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2,20-33(사순 제5주일 ‘나’해)

사순절의 막바지인 사순 제5주일에는 이른바 ‘표징의 책’이라고 불리는 요한복음 1부(1-12장) 중 맨 마지막 장의 한 대목을 듣는다. 예수님 공생활에서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마지막 활동인 셈이다.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고, 그곳 라자로의 집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으며, 최고 의회가 예수님과 라자로까지 죽이기로 결의를 한 뒤이다. 이에 따라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 가운데 드러나지 않게 다니시고

요한 3,14-21(사순 제4주일 ‘나’해)

사순 제4주일은 미사 전례의 입당송이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 (…) 슬퍼하던 이들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라고 시작하면서 기쁨으로 부르는 초대를 담았으므로 “기뻐하여라(laetare)”, 곧 “기쁨 주일”이라 부른다. 지난주 복음을 통하여 우리는 요한복음이 전해 주는 바에 따라 예수님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 곧 하느님과의 통교 자리라는 선언의 말씀을 들었다.(참조. 요한 2,19.21) 오늘 전례의 복음을 들으면서는 참 어려운 대목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요한 복음사가는

요한 2,13-25(사순 제3주일 ‘나’해)

오늘 교회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 예루살렘에서 처음으로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내신 제4복음서의 내용을 전한다. 1.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복음은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요한 2,13)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파스카 축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매년 봄, 이스라엘 탈출을 기념하는 축제로서 주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백성을 창조하셨고, 그들을 이집트의 종살이로부터 자유의 땅으로 인도하셨던 구원의 업적을 기리는 축제이다. 이

마르 9,2-10(사순 제2주일 ‘나’해)

사순절 둘째 주일은 통상 예수님의 변모에 관한 내용을 복음으로 듣는데, 이는 예수님의 유혹을 들었던 지난주 사순 첫 번째 주일의 복음과 대비를 이룬다. 금년에는 ‘나’해로서 마르코복음이 전해주는 변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른 공관복음과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 독특함이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복음을 읽어나갈 것이다. 복음이 위치한 맥락으로 보면 예수님의 공생활 기간 중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마르

마르 1,12-15(사순 제1주일 ‘나’해)

사순 제1주일이다. 사순 시기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주님의 부활을 기다리는 시기이다. 초순初旬, 중순中旬 하듯이 순旬은 10일을 의미하며, 사순四旬이란 40일을 뜻한다. 사순절四旬節이란 교회 전례 안에서 속죄의 재계齋戒(재계할 재, 경계할 계-부정한 일을 멀리하고 심신을 깨끗하게 함)를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며 부활축일을 준비하는 재의 수요일부터 성목요일의 주님 만찬 저녁 미사 전까지의 40일이다. *재의 수요일 주간의 수목금토(4) +

마태 6,1-6.16-18(재의 수요일)

사순절 여정을 시작합니다. 사순절은 우리가 따라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요엘 예언자의 말씀으로 열립니다. 사순절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그리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우리에게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어,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요엘 2,15)라고 간청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에서 나오는 초대입니다. 너희가 나에게로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사순 시기는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여정입니다. 바쁘다는 핑계, 무관심의 핑계를 대며 “주님, 조금만

마르 1,40-45(연중 제6주일 ‘나’해)

몇 주째 우리는 여전히 마르코복음 1장에 머물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주일 복음에서 우리는 특정 시간이나 장소가 명시되지 않은 이야기 하나를 다소 갑작스러운 듯 듣는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에서 일어난 일처럼 들을 수 있게 된다. 예수님과 어떤 나병 환자의 만남 이야기이다. 1.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성경에서는 문둥병(한센병)뿐 아니라 타박상이나 상처들 및

마르 1,29-39(연중 제5주일 ‘나’해)

지난주 우리는 이른바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마르 1,21-34)라고 알려지는 대목의 전반부에서 예수님의 일과에 관해 듣기 시작했다. 예수님께서는 대중들에게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말씀을 선포하셨고, 그에 관한 표징을 일으키시어 사람들이 놀랐으며, 예수님의 소문은 갈릴래아 지역에 두루 퍼져나갔다. 오늘 복음은 그러한 말씀과 표징들의 연장이며,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 중 후반부에 해당한다. 1.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예수님과 첫 번째로

마르 1,21ㄴ-28(연중 제4주일 ‘나’해)

지난주 복음에서 네 제자의 부르심(마르 1,16-20)을 전한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제 예수님께서 더는 혼자가 아니시라고 강조한다. 바야흐로 예언자이자 교사였던 세례자 요한이 체포된 후에 그의 제자라고 추정되는 예수라는 라삐 한 분이 사해 해안을 따라 갈릴래아로 오셨는데, 그 라삐 예수님을 따르는 작은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 작은 공동체는 점점 커질 것이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그분 삶에 끝까지 동행할 것이었다. 복음사가

마르 1,14-20(연중 제3주일 ‘나’해)

노인이더라도 노인성 치매에 걸리지 않는 한 종종 과거의 기억, 특별히 뭔가를 새롭게 시작했거나 그로써 인생이 달라졌다거나 인생에 흔적을 남긴 사랑과도 같은 것, 아직도 나의 인생을 일정부분 사로잡고 있는 무엇인가를 기억하며 회개와도 같은 순간을 다시 되살리려고 노력하곤 한다. 감히 회개의 순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성소聖召의 순간, 부르심의 순간, 소명召命의 순간, 주님께서 그때까지 살았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기를 원하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