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 11,17) 한다. 인생은 생명과 죽음,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열정과 절망, 결국 춤과 곡哭이다. 두 극極 사이의 어디쯤엔가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이도 저도 아닌 “미지근”(참조. 묵시 3,16)은 무기력이거나 부정적인 극으로 기울어진 냉소이다. 냉소는 게으름에 닿는다. 기쁨의 반대말은 슬픔이나 비애가 아니다. 기쁨의 반대말은 바로 냉소이다.
냉소적인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다고 믿어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사람.
냉소적인 사람은 뭔가가 더더욱 악화되어 가고만 있다고 믿으면서 인상만 써대는 사람.
냉소적인 사람은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도 꽃의 향기는 고사하고 장례식부터 연상하는 사람.
냉소적인 사람은 세상이 은혜롭고 또 생명이 감사한 것이라는 사실을 믿을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
냉소적인 사람은 용서와 사랑을 주고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
냉소적인 사람은 희망할 이유도 또 변화할 이유도 없는 사람.
냉소적인 사람은 최악의 상황에서조차도 아름다운 것을 도출해 내는 기적같은 사람들을 질투하고 못마땅해하는 사람.
냉소적인 사람은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성장을 위한 작은 계기를 마련해 가는 은혜로운 사람들을 비꼬고 조롱하는 사람.
냉소적인 사람은 섣불리 주변을 판단하고, 자기가 할 수 있고 또 알고 있는 것조차도 하기 싫어 짐짓 딴청을 부려대기 일쑤인 사람.
냉소적인 사람은 너무나도 딱딱해져 버려서 더는 자신에게 미소와 웃음을 지어줄 수 없는 사람.
냉소적인 사람은 더는 꿈을 꿀 줄 모르는 사람.
냉소적인 사람은 자신도 놀라워할 줄을 모르는 까닭에 주변에 전혀 새롭지도 또 놀랍지도 못한 사람.
냉소적인 사람은 누군가가 미쳤다고 손가락질할까 봐 두려워 인생의 기쁨이라는 마술을 잃어버린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