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니”(예레 3,15)라는 성경 구절로 시작하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1992년 사도적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Pastores Dabo Vobis)”이라는 문헌이 있다. 이 문헌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사제 양성에서 사제가 주님의 마음에 드는 목자들이 되게 하도록 고려할 여러 영역을 거론하신다. 사제로 양성 받는 이들은 적어도 「human(인간 교육: 모든 사제 양성의 기초), intellectual(지적인 교육: 신앙을 이해하기), spiritual(영성 교육: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고, 그리스도를 찾기), pastoral(사목 교육: 착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친교를 이루기)」라는 네 가지 영역에서 고루 균형 잡힌 양성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침은 이미 사제나 봉헌된 삶을 사는 이들에게 거듭 새겨야 할 기준이나 자극이 된다.
이와 함께 인터넷상에서, 특히 영어권에서는 “교황 프란치스코와 사제 생활의 7가지 기둥(Pope Francis and the Seven ‘Pillars’ of Priesthood)”이라는 글이 몇 가지 버전으로 심심찮게 검색되고 인용되기까지 한다. 필자는 미국에 있을 때 어떤 신부님으로부터 공동체의 월례 피정 강의로 이런 말씀을 직접 듣기도 했다. 정확한 저자를 알 수는 없으나 추정컨대 누군가가 여러 기회에 말씀하신 교황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이를 편집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서 “지혜가 일곱 기둥을 깎아 자기 집을 지었다.”(잠언 9,1)라고 말씀하신 대로 교황 프란치스코의 사제직에 관한 말씀을 읽다 보면 그 말씀을 읽는 이들에게 그렇게 살지 못함에 자괴감이 들 정도로 뼈아픈 말씀이 된다.(*이미지-구글)
교황 프란치스코를 따라서 본 사제 성소의 7가지 기둥
1) 그리스도와의 관계: 사제의 힘은 그리스도와 맺은 관계에 달려 있다. 사제가 자기 성소를 얼마나 깊이 살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은 일상에서 그리스도를 얼마나 찾는지 아닌지라는 것이다. 이에 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순절을 앞둔 어느 시점에 로마의 사제들 앞에서 “밤이 되면 하루를 어떻게 마감합니까? 하느님 앞에서입니까, 아니면 TV 앞에서입니까?”라고 물었다. 사제로서 사목자의 마음은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관계여야 한다. 사제는 그리스도께서 보시는 대로 보고,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대로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 제자들이 다른 이들에게 곧바로 ‘다른 그리스도’가 되지 못하였듯이 사제 역시 사제품을 받는다고 즉시 ‘다른 그리스도’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사제는 그리스도와의 밀접한 관계와 기도를 통해 계속 성장해야만 한다.
2) 사제로서 봉사하려는 이들과의 관계: 사제는 그리스도와 가까운 사이여야 하듯이 자신이 봉사하고 섬기려는 이들과도 가까운 사이여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첫 번째 성유 축성 미사의 강론에서 사제가 “양 냄새”가 나는 목자여야 한다면서 행정가가 아닌 사목자로서 살고자 한다면 “사람들, 특히 잃어버린 양들을 찾으러 가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컴퓨터 뒤에 앉아 있는 목자는 진정한 목자가 아니다.”라고 단언하신 교황님께서는 교구민들의 이름뿐 아니라 그 집에 있는 반려동물의 이름들까지도 기억하는 한 사제를 예로 들기도 하면서, 많은 사제, 주교, 성직자나 수도자들이 행정 업무의 노예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 교회의 복음적 사명을 위해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라고 촉구한다.
3) 섬김에서 얻어지는 권위: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으로서의 즉위 미사 강론에서 사제의 권위는 봉사, 섬김, 특히 가장 가난하고 약한 사회적 약자, 사회에서 가장 쉽게 잊히는 이들을 보살피고 보호하는 데서 얻어진다고 강조한다. 이는 사제가 자기의 안위와 안락한 테두리를 벗어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구체적으로 접촉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아르헨티나에서 ‘빈민가 주교(the slum bishop)’라고까지 불렸던 교황은 사회의 변두리에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예수님을 본받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교황이 즉위 후 교황으로서 첫 방문지로 소년원, 그리고 유럽으로 넘어오려다가 죽어간 가난한 이민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람페두사라는 섬을 선택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4) 자비의 사목: 사제는 자비의 사목자여야 한다. 교황은 갓 서품을 받은 10명의 사제를 앞에 두고 가장 중요한 조언으로서 “자비로워지십시오!(Be merciful!)”라는 말씀을 단순하게 하셨다. 교황으로서 그의 사목 표어를 마태오의 부르심 장면에서 따와 「미세란도 아트퀘 엘리젠도(Miserando Atque Eligendo = Chosen Through the Eyes of Mercy, 자비로이 부르시니)」라고 정한 교황은 16세 소년 시절, 세리였음에도 위대한 회심자가 되었던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에 드렸던 고백성사에서 체험한 자비가 자기 성소의 출발점이었다고 회고한다. 교황으로서 첫 삼종기도 훈화에서 교황은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시는 데에 결코 지치는 법이 없으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사목자들이 성사 안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자비를 베푸는 데에 충실해지라는 분명한 요청이다.
5) 단순한 삶: 사제는 단순한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 교구 사제들이 비록 청빈 서원의 의무를 지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단순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교황은 허영과 세속적 야심에 물든 사목자들을 반복해서 비판하곤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 시절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주교관 대신 작은 아파트에서 거주하며 기사 딸린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식사를 손수 마련해서 살았던 그 모습 그대로 교황이 되어서도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면서 동료 사제들에게 영적 가난의 진정성과 그 진정성의 점검을 해야만 한다고 강조하였다.
6) 진실의 모델: 사제는 마땅히 사는 대로 말하고 말하는 대로 사는 진실의 모델(a model of integrity)이 되어야만 한다. 사제가 가는 길에서는 거만한 성직주의, 지위를 이용한 횡포나 남용, 교회 내 경력의 사다리 타기와 같은 것이 함께 갈 수는 없다. 교황은 사제의 진정한 권위는 세속적 영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는 개인적 겸손과 진실함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교황이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그 선출을 위해 모였던 기간의 숙박비를 직접 냈었다는 사실은 자신이 교황이 되었지만, 그 어떤 특권도 누리지 않겠다는 상징적 제스처였으며, 사제라면 누구라도 일상의 책임에서 면제된다는 의식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신호였다. 사제가 그렇게 살지 않으면 목자가 아니라 양을 잡아먹는 늑대가 되고 만다는 것이 교황의 생각이다.
7) 축복의 원천: 사제는 하느님 백성을 위한 축복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사제 서품 때 사제에게 부어진 기름은 사제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니, 그가 섬기는 하느님 백성에게까지 흘러가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첫 성유 축성 미사에서 “좋은 사제인지 아닌지는 그가 섬기는 신자들에게 사제의 기름이 흘러가는지 그러지 않는지로 알 수 있습니다.……사제들이 섬기는 신자들이 기쁨의 기름으로 기름부음을 받는지 어떤지는 그 사제가 드리는 미사를 마치고 신자들이 기쁜 소식을 받은 신자로서 성당을 나오는지 그러지 않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주제는 교황으로서 두 번째 집전했던 성유 축성 미사 강론의 주제이기도 했는데, 교황은 이 미사에서 “사제들이 기쁨의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기쁨의 기름을 부어주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사제는 강론에서, 기도에서, 일상의 현실에서 자기 양떼와 마음으로 함께 현존하면서 양떼들이 “기름부음을 받으신 분, 곧 그리스도의 향기가 사제를 통해 자기들에게 가까이 왔음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덧붙여, 2013년 3월 28일 첫 성유 축성 미사에서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랑하는 신자 여러분, 여러분의 사제들이 항상 하느님의 마음을 따르는 목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와 사랑으로 여러분의 사제들과 가까이 있도록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사제로 부르시는 이들이 겸손과 기쁨으로 자기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사랑하는 사제 여러분, 아버지 하느님께서 기름부음을 받은 우리 안에 거룩함의 성령을 새로이 해 주시도록 빕니다. 저희 마음 안에 당신의 영을 새롭게 하시어 이 기름부음이 모든 이에게 흘러가게 하시고, 특별히 진실한 신자들이 가장 많이 찾고 가장 많이 감사를 드리는 변두리까지 흘러가게 하소서. 저희 백성들이 저희가 주님의 제자들임을 느끼도록 해 주시고, 저희의 말과 행실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가져다주신 기쁨의 기름을 받게 되기를 바라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