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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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깨어 있어라”(마태 24,42;25,13;26,38 마르13,35.37;14,34) 하고 명하셨다. 또한 “깨어 기도하여라”(마태 26,41 마르 14,38 루카 21,36) 하시며, “깨어 지켜라”(마르 13,33)고도 하셨다. 제자들이 깨어 있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시기도 하셨고(마태 26,40 마르 14,37), 깨어 있는 종들의 행복을(루카 12,37)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이렇게 반복하여 “깨어 있어라” 하신 까닭은 문맥에 따라 여러 층위로 드러난다. 첫째, 주인이 언제 올지 알 수 없기에(마태 24,42 마르 13,33.35), 그리고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마태 25,13)이다. 이는 종말론적 깨어 있음이다. 둘째, 겟세마니 동산에서 주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마태 26,38)이라 하시며, 당신의 고뇌 안에 제자들이 함께 머물러 줄 동반의 깨어 있음을 청하신다. 셋째, 주님께서 “깨어 기도하여라”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마태 26,41 마르 14,38) 하신 것은 유혹과 악의 계략에 대비하는 영적 깨어 있음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장차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게”(루카 21,36) 하려는 마음으로 기도의 깨어 있음을 당부하셨다.

성경 안에서 “깨어 있음”은 이렇게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태도, 유혹을 식별하는 정신, 인간의 우둔함, 그리고 주님 앞에 서야 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책임, 곧 “준비”와 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성경의 언어에서 “깨어 있음”에 반대되는 말은 “잠들다”이고 이는 희랍말로 “힙노스(ὕπνος, hypnos)”이다. 영어로 이 말에서 영어의 “hypnotize(최면을 걸다, 매혹시키다)”라는 말이 나온다. 단순한 어원적 언급일 뿐이지만, 성경의 ‘잠’은 주님 제자로서의 본분을 잊게 하는 영적 무감각과 방심이다. 인간을 잠들게 하는 것은 세상의 여러 유혹이고 악마의 간교한 술책이다.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생각해야 할 세 가지 차원은 기도, 식별, 의무와 책임이다.

기도: 깨어 있으려면 “기도”해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물로 타이른 것을 명심하며 늘 깨어 있으십시오.”(사도 20,31) 하고 호소하면서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콜로 4,2)라고 말한다. 기도는 우리를 말씀으로 이끌고, 말씀은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올바르게 읽힌다.

식별: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1테살 5,6)라는 바오로 사도의 권고처럼, 식별은 영혼을 흐리게 하는 것들을 간파하고 유혹을 알아해는 “맑은 정신”이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1베드 5,8)하는 베드로 사도의 말씀처럼, 적대자 악마는 우리 방심의 틈을 노린다.

의무와 책임: 깨어 있음은 단순히 눈만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 허영, 진정한 인간관계의 무능력과 같은 영적 무기력에서 벗어나도록 은총을 청하는 것이다. 또한 병들고 가난하며 소외되고 어려움에 처한 형제자매들을 향한 의무와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려는 실천적 결단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이미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로마 13,11) 하신 바오로 사도의 말씀 그대로 이제는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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