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에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를 마감하고, 성탄의 화려한 장식을 모두 거둔 다음, 사순 시기까지 특별한 대축일이 없이 연중 시기를 지낸다. 옛 전통에서는 공현 대축일 전례 안에서 적절한 순간에 성삼일과 부활절을 예고하는 관습이 있기도 했다.
성탄 시기를 마감하는 주님 세례 축일의 전례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마태 3,13.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마르 1,9)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루카 3,21)라고 기록하면서 ‘가, 나, 다’해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셨다는 사실과 함께, 세례자 요한과 하늘의 소리로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에 관해 ‘땅과 하늘의 소리’로 이루어진 이중의 증언을 남긴다. 예수님의 공생활이 그렇게 시작하면서 하늘 나라가 그렇게 열린다.
하느님께서 인간 가운데에, 조물주께서 피조물 가운데에,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 많은 인간이 세례를 받으려고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 가운데에 당신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신다. 그리고 인간 죄의 비참함과 가련함을 씻어내는 물에 당신 몸을 담그시고 세례를 받으신 다음 인간의 죄를 모두 짊어지시고 물에서 올라오신다. 그때 하늘이 갈라지고 찢어지며 열린다. 죄로 상처 입은 인간과 하느님의 아드님 간 첫 만남이 그렇게 이루어진다.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시작된 구세주 예수님의 긴 여정은 마침내 십자가의 죽음으로 성전의 휘장이 “찢어질 때”(참조. 마태 27,51 마르 15,38 루카 23,45) 온전히 완성된다. 참으로 그윽한 신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