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Marc Chagall, “The prophet Isaia”, 1968, Musée National Marc Chagall, Nizza, Francia

다른 복음사가들이 제자들의 부르심을 예수님 공생활의 첫 장면으로 삼는 것에 비겨 루카는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의 장면을 고향 나자렛의 회당으로 기술한다. 여기에는 루카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루카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위해 일단 당신이 살았던 나자렛이라는 곳으로 가신다. 그리고 회당에 들어가 예언서를 받아들고 한 대목을 읽으신 다음, 예언이 지금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음을 장엄하게 선포하시고, 원래 참예언자이시므로 굳이 예언자가 되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 예언자가 되신다. 그 뒤 놀라움과 찬탄으로 주시하던 군중들은 이내 화가 잔뜩 나서 예수님을 벼랑 끝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가로질러 총총히 당신의 갈 길을 가시고, 이어 변두리 갈릴래아로 향하신다.(참조. 루카 4,16-30 마태 13,54-58 마르 6,1-6)

이처럼 루카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 모두가 예수님처럼 어렵고 힘들더라도 예언자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예언자는 주변을 깨운다.…예언자는 자신이 속해 살아가는 역사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을 해석하는 능력을 하느님에게서 받는다. 예언자는 밤을 지새우며 여명이 밝아오는 때를 아는 파수꾼과 같다.(이사 21,11-12 참조) 예언자는 하느님을 알아보고 그의 형제자매인 사람들도 알아본다. 예언자는 식별의 능력이 있고 죄악과 불의를 고발할 줄 안다. 예언자는 어디에도 매여 있지 않은 자유인이기 때문이다. 예언자는 하느님 이외에 그 누구도 주인으로 여겨 응답해서도 안 되며, 하느님 이외에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예언자는 으레 가난한 이들과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선다. 하느님께서 친히 그들 편이시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엘리야와 요나처럼 예언자도 종종 달아나려는 유혹, 예언자의 임무에서 벗어나려는 유혹을 받는다. 이는 예언자의 의무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며, 때로는 지치고 눈앞의 결과가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언자는 결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그러하셨듯이 자기에게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예레 1,8)』(교황 프란치스코, ‘봉헌생활의 해를 맞이하여 모든 봉헌 생활자들에게 보내는 교서’, 2015) 하며 확신을 주시는 것을 기억하고, 이를 마음에 새겨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가 예언자이다.(201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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