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잘 오셨습니다!
저는 여러분 수도회의 제26차 총회를 위해 여기 모이신 총장님과 여러분 모두에게 인사드립니다.
1854년 12월 8일 쥴 슈발리에Jules Chevalier 신부님(1824~1907년)께서는 프랑스 이수둔Issudun에서 ‘예수 성심 전교 수도회(i Missionari del Sacro Cuore di Gesù)’를 설립하셨고, 그 뒤를 이어 ‘예수 성심 어머니 딸회(Figlie di Nostra Signora del Sacro Cuore)’, ‘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Suore Missionarie del Sacro Cuore)’, ‘예수 성심 평신도회(Laici della Famiglia Chevalier)’들이 생겨났습니다.
창립자께서는 처음부터 선교사들을 생각하셨고,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을 알리고 사람들로부터 사랑의 응답을 얻기 위하여 헌신하셨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여러분들이 엠마오 복음 대목(루카 24,13-35)을 여러분 총회 여정의 길잡이로 선택한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 복음으로부터 여러분 수도회 카리스마의 정체성과 선교적 헌신에 관하여 성찰하기 위한 기본적인 세 가지 태도를 도출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 형제적인 나눔 안에서 복음의 메시지를 심화해야 한다는 것이며, 셋째, 그 내용을 선교의 기쁨으로 모든 이에게 선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복음을 통해서, 곧 그분의 삶을 묵상함으로써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Knowing the Heart of Jesus) 사실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오늘까지도 우리의 여행을 동반하고 계십니다.(참조. 루카 24,25-27) 슈발리에 신부님께서는 복음을 ‘성심의 책’이라고 부르시기를 좋아하셨으며, 구세주께서 온갖 가난이 당신의 사랑을 얻도록 하신 바를 관상하도록 모든 이를 초대하셨습니다. 예수 성심의 부드러운 사랑이 작고 여린 사람들, 가난한 이들, 고통받는 이들, 죄인들, 나아가 인간의 비참함에 부어지는 것을 행복해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면서 성경을 설명해주신 것은 이론적인 것이 아니며, 당신께서 말씀하신 바를 당신 몸소 이루신 분의 직접적인 증언이었습니다. 성부 아버지와 형제들을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당신 몸에 못이 박히는 상처를 받으시기까지, 순수한 사랑의 당신 심장이 꿰찔리기까지 사랑하신 분의 직접적인 증언이었습니다. 빵을 쪼개어 나누시면서 당신을 알아보게 하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생명을 내놓으시어 죽음을 정복하신 분이시며, 당신의 신적인 마음과 인간적인 마음으로 사람들을 한없이 사랑함으로써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 주신 분이시어서 제자들에게 “속에서 마음이 타오르도록”(루카 24,32) 말씀하실 줄 알았던 분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성심의 우리 어머니(Nostra Signora del Sacro Cuore)’라고 공경하는 성모님처럼, 당신 아드님의 마음을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며”(루카 2,19) 우리에게 당신 아드님의 마음을 보여 줄 줄 아시는 성모님처럼, 복음 안에서 주님의 무한한 자비를 관상하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여러분이 복음을 통해서, 곧 그분의 삶을 묵상함으로써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고 초대하는 첫 번째 초대입니다. 이로써 침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강력한 체험이 여정의 빛이 되려면 나눔의 풍요로움을 통하여 나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형제적인 나눔 안에서 복음의 메시지를 심화해야 한다(Fraternal sharing)고 말씀드린 두 번째 요소입니다. 엠마오에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본 체험 뒤에 자신들이 체험한 놀라움을 “서로 (묻고) 말하였습니다.”(루카 24,32) 이는 주님을 만날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놀라움을 서로에게 선물하라는 초대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 두 제자는 “침통한 표정을 한 채”(루카 24,17) 그간의 실패와 낙담을 서로 주고받았습니다. 그러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슈발리에 신부님의 생애에도 이러한 나눔이 중요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신학교에서 당신의 열정과 꿈을 알만한 몇몇 친구들, ‘성심의 기사들(기사들cavalieri=가치를 아는 이들chevaliers)’이라고 부르는 친구들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그 친구 중 하나를 다시 만났을 때 여전히 예전과 같은 열정으로 고무되면서 수도회 설립을 시작하기 위한 신호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총회의 작업을 통하여 여러분 공동체 일상의 식별처럼 여러분들의 그리스도, 말씀 안에서, 성사와 삶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에 관한 형제적인 나눔에 모든 것의 기초를 놓도록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그렇게 하면 가장 무거운 문제들까지도 건설적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사이의 나눔!
선교의 기쁨으로 모든 이에게 선포(Joyful proclamation)해야 한다는 마지막 태도를 봅시다. 엠마오의 제자들은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 주님을 알아보게 된 일을 열한 제자와 동료들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루카 24,33-35) 여러분들은 ‘자아로부터 생태로(dall’ego all’eco), 즉 공동의 집 자체로부터 가족, 공동체, 피조물로’라는 말을 총회 여정의 표어로 삼았습니다. 강력한 표현이자 여러분의 미래를 위한 헌신, 특별히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새로운 형태의 사목에 개방해야 하는 것에 관한 식별입니다. 각종 도전이 산재합니다. 여러분 수도회의 순교자들, 여러분이 이미 모든 대륙에 나가 일하도록 부르심을 받아 일하고 있는 애덕의 환경, 가난한 이들, 이민자들, 많은 비참함과 불의가 자행되고 있는 세상이 시급하게 던지는 의문들이 이미 이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에 맞서 여러분 설립자께서 “여러분을 통해 그분께서 사랑하시도록 허용하고, 여러분의 선함을 통하여 그분의 자비를 나타낼 수 있도록 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 마음의 사랑이 여러분에게 개입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예를 들어 여러분의 설립자께서 아주 제한된 힘에도 불구하고 멜라네시아와 미크로네시아 선교를 받아들이셨던 것처럼, 거역할 수 없는 성심의 부드러우심이 형성하고, 수정하시며, 필요하다면 여러분의 계획과 구상을 뒤집어엎기까지 하시도록 성심께 내맡겨 용감하게 행동하십시오.
부디 ‘부드러움’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스타일은 가까움(vicinanza=closeness), 자비(compassione=compassion), 부드러움(tenerezza=tenderness)이라는 세 마디 말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이 가까움과 자비, 부드러움은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얻어집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무척 중요합니다. 기도 없이는 작동하지 않고 되지도 않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 여러분의 존재에, 그리고 여러분의 행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열정을 가지고 여러분의 일을 계속하십시오. 개인의 삶과 봉헌 생활을 망쳐버리고 마는 벌레 같은 슬픔에서 도망치십시오. 회개로 이끄는 좋은 슬픔이 아니라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슬픔 말입니다. 이는 또 다른 것이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일상의 슬픔은 삶을 망칩니다. 마음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도록 부탁드립니다. 저는 기도가 매우 많이 필요합니다. 이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교황 프란치스코, 예수 성심 전교 수도회 제26차 세계 총회 참석자들을 위하여, 로마, 2023년 10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