 3: SC 10bis, 232(Funk 1, 336)」(가톨릭교회교리서, 제957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