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帚가 빗자루의 상형이라는 것은 허구고, 본래 새를 그린 글자가 조鳥-추隹-추帚로 점차 추상화가 진행돼 만들어진 형태다.(이재황의 한자 이야기, 고전문화 연구가, 2008.03.21, 프레시안 연재물에서)』라는 의견이 있지만, 대체로 ‘비/빗자루 추帚’는 집 안을 청소하는 도구인 빗자루가 거꾸로 서 있는 형상이라 한다. 위쪽 ⺕ 부분이 물건을 쓸어 내는 부분이고, 아래 巾 부분이 손잡이이며, 중간의 冖 부분은 끈으로 묶은 모양 또는 걸개라고 보는 것이다. 빗자루의 솔에 해당하는 글자 위의 ‘돼지머리(고슴도치의 머리) 계彐’ 아래에 있는 ‘수건 건巾’ 그리고 함께 글자를 이루는 ‘멀 경冂(경계나 둘레)’의 합자로 보아서 ‘추帚’라는 글자를 그 모양 그대로, 그 뜻 그대로 어떤 일정 테두리 내를 빗자루로 쓸고 수건에 물 적셔 깨끗이 닦는 것이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추帚’라는 글자 앞에 ‘여자 녀/여女’를 붙인 ‘며느리/아내 부婦’라는 글자를 놓고 빗대어 여자는 시집올 때 빗자루를 가지고 와야만 한다거나, 여자는 집안 마당이나 쓸고 청소나 하는 사람이라는 우스개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남성 본위의 우스개일 뿐이다. ‘추帚’라는 글자가 쓸고 닦아 치장하고 깨끗하게 하여 고운 상태라는 의미라면 ‘부婦’라는 글자는 ‘가장 곱고 예쁜 여자가 나의 아내’라는 뜻도 된다.
원래 ‘비/빗자루 추帚’가 여성의 전용물이었던 것만큼은 아마도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집 안을 청소하는 여인이 아니라, 정치·종교·민족이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고대의 제례 의식을 앞두고 신에게 바치는 제단을 깨끗이 청소하는 신성한 물건인 작은 빗자루에 술을 묻혀 쓸고 털어서 신에게 바치는 향기로운 제단을 장식하고 꾸미는 신성한 직무의 여인이라면 얘기는 아주 달라진다. 그렇다고 집 안을 청소하는 것이 제단을 청소하는 것보다 하찮은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빗자루라면 뜰이나 마당을 쓰는 큰 대빗자루를 연상하게 마련이지만, 작은 공간을 쓰는 빗자루도 빗자루이다. 그래서 帚와 같은 음과 뜻을 갖는 같은 글자들로서 菷, 箒를 쓰기도 한다. 앞 글자는 풀을 묶어 만든 빗자루여서 ‘풀 초艹’를 올렸고, 뒷글자는 싸릿대 같은 것으로 만든 빗자루여서 ‘대 죽竹’을 올렸다. ‘비/빗자루 추帚’ 앞에 ‘손 수扌’를 붙이면 ‘청소淸掃(맑을 청, 쓸 소)하다’ 할 때의 ‘쓸 소掃’가 된다.
괜히,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마음이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가 있다. 무의식중에 내면의 불안이 외양의 나를 어수선하게 만드는 것이다. 존재론적인 불안이고 숨겨진 죄들 탓일 것이다. 이럴 때는 왜 그러는가를 수십 번 되물어보다가 그마저 안 되겠다 싶으면 몇 평 안 되는 방을 이리저리 청소한다. 먼지도 닦아보고 마시던 찻잔도 닦아보고, 책상도 닦아보고 머리카락도 밀어본다. 나는 조그만 방에서 진공청소기가 너무 요란하고 다소 겁이 나서 바닥은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부직포 밀대로 미는 것을 선호한다. 인간만이 부질없고 쓸데없는 쓰레기를 생산하고 축적하는 습성을 지녔다. 그래서 빗자루로 대표되는 ‘청소’는 사람을 차분하게 한다.
옛날 우리 집엔 닳고 닳아서 어디에도 쓸 수 없는 빗자루지만 곱게 보관했다가 겨울이 오기 전 문풍지와 같은 것을 붙일 때 풀을 바르는 빗자루로 쓰고 물에 빨아 다시 보관하던 몽당 빗자루가 있었다. 曹操(조조)의 아들 曹丕(조비)라는 이가 썼다는 ‘家有敝帚가유폐추 享之千金향지천금’이라는 말이 있다. ‘폐추敝帚(해질/닳아질 폐)’는 말 그대로 닳아빠진 몽당빗자루이니 이를 천금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조비는 문인들의 조예를 에둘러 비판하며 말했지만, 어찌 되었든 원래 아무것도 아닌 빗자루를 가지고 지상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처럼 생각한다는 말도 되고, 거꾸로 남들이 아무리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도 내게는 애지중지 천금과도 같은 것이라는 말도 된다.
옛사람들이 ‘혜성彗星’이라는 별을 두고 ‘빗자루 별’이라 했다는 내용은 참 재미있다. 『삼국유사 제26대 왕 진평왕眞平王(재위 579∼633년) 때 승려 융천사融天師가 지은 향가 ‘혜성가融天師彗星歌條’에서는 혜성을 ‘길 쓸 별’로 묘사한다. 긴 꼬리를 늘인 혜성을 길을 쓰는 빗자루로 본 것이다.…서양에서도 혜성 중에서 특히 빗자루 모양의 것을 ‘빗자루 별broom star’로 부르기도 한다.…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빠른 것은 ‘혜성’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빗자루 별’이다. 헛간에 있는 빗자루에 마법을 걸어 타고 날아다닌다면, 그것은 바로 혜성을 타고 날아다니는 셈이다. 그 정도 빠르기는 되어야…손오공은 근두운筋斗雲을 타고 단숨에 108,000리를 난다고 하는데, 단숨을 1초라고 하면 1초에 42,400km, 즉 지구 한 바퀴를 돌고도 남는 속도이다.(정창운·이정모, 해리포터 사이언스)』
해리포터를 비롯해 서양 동화에서 마귀할멈이나 요술 할머니는 일반적으로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난다. 애들은 빗자루 타고 놀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다소 낯설지만, 오래전부터 빗자루를 타고 골을 넣는 퀴디치Quidditch라는 게임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팀을 꾸렸으며 월드컵 대회까지 있을 정도라니 말이다. 마귀할멈이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것을 두고 빗자루는 양陽(막대기)과 음陰(솔)의 조화와 균형이니, 아니면 빵을 만들던 여인들이 호밀에 기생하여 생긴 맥각麥角 균 어딘가에서 일종의 환각 작용을 하는 요소들을 발견하였고, 이를 연고로 만들어 사타구니나 겨드랑이 같은 예민한 부분의 피부를 통해 흡수하느라 빗자루 손잡이에 그 연고를 묻혀 흡수하던 것이라든지 하는 여러 설명들이 있지만(참고. ‘Why do witches ride brooms’라는 주제로 Google 검색), 아무튼 빗자루는 청소나 제단 장식을 떠나 놀이이고 환상이며 재미이다.
그렇지만 성경의 빗자루는 엄마의 맴매처럼 무섭다. “나는 또 그곳을 고슴도치의 차지로, 물웅덩이로 만들고 그곳을 멸망의 빗자루로 쓸어버리리라.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이사 14,23) “당신께서 그들을 쓸어 내시면 그들은 아침 잠과도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도 같습니다.”(시편 90,5) “나는 모든 것을 땅 위에서 말끔히 쓸어버리리라. 주님의 말씀이다.”(스바 1,2) 하는 말들이 있기 때문이다.(20171207 *이미지-영문 구글)
아주 어릴 적 학교 다녀오면서 수수알갱이가 꽉 차있는 삶은 수수대를 사서 알갱이를 종일 까 먹던 기억이 있다. 빗자루라니 수수대로 만든 빗자루와 함께 그 때의 작은 알갱이의 찰진 맛이 떠오른다. 지금은 껍질을 까먹는 고생을 하지도 않아도 원하는 양만큼 한 줌 씻어 밥을 지을 수 있는 그 편리함이 있지만 그때의 찰진 맛은 찾을 수가 없다. 또 언젠가, 친구 집에서 친구의 할머님이 손수 오랫동안 사용한, 두 손으로 잡아 힘들게 눌러야 국수발이 아래로 삐져나오는 작은 나무통에서 수수 반죽 덩어리를 조금씩 넣어가며 그 더운 여름에 가는 국수를 뽑아 고등어 카레를 얹어 온 가족과 둘러 앉아 식사를 한 추억도 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나무통에서 힘들게 눌러가며 뽑은 수수 국수, 어렵게 까먹었던 수수알, 빗자루는 나에게 그런 추억이 우선 담겼다.
“당신께서 그들을 쓸어 내시면 그들은 아침 잠과도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도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시편이라 묵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