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7)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청하여라, 찾아라, 두드려라’라는 말씀들을 영어 번역에서는 ‘ask, seek, knock’라 하므로 앞 글자를 따서 ‘ASK’로 기억하기도 한다. 이 기억법은 세 동작의 순서를 간결하게 붙들도록 해 준다.(*혹자는 영어의 마지막 글자만을 따서 ‘3K’라 하는 경우도 보았다)
청하고, 찾고, 두드린다는 인간의 행위는 내가 완결된 존재가 아님을 인정하는 일이 먼저이다. 나 밖에, 내가 의지하고 향해야 할 어떤 분이 계심을 전제하는 행위이다. 어쩌면 이것이 이 말씀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청한다는 것은 나의 부족을 인정하는 겸손이다. 나에게 무엇이 참으로 필요한지 식별하는 일이며, 동시에 하느님께서 지금 내 삶 안에서 무엇을 바라시는지도 귀 기울여 듣는 일이다. 내가 청하기에 앞서, 하느님께서는 이미 나에게 애타게 손을 내밀고 계신다.
찾는다는 것은 아직 보지 못한 것을 향해 열려있는 태도이다. 우리는 종종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자리에서, 생각과는 다른 모습으로 은총을 만나곤 한다. 내가 찾기 전에 하느님께서는 잃은 양을 찾는 목자처럼 구석구석 헤집고 다니시며 나를 찾고 계신다.
두드린다는 것은 문 너머에 누군가 계심을 믿는 행위이다. 내가 열려고 애쓰는 문 앞에서 자칫 당겨 열리는 문을 밀고 있지나 않은지도 모른다. 하느님께서 먼저 내 이름을 애타게 부르시며 문 너머에서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참조. 묵시 3,20)
청하고, 찾으며, 두드리는 삶은 너그럽고, 후하게 “받음, 얻음, 열림”에 대한 감사로 이어진다. 그리고 나 또한 너그럽고 후한 이가 되려는 결심이 된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 8,19) 한 그대로 나와 너, 그리고 온갖 세상이 청하고, 찾으며, 두드린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청함과 찾음, 그리고 두드림에 늦장을 부리시는 것같은 때가 있는 까닭을 우리의 갈망을 당신께서 원하시는 만큼 넓히시기를(확장) 바라시기 때문이며, 당신께서 원하시는 만큼의 은총 그릇이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참조. 「서간 130」)
우리는 왜 청하기를 주저하고, 찾기를 멈추며, 두드리기를 포기할까?
항상 과분하게 선하신 하느님이시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마태 7,11) 하셨다.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부르는 그분의 자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