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대전, 8월의 성모님 축일, 전례력

하늘, 땅, 호수 by 희민

1945년 4월 30일 게르만족 나치를 이끌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자살하고, 그의 권한이 카를 되니츠Karl Dönitz에게 이양되었으나, 5월 2일에 소련군이 그를 베를린에서 체포함에 따라 독일군을 대표하여 빌헬름 카이텔Wilhelm Keitel이 5월 8일에 무조건 항복 문서에 공식 서명한다. 따라서 유럽은 다음날인 5월 9일에 제2차 세계 대전의 종료일이 아닌 ‘승리의 날’로 전쟁 종식과 다시 찾은 평화를 기념한다. 그렇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의 공식적인 종료일은 1945년 9월 2일이다. 일본이 아직도 침략과 만행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티던 일본마저도 1945년 8월 15일 무조건 항복 문서에 공식 서명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은 사실상 종료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8월 15일에 일제 강점기가 끝났으며, 3년 뒤인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인류의 비극이었던 제2차 세계 대전과 그 역사적 아픔을 함께 살았던 교회의 전례력도 깊은 관련이 있다. 교회에서는 8월 15일에 ‘성모 승천 대축일’을 지내고 이어서 그 축일의 8일 축제 마지막 날인 22일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을 지낸다. 교황 비오 12세(1876~1958년, 재위: 1939~1958년)는 파티마의 성모님께서 요청하신 대로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참이던 1942년 10월 31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온 세상을 봉헌하며 전쟁의 종식을 기도했다. 그러나 해가 거듭 바뀌어도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자 이를 개탄하며 세계 대전의 종료를 내다보듯 대전 종료 1년 전인 1944년 5월 4일에 ‘성모 승천 대축일’(8월 15일), 그리고 그 대축일의 8일 축제 마지막 날인 8월 22일을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로 지정하고, 성모님의 중재를 청하면서 「국가 간의 평화, 교회의 자유, 죄인들의 회개, 순결에 대한 사랑과 덕행의 실천」을 온 세상에 요청하였다.

마침내 1945년 전쟁이 끝났으나 이미 제정되었던 전례 기념일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력 개정이 이루어지면서 바오로 6세 교황은 비오 12세께서 제정하신 8월 22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을 예수 성심께 봉헌된 6월의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날로 자리를 옮겼다. 예수님의 성심과 성모님의 성심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려는 조치였다.

한편, 인류는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제1차 세계 대전이라는 큰 아픔을 이미 겪었다. 전쟁의 와중에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이 정권을 잡음으로써 공산주의라는 다른 형태로 대립의 아픔을 겪으며 세계는 양분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비극과 아픔 속에서 교황 비오 11세께서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세속주의에 대항하여 교황 회칙 <첫째의 것(Quas Primas)>을 통하여 1925년 10월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제정하고, 그리스도만이 세상의 주인이시고 진정한 왕이심을 천명하였다. 알파요 오메가이신 그리스도를 기리는 이 축일은 전례력 개정 이후에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이자 전례력의 새로운 시작인 대림 시기 전 주일로 옮겨갔다.

한편 그리스도 왕 대축일의 제정에 따라 성모님을 여왕으로 모셔 기리려는 움직임도 생겨났는데, 이에 따라 비오 12세 교황님께서는 1954년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을 제정하시어 성모 성월의 마지막 날인 5월 31일에 지내도록 하셨다. 그러나 전례력 개정 이후에는 5월 31일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이 되었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은 성모님의 왕권을 성모님의 천상 영광에 연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 성모 승천 대축일 다음 8일 축제 마지막 날인 8월 22일로 옮겨 현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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