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칠은七恩과 아홉 열매

‘성령’이라 한다. 이는 평범한 영이나 정신이 아닌 거룩한 영, 하느님의 영에 관한 내용이므로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이사 4,8 시편 99,5.9 묵시 4,8) 하고 한 번으로는 도저히 안 되므로 세 번 거룩하신 분의 영에 관한 내용이므로 ‘거룩할 성聖’이라는 글자를 붙여 ‘성령’이라 한다. 곧 인간을 “끝까지”(요한 13,1) 사랑하시는 거룩하신 하느님의 마음, 사랑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성 아우구스티누스(354년~ 430년)께서 『Father the Lover, the Son the Beloved, and the Spirit the Love(사랑하시는 분, 사랑받으시는 분, 사랑하시고 사랑받으시는 분 사이의 사랑)』이라고 정의할 때의 “사랑”;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1090~1153년)께서 『입 맞추시는 분, 입맞춤을 받으시는 분, 그리고 입맞춤 자체이니 이 모두가 나뉠 수 없는 영원한 하나의 원圓 같으며 변할 수 없는 평화, 분리될 수 없는 사랑, 나뉠 수 없는 일치(‘아가雅歌서’에 관한 설교 8,2)』라고 정의할 때의 “입맞춤 자체”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 편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서로 나누는 것이고, 그렇게 나눔으로써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알아가고 서로의 사랑이 깊어간다. 교회는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모인다. 하느님께서는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 하시는 예수님 말씀대로 우리가 행복하고 즐겁게 살도록 하라고 하신 분이다. 어린아이가 자라서 결혼을 하고 새살림을 꾸려 새 삶을 시작하듯이 우리도 새 생명을 얻는 세례성사로 성령을 받고 견진성사를 통해 얻는 성령의 은총으로 더욱 행복해지고 더욱 기뻐하며 더욱 즐거워지고 더욱 영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 공생활 동안 예수님 곁에 3년이나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못했고, 무엇이 참 행복인 줄을 몰랐던 제자들이었다. 부활하신 주님과 40일을 함께 지내면서도 아직 몰랐던 제자들이었다. 이는 예수님과의 진정한 만남이 없어서였다. 이후 제자들은 함께 모여 기도했고, 기도하면서는 예수님과 지냈던 기간을 기억했으며, 기억하면서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고, 그동안 얼마나 주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해주셨는지를 알아갔다.

비가 오면 청개구리는 강가에서 운다.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운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과는 반대로만 살았던 청개구리, 그래서 마지막 유언도 반대로 할 것으로 생각하신 어머니가 강가에 묻어달라 했을 때,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청개구리는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신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이라도 지켜볼 요량으로 어머니를 강가에 묻었다. 그렇게 시작한 눈물은 다시 비만 오면 어머니의 무덤이 떠내려갈 것을 걱정하는 또 다른 눈물이 되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청개구리였다. 예수님 공생활 동안 결코 못 알아들었던 제자들이었다. 예수님이 참혹한 십자가의 형벌로 돌아가시자 그제야 제자들도 펑펑 울었다. 그렇게 울고 나서야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해가기 시작하였다. “성령”을 체험하였고,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였다.

하느님의 사랑, 성령이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사도 2,2-3) 사도들 위에 “내렸다.” “거센 바람”이다. 사랑은 “바람”이다. 거센 바람이다. ‘바람났다’라는 말은 ‘사랑에 빠졌다’라는 말이 아니던가? 또한, 사랑은 불이다. 사랑은 뜨거운 불이다. 불같은 말을 주고받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에 빠지면 집도 날아가고 산도 날아간다. 거센 바람이 불고, 마음이 살살 녹는 부드러운 말이, 뜨거운 말이 오가며 돌심장이 살로 된 부드러운 심장이 된다. 사랑하면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고 살맛이 난다. 못생긴 고구마여도 불에 익히면 맛이 있어지지 않는가? 그처럼 맛있는 삶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삶은 맛을 느끼는 삶이 된다.

불은 또 태워버린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3) 하신다. 불이 모든 것을 태워버리듯이 성령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살라 용서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만났고,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했다.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 하느님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이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알도록, 보도록, 만나도록 해 주신 예수님이다. 인간의 이성異性 간 사랑도 놀랍고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데, 하물며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면 어찌하겠는가? 놀랍고 경이로워 헤어날 수 없는 사랑이다. 사제가 되는 것은 여자와의 사랑이 싫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되어서이다. 성령, 영적인 사랑을 만나게 되어서이다.

울다가 울다가 마음이 편해지고 마음이 뜨거워진다. 그리고 즐거워진다.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기 시작하게 된다. 그러면 변화가 시작된다. 흉측하게 찌그러진 얼굴이 훤해지고 일과가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그동안 머리로 했던 공부가 마음으로 하는 공부가 되기 시작하고 즐겁고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하느님의 사랑을 만난 사람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신앙인들은 그렇게 점점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는”(마르 16,18) 사람이 되어간다. 사랑에 빠지면 돈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되지 않듯이 그저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만 살게 된다. 사제가 되었던 것이 그저 ‘하느님을 사랑해서’라는 말 때문이었음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렇게 알게 된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을 만난 사람이 되어서 누구에게나 마음을 쉽게 여는 사람이 되고, 성사 생활에 열심한 사람이 되며, 성체를 받아 모실 때마다 눈물이 나는 사람이 된다. 어떤 시련에도 그저 감사하는 사람이 되고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한없는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된다.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은사를 입는다. 신약에 나오는 은사의 종류에는 30여 가지가 있으며 구약성경에도 여러 은사가 나온다. 구약에서는 이사 11,2-3에서 성령 7은의 목록을 볼 수 있고, 신약에서는 1코린 12,8-10(지혜와 지식의 말씀, 믿음, 치유, 기적, 예언, 영의 식/분별, 심령예언과 해석), 1코린 12,28-30(사도, 예언자, 교사, 기적자, 치유자 등등), 로마 12,6-8(예언, 봉사, 가르치는 일, 권면, 희사, 지도, 자선) 에페 4,11(사도, 예언자, 전도자, 목자, 교사) 등 여러 곳에서 은사들을 발견할 수 있다.(*이미지-구글, 참조-20220530, https://blog.naver.com/kbenji/memo/222751979828)

성령의 7가지 은사(개인적으로 견고해지는 은사, 영적인 무기고: 이사 11,1-3ㄱ 로마 12,3-8 1코린 12-14장 에페 4,7-13 1베드 4,10-11)

슬기: 사랑하면 똑똑해진다. 하느님에 관한 거룩한 내용에  관한 인식과 판단력, 거룩한 진리에 따라 인간사를 헤아리고 판단하여 인도하는 능력

통달: 사랑하면 서로의 마음을 훤히 알아서 달인이 된다. 사물의 본질, 특히 영원한 구원을 위해 필요한 더 높은 진리들, 직관적으로 꿰뚫어 하느님을 ‘보는’ 능력

의견: 사랑하면 좋은 생각이 번뜩인다. 어떤 이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들로 하느님에 의해 인도되도록 한다.

굳셈: 사랑하면 목숨까지 내놓는다.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려는 확고한 마음, 특히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거나 위험할 때, 영생에 대한 확신 덕분에 모든 장애, 심지어 치명적인 장애라 하더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확신이다.

지식: 사랑하면 많이 알게 된다. 방황하지 않고 믿음과 올바른 길에서 바른 행동으로 나아가도록 판단하는 능력이다.

효경: 사랑하면 정성스럽고 존경하는 마음이 앞선다. 자녀다운 애정으로 하느님을 섬기면서 할 바를 다하는 것이다.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녀들이므로 그들에게 해야 할 바를 다 하고 성인聖人들을 존경하며 성경을 배반하지 않는 것이다.

두려움: 사랑하면 함부로 하지 못한다. 사랑해서 존중하고 그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진다. ‘자녀다운(효성스러운)’, 혹은 건전한 두려움으로서 하느님을 공경하면서 행여 하느님으로부터 우리가 떨어져 나갈까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처벌받을까를 두려워하는 두려움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하느님의 사랑,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은 공동 유익의 9가지 은사(봉사 은사)도 입는다.(1코린 12,8-10)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이 직접 뽑지 않고 사도들이 뽑은 사도이다. 그는 거듭 자기도 사도라고 말한다. 그렇게 자기도 성령의 은사를 입었다고 한다.

성령의 9가지 열매(갈라 5,22-23)

교부들은 이를 나무에 달린 열매들 그림으로 그리기를 좋아했다. 잎사귀가 무성한 가운데 열린 열매 중 맨 위의 열매는 사랑이고, 맨 아래에 있는 열매는 절제이다. 맨 밑의 ‘절제’가 막히면 다른 열매들이 죽을 수도 있다. 절제를 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열매들은 대개 둥글게 표시한다. 열매는 둥근 마음에 심어야만 열매가 되는 씨앗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열매는 ‘마음의 일’이 맺는 결실이다. ‘마음의 일’이라는 말은 떠벌이면 열매를 맺지 못하고 나무가 죽는 것, 혹은 잎만 무성한 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조용하게 마음에 심어야만 열매가 되고 열매를 맺을 때 나무가 된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갈라 5,22-23)이다. 성령의 열매는 향주삼덕(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윤리생활의 기본이 되는 사추덕四樞德(지덕, 의덕, 용덕, 절덕)과 칠은에서 나온다.

사랑: 하느님을 향한 사랑 고백을 자주 해야 사랑의 기술을 얻는다(1코린 13,1-13 요한 3,16-21 1요한 4)

기쁨: 세상 기쁨을 멀리하고, 시련 중에도 기뻐하도록(1테살 5,16-18) 의지적 훈련(시편 3;13;18;43;103)

평화: 이웃과 화해, 근심 걱정을 하느님께 맡겨야(이사 9,6;53,5 로마 5,1)

인내: 하느님이 주시는 때를 기다릴 수 있도록 환경과 환난에 대한 이해 증진(갈라 5,22 1테살 5,14)

호의: 보복하지 않고 용서와 자비를, 이웃의 작고 사소한 것에 관심(1베드 3,9.20 1테살1 탈출 34,6 민수 14,18-20 시편 86,15 로마 2,4 2베드 3,15 창세 18-19장)

선의: 선행, 착함, 시간·재능·재물을 관대하게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야고 1,17 마태 5,16)

성실: 진실, 신용, 충실성, 자신에게 솔직하면서 책임 완수 훈련(에페 1,1 콜로 1,2 느헤 7,2)

온유: 조용함과 차분함, 관대한 중용, 자제한 힘(갈라 5,22-23 에페 4,14-16 이사 55,9)

절제: 생각, 말, 행동, 의지, 감정, 욕망, 육욕(필리 2,13 갈라 5장 로마 6장)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갈라 5,25)은 ‘위대한’ 영혼(expansive magna anima, great soul)으로서 아홉 가지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가련한’ 죄인의 영혼(the pusilla anima, the cramped soul of the sinner)은 성령을 따라 살지 않으므로 이러한 열매들을 맺지 못한다.

2 thoughts on “성령 칠은七恩과 아홉 열매

  1. 오는 성령강림 대축일을 준비하며 아내와 같이 9일 기도 중에 있습니다.
    그 와중에 신부님의 글을 읽으니 더 감회, 감동이 있습니다.

    성령 7은을 잘 받기 위해 남은 기도일 중에 위에 쓰신 글 내용 잘 새겨 보렵니다.
    감사합니다.

    아퀴나스 올림

  2. 세상 중의 기쁨을 멀리하고
    시련 중에 기뻐하라.
    어찌
    이 말씀이 제게 남습니다.
    9가지 성령의 열매.
    제겐 절실함으로 다가옵니다.
    뜻을 헤아리며 실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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