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를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라고 기록한다. “흙의 먼지”, “생명체”, “생명의 숨”이다.
바오로 사도는 “평화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1테살 5,23)라고 말하면서 “몸과 혼과 영”을 구분한다. 몸은 창세기의 흙먼지이고, 혼은 창세기의 생명체이며, 영은 창세기의 생명의 숨이다.
“나”는 “몸, 혼, 영”이라는 세 모습으로 존재한다.
몸(σῶμα, sōma, body): 흙의 먼지가 바탕인 나이다. 물질적인 신체요 세상, 만물과 관계를 맺는 살아있는 나이다. 오감을 통하여 하느님과 나 밖의 세상 사이에서 매사를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통로로 삼는다.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창세 2,7) 할 때의 흙먼지이다. 바오로 사도가 표현한 바에 따르면 “지상 천막집”(2코린 5,1)이면서도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1코린 6,19)라는 말씀에 따라 성령의 성전이기도 하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1코린 15,42-44)라는 말씀에 따르면, “썩어 없어질 것”, “비천한 것”, “약한 것”, “물질적인 것”이다. 몸은 “혼의 도구”(성 바실리오)이며, “성령의 궁전”(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이다.
혼(ψυχὴ, psychē, soul):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한 대로 흙먼지가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게 하는 본질이다. 자아, 감정과 의지, 생각과 지성, 욕구와 사랑으로 인격체를 이루는 나이다. 내면생활을 이루는 나다. 혼은 영과 몸 사이에 존재하면서 이쪽저쪽을 연결한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시편 104/103,1) 할 때의 영혼이고, “목숨”(마태 16,26)이다. “얼이 나가면 흙으로 돌아가고”(시편 146/145,4) 할 때의 “얼”이다. 육체적 인간이 죽을 때 혼은 스스로 생명을 유지할 수 없으나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을 얻어 생명을 이어간다. 혼은 “하느님의 청지기”(성 바실리오)이고, 몸에 생명을 주며 “영과 몸 사이를 중재”한다.(오리게네스)
영(πνεῦμα, pneuma, spirit): 생명체의 존재 근거인 “생명의 숨”이다.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나이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요한 3,6) 한 대로 나의 영은 태어난 영이요 빚어진 영이다. 이 영은 하느님께서 맨 처음에 인간에게 불어넣으신 하느님의 숨이며 “생명의 숨”(창세 2,7)이다. 그리스도께서 불어넣으신 성령(참조. 요한 20,23)이시다. 내 영의 원천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요한 3,3) 할 때의 내가 태어난 “위”이고, “영에서 태어난”이라 할 때의 내가 생겨난 “영”이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한 4,24) 한 대로 영이신 하느님께 나의 영이 예배를 드리며, 나의 영은 하느님을 아는 지혜로 나아간다. 영은 “혼의 등불”이며(오리게네스), “혼의 안내자”(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이다.
육신이 혼을 짓누르고, 영을 무겁게 하면, 인간은 불행하다.(참조. 지혜 9,15) “몸과 혼과 영”이 온전하고 흠 없을 때 인간은 행복하다. 신체적 행복(몸), 정신적 행복(혼), 영적인 행복(영)이 균형을 이룰 때 인간은 행복하다. 「신체적 행복은 건강이고, 정신적 행복은 기쁨이며, 영적 행복은 (존재의) 의미이다.(참조. 마틴 슐레스케, 바이올린과 순례자, 니케북스, 2018년, 200쪽)」 “몸과 혼과 영”은 선물이고, 주어지는 것이며, 얻어지는 것이고, 누리는 것이다.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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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 지상 천막집이 허물어지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건물 곧 사람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을 하늘에서 얻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이 천막집에서 우리는 탄식하며, 우리의 하늘 거처를 옷처럼 덧입기를 갈망합니다. 사실 우리가 천막을 벗더라도 알몸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천막 속에 살면서 무겁게 짓눌려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 천막을 벗어 버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덧입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죽을 것을 생명이 삼키도록 말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우리를 준비시키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그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몸 안에 사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언제나 확신에 차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2코린 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