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아나코레시스(ἀναχώρησις)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물러나신 예수님의 거룩한 이동

마태 4,12에서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할 때, “물러가셨다”는 성경의 언어인 희랍어로 ἀνεχώρησεν(아네코레센, anechōrēsen, 3인칭 단수 과거 직설법)이다. 아네코레센은 물러남, 은둔, 회피, 철수 등을 뜻하는 ‘아나코레오(anachóreó=to withdraw, to depart, to go away)’라는 동사에서 파생되는데, 신약성경에서 이러한 뜻을 지닌 말이 등장하는 곳은 마태 2,12.13.14,22;4,12;9,24;12,15;14,13;15,21;27,5 마르 3,7 요한 6,15 사도 23,19;26,31 등 대략 14회이며, 특히 마태오 복음에서는 위협이나 전환의 순간에 이루어지는 의미 있는 이동을 가리키는 데 자주 사용된다.

성경에서 이 말은 어떤 상황이나 누군가를 피해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목적이나 결단을 위해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서 벗어나 어딘가로 물러나 떠나가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훗날 이 말은 교회의 전통 안에서 숭고한 영적 목적을 위해 세속을 떠나 오직 하느님만을 생각하며 살고자 했던 3~4세기경 이집트나 시리아 지역의 사막 교부들이나 은수자·은둔자(영어. anchorite)를 가리키는 말이 되기도 하였다. 은수자들에게 이러한 삶은 외딴곳으로 떠나가서 조용히 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유혹과 자기 안의 어둠(악마)과 싸우기 위해서 세상으로부터 ‘분리(separazione)’되고자 함이었고 ‘떠남’이었으며, 전략적 후퇴이자 영적 훈련의 과정이었다.

스승인 요한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이 갈릴래아로 물러나신 예수님의 ‘아나코레시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전략적 전환이자 새로운 사명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였으며, 구약의 예언(이사 8-9장)을 성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장소를 옮긴 ‘거룩한 이동’이었다. 또한 당신께서 이루실 고통스러운 현실(세례자 요한의 투옥)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고통을 직면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내면으로 침잠하고 내면의 힘을 모으기 위해 장소를 이동하는 결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예수님은 성장의 자리와 가족의 보호에서 벗어나 자신을 분리하고, 갈릴래아로 물러나시어,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회개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온갖 아픈 이들을 낫게 하시고, ‘어부들’(마태 4,18)을 부르기 시작하실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익숙함으로부터 낯선 것으로 전환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선발하신 제자들 또한 당신께로부터 분리, 떠남을 배워 “그물과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마태 4,20.22)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실 것이었다. 그리고 먼 훗날 부활하시어 여성 제자들과 첫 번째로 만나실 때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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