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사람들이 “하느님”을 “하느님”이라 부르지만, 옛사람들은 하느님을 인간의 언어로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또 감히 하느님의 이름을 인간의 언어로 인간의 입에 올린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지,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몹시 궁금해했다. 다행스럽게도 성경은 우리에게 이러한 물음에 답을 제시한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하느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God replied to Moses: I am who I am. Then he added: This is what you will tell the Israelites: I AM has sent me to you. God spoke further to Moses: This is what you will say to the Israelites: The LORD, the God of your ancestors,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 has sent me to you. This is my name forever; this is my title for all generations.)”(탈출 3,14-15)
탈출기 3,14에서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을 스스로 “있는 나”라고 밝혀주신다. 이어지는 15절에서는 다시 하느님을 “야훼”라고 한다. 모세에게 하느님께서 몸소 말씀하신 하느님의 이름을 가리키는 יהוה 이라는 히브리 자음 4글자만큼 이스라엘 백성을 두렵게 한 글자는 없었을 것이다.
『출애굽기(탈출기)의 불타는 가시덤불의 대목에 나오는 “나는 곧 나다.”(탈출 3,14-공동번역)라는 표현…이 표현은 명제命題와 부정否定을 초월한다. 사실 히브리 말로 된 이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학자들은 각 시대의 정신에 따라 여러 가지로 추측할 뿐이다. 본질주의적 해석(‘순수한-자존적自存的-행동자’)을 할 때도 있고, 실존주의적 해석(‘나는-너에게-말해-주지-않으리라-그러나-네-일어나-상관하여라-네-일이란-다음에-내가-네-곁에-갈-때-네가-무엇을-해야-하는가를-아는-것이-아니라-그-일을-하는-것이다.’)을 할 때도 있다.(토마스 머턴, 선과 맹금, 장은명 옮김, 성바오로, 1998년, 17쪽)』
“있는 나”라는 하느님의 이름은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읽으면서 히브리어 스펠링으로 말하자면 ‘요드-헤-와우-헤’, 영어식으로 하자면 YHWH 라는 자음이 되고 이를 <테트라그라마톤Tetragrammaton>이라고 부르지만, 발음이 불분명하다. 감히 발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일반적으로 ‘야훼’라고 발음하는 것으로 인정한다. New American Bible 영어문에서는 “있는 나”를 “I AM”이라 하고 “야훼”를 “LORD”(모두 대문자로 표기)라고 옮겨놓는다. 유다인은 성경을 읽다가 특별히 구약성경에서 6,700여 번이나 등장하는 “야훼(YHWH)”라는 이 어휘를 만날 때마다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는 생각 때문에 직접 발음하지 않고 ‘아도나이’(주主, 주님, אֲדֹנָי, 모음만 따오면 ‘아오아이’인데, 자음만인 YHWH에 아도나이의 모음만을 합쳐 ‘야훼’ 혹은 ‘여호와’라는 말이 생겨난 것으로 추정)나 구약성경에서 2,500여 번 등장하는 ‘엘로힘’(신神, אֱלהִים, ‘야훼’라는 신의 이름이 등장하기 전까지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섬기던 신들의 이름)이라는 단어를 대신 사용하였다. 가톨릭교회에서는 교황청 지침으로서 공식적인 전례 용어에서 “야훼”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면서 “주님” 혹은 “주 하느님”을 사용하기로 한 바 있다. 현재의 우리말 ‘구약성경’에서 “야훼”라는 말은 10번 정도 등장하고 옛 ‘구약성서’에서는 5685번 등장한다. 그런데 똑같은 말씀을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지칭하여 말씀하신 적이 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Jesus said to them, ‘Amen, amen, I say to you, before Abraham came to be, I AM.’)”(요한 8,58)
굳이 영어번역본을 탈출기나 요한복음에 나란히 함께 적은 까닭은 탈출기에서 하느님께서 스스로 밝히신 당신의 이름을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그대로 사용하시고 있음을 밝히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말 번역에서는 불행하게도 요한 8,58의 맨 마지막 부분 “I AM”이라는 부분을 통째 누락시키고 말았다. 이를 빠뜨리지 않고 읽을 때 예수님께서 단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라고 하셨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당신을 지칭하여 감히 하느님의 이름이라고 알고 있었던 “I AM”이라고 하셨으므로 이어지는 구절에서 유다인들이 “돌을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요한 8,59)라는 부분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게 이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10장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요한 10,32) 하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서 자처하고 있소.”(요한 10,33)라는 부분이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이 부분의 누락시킨 부분을 포함하여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나는 ‘있는 나’이다.” 이렇게, 혹은 이 정도로 58절이 번역되는 것이 맞다. 성경을 잘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 탈출기를 염두에 두시고 당신을 “있는 나”, 곧 하느님으로 선포하시는 대목에서 사람들이 이를 신성모독으로 간주하여 “돌을 던지려고 하였다”라는 말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당신을 하느님으로서 선포하시는 문장을 굳이 건너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랍말 성경에도 엄연히 있고 영어 번역에서도 있는 “있는 나”라는 소위 “에고 에이미(ἐγὼ εἰμί)”로 예수님께서 당신이 “야훼”이며 하느님이심을 밝히시는 단정적인 중요한 문장을 우리말 번역에서 누락시킨 이유를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8장 58절을 통해 당신을 하느님으로 계시하신 것과 함께 당신을 믿는 이들이 더 쉽게 이를 알아들을 수 있게 하시려고 “있는 나”를 설명하는 목적어를 추가하듯이 당신을 일곱 가지의 ‘신적神的 자기 계시’문으로 계시하신다. 요한복음에 수록되는 이러한 내용은 “나는 생명의 빵이다.”(요한 6,35.48)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8,12;9,5) “나는 양들의 문이다.”(요한 10,7) “나는 착한 목자다.”(요한 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한 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나는 참포도나무요.”(요한 15,1) 등이다.
아무튼, 하느님께서 몸소 “I AM”이라 하신 것에 근거하여 “하느님”의 이름을 두고, “있는 나”, “야훼”, “I AM”, “LORD”이라 할 때 이는 적어도 다음에 열거하는 10가지 정도를 의미한다.
1. 하느님은 시작이 없으신 분이다. 애들이 ‘하느님은 누가 만들었어요?’라고 물을 때 슬기로운 부모들은 ‘하느님은 아무도 만들지 않았단다. 하느님은 예나 이제나, 그리고 앞으로도 그저 존재하시는 분이다. 시작이 없으신 분이시다.’라고 답한다.
2. 하느님은 결코 끝남이 없으신 분이시다. 하느님은 존재 자체이시다. 시간을 넘어선 분이시다. 유한의 존재이실 수 없다. 끝이 있을 수 없는 분이시다.
3. 하느님께서는 절대적 실재이시다. 그분 이전에는 실재가 없었으며, 그분께서 원하지 않으시면 그분밖에서도 실재가 없다. 그분께서는 영원이시다. 한곳에 머무르시는 법이 없고, 우주에서까지도 그러하시며, 결코 비움이 없으시다.
4. 하느님께서는 완전한 독립이시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존재하실 뿐, 존재를 위하여 조력을 받거나 조언을 받으실 필요가 없으시며 그 무엇에도 의존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홀로 거룩하신 분이시다.
5. 하느님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께 달려 있다. 하느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온 우주마저도 전적으로 2차적이다. 우주 역시 하느님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고, 존재하라고 결정하신 하느님의 결정에 따라 순간순간 존재한다.
6. 감히 하느님과 견준다면 우주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주는 천둥소리에 따라붙는 메아리처럼 절대적이고 완전히 독립적인 실재의 그림자요 의존적이며 종속적인 실재일 뿐이다. 세상과 은하계를 통해 우리가 지니게 된 놀라움은 감히 하느님께 견주어 아무것도 아니다.
7. 하느님께서는 끊임이 없으시다.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항상 같으신 분이시다. 하느님은 항구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있는 나”이시므로 되어가시는 분이 아니고 원치 않으시면 그 무엇도 되지 않으신다.
8. 하느님은 진眞, 선善, 미美의 절대적 기준이시다. 어떤 것이 옳은지를 알기 위해 조회해 볼 기준서가 없고,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볼 연감도 없다. 어떤 것이 뛰어나고 더 아름다운지 결정할 기준도 없다. 하느님 자신만이 선하심과 진리와 아름다움의 절대적 기준이시다.
9.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기뻐하시는 일을 하시며 하느님의 일은 항상 옳고 아름다우며 진리에 부합한다. 하느님 밖에 있는 모든 실재는 절대 실재이신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설계하시며 다스리신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당신 뜻에서 비롯되지 않은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로우시다.
10. 하느님은 우주 안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소중한 실재이시며 인격이시다. 그러므로 온 우주를 포함하여 모든 다른 실재들보다도 더 많은 관심과 찬미와 즐거움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달리 말하면, 이러한 내용은 단일單一(혼합되지 않으신 분), 유일唯一(오직 한 분), 무시무종無始無終(시작도 끝도 없으신 분), 무한, 영원, 불변, 독립(주권, 자존自存), 전지전능全知全能, 편재遍在(계시지 않으시는 곳이 없음), 불가분不可分(나뉨이 없으신 분), 영원한 찬미를 받으실 분 등으로 표현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공식 교리서라 할 수 있는 천주교 요리문답은 하느님이 누구이신가 하는 물음으로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답으로 다음을 제시한다.
1. 천주는 만선만덕萬善萬德을 갖추신 순전한 신神이요, 만물을 창조創造하신 자시니라.
2. 천주 영원하시니, 비롯함과 마침도 없고 변하심도 없느니라.
3. 천주 전지하시니, 모르시는 것이 없어 사람의 은밀한 생각까지 다 아시느니라.
4. 천주 무량無量하시니, 아니 계신 데 없어 곳곳에 다 계시느니라.
5. 천주 공의公義하시니, 착한 이를 상 주시고 악한 이를 벌하시느니라.
6. 천주 전능全能하시니, 하고자 하시는 바는 무엇이든 다 하시느니라.
7. 천주 전선全善하시니, 모든 선의 근원이시오,
또한 우리의 기구祈求를 즐겨 들어 주시느니라.
8. 천주 이 세상 환난 병고를 막지 않으심은
세상 사람에게 죄를 보속補贖하며, 공功을 세울 기회를 주시려 하심이니라.
9. 천주 인자仁慈하시니, 자기 죄를 통회하는 자는 용서하시느니라.
요한 사도는 이 모두를 종합하여 “하느님은 사랑”(1요한 4,8.16)이시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