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요한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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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폭력이 들끓는 세상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 요한복음 8장 2-11절에는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전해진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소란이 일었다. 한 무리가 분노에 들끓어 한 여인을 끌고 왔다. 그녀는 간음하다가 잡힌 여인이었다. 그들은 그녀를 예수님 앞에 내던지며 외쳤다. “모세는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녀는 이미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한 인간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사건, 제거해야 할 죄의 상징일 뿐이었다.

이것이 인간이 인간을 잃는 순간이다. 누군가를 ‘우리’ 밖으로 밀어내는 순간, 그를 향한 자비의 마음은 사라지고, 율법은 생명을 지키는 울타리가 아니라 배제와 폭력의 도구로 변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 여인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 “그녀를 돌로 쳐야 합니까?” 그들의 질문은 칼날 같았다. 예수님의 대답 하나로 그분을 고발할 명분이 세워질 수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이분법으로 나누려 한다. 옳거나 그르거나, 우리이거나 적이거나. 그러나 예수님은 그 경계 밖으로 나아가신다. 그분은 서두르지 않으신다. 땅에 몸을 굽히시고, 조용히 글을 쓰신다. 그 침묵은 두려움의 회피가 아니라 사랑의 여백이다.

그분은 무리의 분노 속에서 두려움을, 상처받은 여인의 떨림을 느끼신다. 그분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으신다. 여인을 정죄하려는 무리의 편도, 무리를 미워하는 여인의 편도 아니다. 그분은 폭력의 한가운데에 서서, 모든 이의 고통을 품으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말씀은 번개처럼, 그러나 부드럽게 군중의 내면을 비춘다. 인간의 불완전함이라는 공통점에서 무리의 구성원들과 여인 사이에 인간애(형제애)를 복원하신다. 그분은 뭉쳐 있던 무리를 하나씩 흩으신다. 각자가 자신의 양심 앞에 서게 하신다. 돌을 들었던 손들이 내려온다. 돌아서는 발자국들이 조용히 사라진다.

그제야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말하지 못하고 시체처럼 침묵하고 있던 여인에게 말씀하시며 대화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용서를 통해 죽은 자에게 생명을 되돌려주신다. 그분은 또한 여인을 그녀 자신의 자유로,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정하는 자리로 되돌려 놓으신다.

이제 남은 이는 두 사람 — 죄 없는 분과, 죄로 묶인 여인. 예수님께서 그녀를 바라보신다. “여인아, 너를 고발하던 자들이 어디 있느냐? 아무도 너를 단죄하지 않았느냐?”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그녀는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를 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자유의 자리로 초대받는다. 그 자유는 선택의 자리, 새 삶의 가능성이다. 예수님께서는 돌의 무게를 자비로 바꾸시고, 율법의 문자를 사랑의 영으로 새기신다. 그분의 침묵과 한마디 말씀 사이에서 죽음이 생명으로, 정죄가 용서로 변한다.

오늘, 나에게도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이 말씀은 면죄의 선언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는 부드러운 명령이다. 단죄 대신 생명, 두려움 대신 자유. 그분의 침묵 속에서, 나는 나의 돌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다시 일어선다. 빛 속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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