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joy, allegria

기쁨이나 명랑함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 교회의 역사 안에서 맨 먼저 떠오르는 성인들은 필립보 네리(St. Filippo Neri, 1515~1595년), 토마스 모어(St. Thomas More, 1478~1535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St. Francesco d’Assisi, 1181~1226년), 그리고 돈 보스코(St. John Bosco, 1815~1888년)이다.

필립보 네리의 별명은 ‘기쁨의 성인’이다. 성인은 “양심의 가책이나 우울함은 내 집에서 나가십시오.(Scruples and melancholy: get out of my house.)”라고 말하곤 했다. 성인은 당신이 만나는 사제들이나 청소년들이 늘 기쁘게 살도록 가르쳤다.

토마스 모어 성인은 ‘유머의 사도’라고 불린다. 성인은 목이 잘리는 순간까지도 유머를 잃지 않던 분이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 단두대의 집행인에게 “이 사람아, 정신 똑바로 차려서 두려워하지 말고 자네가 해야 할 바를 잘하시게. 내 목이 엄청 짧으니 말이야.(Pluck up thy spirit, man, and be not afraid to do thine office. My neck is very short.)”라고 말했다.

그 무엇도 우리를 웃지 못하게 만들 수는 없다. 그뿐만 아니라 비관주의나 반反 유머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유머가 헤픈 아재 개그나 천박한 농담 짓거리의 도돌이표라는 말은 아니다.

모든 역경이나 불의는 인내와 사랑을 맞닥뜨려야만 한다.(Every adversity and injustice should be faced with patience and charity.)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어느 날 “레온 형제여, 우리가 이것을 인내하고 행복하게 사랑으로 견뎌내면, 여기에 바로 완전한 기쁨이 있다고 기록해주게.(If we bear this patiently and happily, and with love, Brother Leon, write that in this there is perfect joy.)”라고 친구 형제에게 말했다.

청소년의 아버지요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돈 보스코는 “항상 기뻐하십시오. 악마는 기쁨의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Always be joyful, because the devil doesn’t like joyful people.)”라고 늘 말했다. 그렇게 돈 보스코는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사제가 되기 전인 신학생 시절에 이미 친구들과 함께 ‘명랑회(society of joy, Società dell’allegria)’라는 동아리를 조직하기도 했다. 그 모임의 「회원 각 사람은 모든 이들의 기쁨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독서를 하고, 놀이를 조직하며, 대화를 나눌 의무가 있었고, 우울함을 초래하는 모든 것, 특히 주님의 계명에 어긋나는 모든 것을 금했다. 하느님을 모독하거나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나쁜 이야기를 하면 명랑회로부터 제명당했다.(돈 보스코 회상, 돈보스코 미디어, 1998년, 85쪽)」

이 위대한 성인들은 ‘기쁨’을 특별하게 살았던 성인들이다. 그들의 모범을 따르면서 우리도 진정한 기쁨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떨 때는 하루가 버겁고 일상이 힘들 수 있다. 어떨 때는 견뎌낼 힘을 얻었다고 하는 순간마저도 무엇인가가 빠져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종종 그 빠진 무엇인가라고 느끼는 것이 바로 ‘기쁨’이다. 삶에 기쁨이 없을 때 곧잘 우리는 쾌락이나 방종으로 일시적 도피를 시도하려는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과잉(남용)의 어머니는 기쁨이 아니라 기쁨 없음이다.(The mother of excess is not joy but joylessness.)”라고 말하는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년)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세상의 그 어떤 쾌락이나 재미, 전율도 우리의 기쁨에 대한 욕구를 진정으로 채워줄 수는 없다.

C.S. 루이스(C.S. Lewis, 1898~1963년)는 그의 저서 <위대한 이혼The Great Divorce>에서 “진지하고도 끊임없이 기쁨을 바라는 영혼은 반드시 그것을 얻을 것입니다. 찾는 사람은 찾습니다. 두드리는 자에게는 열립니다.(No soul that seriously and constantly desires joy will ever miss it. Those who seek find. To those who knock it is opened.)”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기쁨으로 이끄는 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역설의 대가’라는 칭호를 얻었던 G.K.체스터턴(G.K. Chesterton, 1874~1936년)은 “이교도들에게는 조금만 알려졌던 기쁨,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거대한 비밀이었다.(Joy, which was the small publicity of the pagan, is the gigantic secret of the Christian.)”라고 기록한다.(*이미지-구글)

2 thoughts on “기쁨, joy, allegria

  1. 명랑회 가입해야겠습니다.
    빙그레 웃었습니다.
    늘 미소 지으라시던
    노신부님이 잠시 생각났습니다.

    명랑회 회원 모이세요 !
    저요!!

  2. ‘그 무엇도 우리를 웃지 못하게 만들 수는 없다’라는 말씀이 ‘그 무엇도 우리를 그리스도와 갈라 놓을 수 없다’는 말씀으로 떠 오르네요. 주님과 함께 할 때 우리의 삶이 기쁨으로 가득 차리라 믿으며 미소 지어 봅니다. 신부님도 기쁨 가득한 한가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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