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복음사가가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 7,13)라고 기록한 것에 루카 복음사가는 한 마디를 더해서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4)라고 한다. 루카 복음사가는 다른 복음사가들과 견주어 볼 때 “힘”이라는 말마디를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한다. 루카 복음사가가 기록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도행전에서도 “힘”이라는 말은 빈번하게 등장한다. 루카 복음사가는 “힘”이라는 말마디를 자주 사용하면서 악마와 세상의 힘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시는 예수님의 “힘”을 강조한다. “힘”이라고 할 때 신약성경의 언어에서는 이를 ‘뒤나미스(δύναμις, dynamis, 영어-power)라고 하는데, 개신교에서는 “권능”이라 번역한다.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루카 12,58)라든가 요한복음에서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라고 우리말 성경에서 똑같은 말로 번역하는 구절들이 있으나, 이때의 ‘힘쓰다’라는 말은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4)라고 할 때와는 다소 다른 말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ἐργασίαν, ergasian, 영어-earnestness’, 곧 앞의 ‘δὸς, dos, 영어-give’라는 말과 합하여 ‘진지하게 합의를 보라’는 뜻이고, 뒤의 요한복음에서는 ‘ἐργάζεσθε, ergazesthe, 영어-work’라는 말과 ‘μένουσαν, menousan, 영어-enduring’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흔들리지 마라’라는 정도의 뜻이 된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라는 문장은 신약성경의 언어로 “Ἀγωνίζεσθε εἰσελθεῖν διὰ τῆς στενῆς θύρας(Agōnizesthe eiselthein dia tēs stenēs thyras)”이다. 말마디들을 순서대로 옮겨볼 때 영어로는 “Strive, to enter in, through, the, narrow, door.”이다. “(너희는) 힘써라”에 해당하는 ‘Ἀγωνίζεσθε(아고니제스테)’라는 말은 ἀγών(아곤agōn, ‘경기’, ‘투쟁’을 뜻함)이라는 어근을 지녔다. 여기에서 영어 단어 agony(고뇌, 투쟁)가 파생된다. 이는 단순히 ‘애써라, 노력하라’ 정도가 아니라, 좀 더 강한 어조로 ‘전력투구하며 싸우다, 목숨 걸고 싸우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교부들도 이에 착안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St. John Chrysostom, 347년경~407년)는 「좁은 문은 고통과 자기 부인否認을 뜻한다. 이것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한다. 경기장에서 싸우듯이, 금욕과 자선을 통해, 그리고 죄와 싸우며 우리는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야 한다.(마태 23,3에 관한 설교)」라고 말하면서 비장한 각오로 단순 노력 이상의 전력투구하는 ‘영적 전투’를 말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 354~430년) 역시 「주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신 것은, 교만한 자들이 꺾이고 겸손한 자들이 들어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넓은 문은 자기를 위해 살려는 사람들에게 열려있고, 좁은 문은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Sermo 112,1)」라고 말하면서 루카 13,24를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하느님께로 향하는 치열한 투쟁으로 해석한다. 특별히 죄의 본질을 ‘incurvatus in se(자기 안으로 굽어지고 휘어진 상태, 결국 자기 안에 자기 스스로 갇힌 상태)’로 설명하는 성인에게 “좁은 문”은 온 힘을 다하여 왜곡된 자기애를 바로잡아(뒤집어 꺾어) 하느님과 이웃에게로 돌려놓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