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복음의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루카 18,9-14)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본질을 가르치신다. 이 말씀 안에서 우리는 기도 같지만 ‘기도가 아닌 기도’, 그리고 ‘참다운 기도’가 무엇인지 성찰하게 된다.
① 말이 많은 기도: 입술만 바쁘다. 이는 하느님을 설득하려는 시도일 수 있으며, 많은 경우 자기 확신을 되뇌는 독백이 되어 하느님이 아니라 자기에게 드리는 기도이다. 주님께서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마태 6,7) 하셨다. 반대는 침묵의 기도이다. 굳이 말로 하기도 전에 하느님께서는 이미 나를 보고 아신다.
② 비교하는 기도: 기도 중에 타인과 자기를 비교하다 보면 우울한 한탄에 머무르거나 하느님께로 향할 시선이 자신의 그림자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고, 결국 자기의 행실과 변명을 나열하게 되고, 시선은 자신에게 머물러 하느님을 보지 못한다. 반대는 겸손한 기도이다. 하느님 앞에 ‘나’를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스스로 자신을 내세우는 자들과 우리 자신을 같은 부류로 여기거나 우리 자신을 그들과 견주어 보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들은 저희끼리 서로 대어 보고 저희끼리 견주어 보고 있으니 분별없는 자들입니다.”(2코린 10,12) 하였다.
③ 자비를 간청하지 않는 기도: 결국 이는 하느님의 은총과 도우심보다는 자기 힘을 믿는 기도로 흐른다. 반대는 은총을 구하는 기도이다. 아버지의 뜻만을 따르고자 하신 주님께서도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요한 5,30; 참조. 요한 8,28) 하셨다. “당신 없이는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는 것이 기도의 본질이다.
④ 죄인임을 느끼지 않는 기도: 하느님 앞에 서 있으면서도 자신의 죄와 한계를 보지 못한다. 빛이신 주님 앞에 자신을 비추기보다 스스로 빛이 되려는 기도가 될 수 있다. 반대는 죄를 뉘우치는 기도이다.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은 늘 엎드려 비는 존재이다. 베드로 사도도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 하였고, 바오로 사도 역시 자신을 “첫째가는 죄인”(1티모 1,15)이라 고백하였다.
⑤ 감사가 없는 기도: 부족함만 탓하다 보면 기도가 아닌 불평불만의 나열이 되기 쉽다. 반대는 감사의 기도이다. 감사하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선물로 보이고, 감사의 제목은 날마다 늘어난다. 주님께서도 늘 감사하셨고, 감사를 드리며 ‘감사의 제사(성체성사)’를 제정하셨고,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필리 4,6) 하였다.
⑥ 분석·평가·토론의 기도: 하느님과의 대화와 만남은 인격적 관계이다. 관계 안에서는 체험이 주어지지만, 대화가 아닌 분석·평가·토론은 하느님을 인격이 아닌 관념이나 개념으로 전락시킨다. 반대는 관계의 기도이다. 사랑의 관계는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 사랑 안에 머물기를 바란다. 주님께서는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요한 15,4) 하셨다.
⑦ 닫힌 마음의 기도: 닫힌 마음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듯하지만, 마음의 문을 닫고 자기 안에만 머문다. 하느님께 말씀드리면서도, 그분의 응답을 들을 마음의 문이 닫혔다. 하느님을 부르지만, 사실은 자신의 결론을 확인하려는 독백이다. 자기 확신의 벽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반대는 열린 마음의 기도이다. 하느님의 뜻이 나의 생각을 넘어설 수 있음을 겸손하게 받아들인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약속된 것을 얻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히브 10,36) 하였다.
참된 기도는 말보다 침묵을, 비교보다 겸손을, 요구보다 감사를, 판단보다 자비를 구한다.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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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가 멀찍이 선 것은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지성소에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죄스러움 때문이었으며, 눈을 들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은 자신이 하염없이 부끄럽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려 유다인들의 전통적인 뉘우침의 표시대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밑에서 군중이 그러했던 것과 같은(참조. 루카 23,48) 회개의 몸짓으로 자기 가슴을 친다.
생떼부리는 기도가 아닌 예수님이 보여준 기도의 모습을 닮을 수 있는 기도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 다시 성찰해 봅니다.
아멘
참된기도가 되도록 알아차리겠습니다.
알고보니
반대로
제멋대로 한 기도들이
많았음을 반성합니다.
감사의 기도를 더 많이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