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굽히시어…땅에 무엇인가 쓰셨다”(요한 8,6.8)

요한복음만이 전해주는 우리가 잘 아는 대목 중에 ‘간음하다 잡힌 여자’(요한 8,1-11)라는 소제목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이 복음은 여자를 고발하며 돌을 던지려는 이들에게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하시고, 홀로 남은 여인에게는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하신 예수님의 말씀들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이 복음 대목에는 특이하게 예수님께서 “몸을 굽히시어”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셨다는 구절이 두 번이나 등장한다. 4복음서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많은 말씀으로 가르침을 주셨지만, 직접 무엇인가를 쓰셨다는 사건은 이 사건뿐이다.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왜’ 몸을 굽히셨고, 땅에 ‘무엇’을 쓰신 것일까? 복음 본문 자체가 그 내용을 직접 밝혀주지 않는 까닭에 많은 성인이나 학자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동작과 쓰신 내용을 두고 무척 궁금해했으며 이를 깊이 묵상해왔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1) 예수님께서 몸을 굽히신 이유: 여인을 고발하려는 이들이나 여인,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이르기까지 모두를 차별 없이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고발하는 이들을 쳐다보시지도 않고 눈을 돌려 몸을 땅으로 굽히신 것은 고발하는 이들이 달아날 기회를 주시고자 하심이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고, 또한 누군가를 고발하려 할 때는 먼저 자기 자신에게로 몸을 돌려 자신을 보는 겸손한 자기 성찰의 태도가 먼저라는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서였을 수 있다:
「고발자들을 단죄한 예수님의 행동: 가혹한 재판관으로서가 아니라 길 잃은 이들을 살리시려고 구원자로서 오신 분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보기 싫다고 하시는 듯 그들에게서 돌아서셨습니다. 이것은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 행동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너희 스스로 죄인인 너희가 이 죄인을 내게 데려왔구나. 내가 죄를 단죄해야 한다는 게 너희 생각이라면, 나는 너희부터 단죄하겠다.’(아우구스티누스, 교부들의 성경 주해, 신약성경Ⅴ, 분도, 2013년, 431쪽)」
「겸손한 자기 성찰: 인간의 보편적 행동 양식을 고려할 때, 주님께서 당신을 시험하려는 파렴치한 자들 앞에서 몸을 굽혀 땅에 무엇인가를 쓰신 것은 당신의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림으로써 그들에게 달아날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당신의 대답에 깜짝 놀란 터라, 또 다른 것을 묻기보다 빨리 자리를 뜨고 싶어 하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 비유적으로 말하면, 주님께서 당신의 뜻을 밝히기 전과 뒤에 몸을 굽혀 땅에 무엇인가를 쓰신 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훈계입니다.
죄지은 이웃을 꾸짖기 전에, 또 걸맞은 징계를 가한 뒤에도 우리는 겸손하게 자기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꾸짖은 [이웃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며 다른 잘못도 저지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살인자를 죄인이라고 공개적으로 단죄하는 사람들이, 드러나지 않게 남을 해치는 더 나쁜 악인 미움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간음한 이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정숙함을 제 자랑하는 교만이라는 병은 무시하곤 합니다. 술주정뱅이를 단죄하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좀먹어 들어가는 시샘이라는 독은 보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이런 위험들에서 우리를 구해 줄 수 있는 치료제가 무엇이겠습니까? 죄인들을 보면 곧바로 몸을 굽히시는 – 하느님의 은혜가 우리를 지켜 주지 않았다면 그와 똑같은 처지에 떨어졌을 나약한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직시하는 –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도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씁시다. 우리도 복된 욥과 함께 ‘내 양심은 내 생애 어떤 날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리라’”(욥 27,6)라고 말할 수 있는지 공정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나무란다면, 우리 마음보다 훨씬 뛰어나신 하느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합시다.(성 베다, 교부들의 성경 주해, 신약성경Ⅴ, 분도, 2013년, 433쪽)」
2) 예수님께서 땅바닥에 쓰신 내용: 예수님께서 땅바닥에 쓰신 내용을 궁금해하던 이들의 생각들을 모아 정리하면 이는 다음과 같다.
① 고발자들의 죄목 – 여자를 고발하며 돌로 치려던 이들의 은밀한 죄를 하나씩 땅에 적으셨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이러한 기록을 지켜본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 하나둘 떠나갔다는 맥락과 연결되기도 한다: 「(성경의) 다른 사본에 ‘예수께서는 … 그들 각 개인의 죄(목)들을 쓰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정양모 신부,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494쪽)」 「“당신에게서 돌아선 자는 땅에 새겨지리이다.”(예레 17,13)라는 예언자의 말도 있듯이, 지금 여자를 고발하는 자들과 또한 죽을 운명으로 태어난 모든 이의 죄를 땅에 기록하고 계셨던 것이 분명합니다.(히에로니무스, 교부들의 성경 주해, 신약성경Ⅴ, 431쪽)」
② 탈출기의 재현 – 하느님께서 손가락으로 직접 십계명 판을 쓰셨다는 구약의 기록(참조. 탈출 31,18)과 연결하여,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권위로 새로운 법(자비, 사랑)을 세우고 계시는 동작이라고 보면서 교부들은 다음과 같은 묵상을 남기기도 한다: 「과거에 당신 손가락, 곧 성령의 작용으로 돌에다 율법의 십계명을 쓰신 분이 당신임을 알려 주시려는 뜻이었습니다.(성 베다)」 「땅에다 글을 쓰신 행동은 예전처럼 아무것도 맺지 못하는 돌이 아니라 열매를 내는 땅에 율법이 쓰일 때가 왔음을 나타내는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성 아우구스티누스)」 「이 관대함이 나타내는 것은 무엇입니까? 은총입니다. 저 완고함이 나타내는 것은 무엇입니까? 돌에 쓰인 율법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지금 땅에다가 당신 손가락으로 무엇인가 쓰시는 이유입니다. 이 땅은 그분께서 곡식을 거두실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돌에 뿌려진 씨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뿌리를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도 지금도 쓰는 것은 하느님의 손가락입니다. 율법을 쓴 것도 하느님의 손가락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것을 쓰는 하느님의 손가락은 성령입니다.(성 아우구스티누스, 교부들의 성경 주해, 신약성경Ⅴ, 432쪽)」
③ 예레미야서의 예언인 “당신을 저버린 자는 누구나 수치를 당하고 당신에게서 돌아선 자는 땅에 새겨지리이다.”(예레 17,13)라는 구절의 실현으로 보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간이 죄인임을 일깨우시면서 하느님만이 심판하실 수 있으니 하느님의 심판에 맡기도록 지시하시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행동은 고발하는 이들과 주변 사람들이 깨닫도록 보여준 예언자적 표시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이 행동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먼저 표시를 보여 주었고(6ㄴ절), 그 표시를 말로써 설명해 준 다음(7절)에 다시 표시를 보여줌으로써 좀더 분명한 의미를 드러낸 것이다.(정양모, 위 같은 책 같은 곳)」
남을 고발하고 판단하려는 유혹에 빠진 나에게 몸소 “몸을 굽혀” 다가오시고, 몸소 당신 손가락으로 내 마음과 나의 오늘에 새기고자 하시는 그분의 말씀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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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읽기: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요한 8,11) http://benjikim.com/%eb%82%98%eb%8f%84-%eb%84%88%eb%a5%bc-%eb%8b%a8%ec%a3%84%ed%95%98%ec%a7%80-%ec%95%8a%eb%8a%94%eb%8b%a4-%ec%9a%94%ed%95%9c-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