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리” 이야기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신 기적 이야기를 두고 어떤 형제가 “남은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요한 6,13)하다 하는데, 도대체 그 광주리라는 것이 느닷없이 어디서 등장했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말 성경에서 “광주리”로 번역하는 것은 대나무나 대나무 껍질 같은 것, 싸리, 버들 따위로 엮은 일종의 용기로서 속이 깊으냐 얕으냐의 정도와 크기로 구분하여 ‘채반, 소쿠리, 바구니, 광주리’ 등으로 불린다. 영어에서는 basket이나 large basket 등으로 구분한다.

우리말 성경에서 “광주리”라는 말은 27회 정도 등장한다. 아마도 갈대 사이에 아기 모세를 담아 숨겨놓았던 “왕골 상자…갈대 사이에 있는 상자”(탈출 2,3.5) 역시 일종의 광주리였을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광주리는 만남의 천막에서 드리던 제물을 담던 용기(참조. 탈출 29,3.23.32 레위 8,2.26.31 민수 6,15.17.19 신명 26,2.4.5.17 판관 6,19)로 쓰였고, 작은 사물을 옮기는 일반적인 수단(2열왕 10,7 시편 81,7 예레 24,1.2)으로도 쓰였다. 그런데 복음에서는 유독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신 기적 이야기에서만(마태 14,2;16,9.10 마르 6,43;8,19 루카 9,17 요한 6,13) 쓰이다가 바오로 사도의 탈출 수단(2코린 11,33)으로 딱 한 번 쓰인다.

이런 내용으로 보아 “광주리”는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늘 지니거나 가지고 다니면서 사물을 담거나 이동하는 수단으로서 요즘의 쇼핑 백이나 장바구니, 캐리어 정도에 해당한다.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신 기적 이야기에서도 광주리가 ‘느닷없이’ 등장한 것은 아니고,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였으니 광주리도 당연히 함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한편, 교회의 오랜 역사 안에서 초대 교부 중 한 분이신 오리게네스(185년경~253년경)는 “광주리” 자체에 관한 관심보다도 그 광주리가 가득 찼느냐 반만 찼느냐를 묵상하면서 다음과 같은 주석을 남긴다: 「계속되는 빵의 선물 – 시편을 보면 요셉이 광주리를 들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시편 81.7) 참 예수님의 제자 열두 사도는 남은 빵 조각을 열두 광주리에 모아 담았습니다. 그 광주리들은 반만 찬 것이 아니라 가득 찼습니다. 살아 있는 빵 조각들이 담긴 열두 광주리는 군중의 교사들인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지금도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 남아 있을 것입니다.(오리게네스, 「마태오 복음 주해」 11.2 55 SSGF 2,111;PG 13,908)」(교부들의 성경 주해, 요한복음-하권, 분도, 2013년, 352쪽)

그런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석해야 할까도 싶지만,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느냐?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은 일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너희가 몇 광주리를 거두었느냐? 그리고 빵 일곱 개로 사천 명이 먹은 일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너희가 몇 광주리를 거두었느냐?”(마태 16,9-10)라는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광주리”를 두고 9절에서는 ‘코피노스(κοφίνους, kophinous)’, 10절에서는 ‘쉬피리스(σπῠρίς, spurís)’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는 것에 착안하여 오천 명을 먹인 빵의 기적 이야기와 사천 명이 먹은 빵의 기적 이야기를 구분하면서 전자는 유다 열두 지파를 가리키는 것이고, 후자는 가나안 지역에 살던 일곱 이방 족속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열두 광주리의 ‘열둘’이라는 숫자는 금세 열두 지파와 연관된다. 그리고 가나안에 정착하려던 그 유다인들이 물리쳐야 했던 이방 족속들은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가 차지하러 들어가려는 땅으로 너희를 데려가시고, 많은 민족, 곧 너희보다 수가 많고 강한 일곱 민족인 히타이트족, 기르가스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프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실 때…”(신명 7,1)라는 말씀에 등장하는 바로 그 일곱 이방 족속들이다.

“광주리”라는 단어 하나를 두고도 이처럼 성경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겸손하게, 깊이 있게, 그리고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 궁극에는 내가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읽으시도록 기도하며 읽어야만 한다.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셨다는 기록을 만날 때마다 나는 뉴욕 출신의 유명한 도로시 데이Dorothy Day(1897~1980년)를 떠올린다. 옛날에 내가 함께 일했던 미국 선교사 신부님이신 Jack Trisolini의 사무실에 꽂혀 있던 도로시 데이의 유명한 작품 <Loaves and Fishes>라는 책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 책에서 도로시 데이는 「5천 명이나 4천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 보리 빵 몇 개와 물고기 조금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아주 조금이지만, 그래도 예수님께서 어여삐 보시고, 그것을 당신 손에 받아드시고, 축복하신다면 많은 사람이 먹을 양식이 된다. 우리가 하는 일도 아주 미약하지만, 미약하고 하지 않고는 문제가 안 된다. 예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한 일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감히 예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한 일이 조금도 없는 가련한 인생이어서 설령 빈 광주리를 예수님 앞에 내놓을지라도, 자비하신 예수님을 믿어 그것을 내놓을 용기만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그 광주리를 넘치도록 가득 채워 주신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성체성사의 식탁에서 그 기적과 신비를 체험하는 사람들이다.(*이미지-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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