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화가가 늘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 렘브란트만도 100여 점이 넘는 자화상을 그렸으며, 붕대를 감은 자화상으로 유명한 빈센트 반 고흐도 30여 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화가들이 이렇게 자화상을 그리고 싶어 했던 것은 빈센트 반 고흐처럼 모델을 살 돈이 없이 궁했던 가난이 실제적인 이유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자의식과 내면세계, 그리고 자기 삶을 드러내고자 한다. 화가들의 자화상은 글자나 문자가 아닌 그림으로 표현한 자기이며, 내가 되고 싶은 나와 현실 속의 나를 견주는 과정이고, 내가 이해한 나만의 모습이다. 누구에게나 자화상은 언제, 어떻게든 그려낼 수 있는 나의 모습이다. 자기 처지를 자신의 재능껏 묘사하고, 자신의 고뇌와 자의식, 그리고 정체성을 드러내며, 자기 인생을 넘어 시대의 정신과 아픔까지도 자신을 통해 그려내는 것이 자화상이다. 몇몇 자화상과 함께 예수님께서 그리신 자화상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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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열다섯 나이에 첫 자화상을 그렸으며 90세인 1972년에 마지막 자화상을 그렸다고 알려지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년)는 스무 살 이른 나이에 파리에 체류하면서 이른바 ‘블루 시기The Blue Period’(1901~04)가 시작하던 시점에서도 자화상을 남긴다. 친구를 잃고 몹시 고독했던 시절, 화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던 시기였다. 그의 생애에서 ‘블루 시기’의 시작점에 있는 작품이다. 어두운 청색을 배경으로 얼굴의 창백함이 두드러지고, 대비되는 입술의 붉은 기가 다소 긴장을 완화하는 듯하지만 무겁고 긴 검정 외투는 덥수룩한 수염과 함께 진한 슬픔과 고독으로 화폭을 누른다. 피카소는 퀭한 시선으로 그림을 접하는 이들을 노려보듯 사로잡는다.
※그의 어두웠던 블루 시기의 작품들과 그에 관한 사연들은 다음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s://blog.naver.com/armada0219/221188960824
https://heera5860.tistory.com/1977
어린 시절부터 아흔에 이르는 피카소의 자화상들을 보다가 보면 자칫 그의 그림 스타일이 점진적인 진화적 발걸음을 걸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피카소는 이러한 사실을 경계한다. 피카소는 “다양한 주제들은 필연적으로 서로 다른 표현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진화나 진보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을 따라가고 그것을 표현해내는 수단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Different themes inevitably require different methods of expression. This does not imply either evolution or progress; it is a matter of following the idea one wants to express and the way in which one wants to express it.)”라고 말한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년)의 ‘붕대를 두른 자화상’은 두 점이다. 이 그림들은 분명 1888년 12월 23일 자신의 귀를 자른 뒤였을 것이니 죽기 얼마 전의 그림들이다. 그의 최초 자화상은 1886년으로 기록되며, 그는 많은 자화상을 주로 파리에서 그렸다. (피카소의 첫 자화상도 파리에서였다) 빈센트는 붉은 수염과 함께 그린 대부분의 자화상과 달리 1889년 9월에는 수염이 없는 깔끔한 모습으로 자기를 그린다. 아마도 마지막이었을 자화상이다.
이 마지막 자화상에 관하여 빈센트는 “… 오늘 네게 내 자화상을 보낸다. 반드시 한번 잘 살펴보기를 바란다. 네가 보다시피, 나도 바라건대, 내 표정이 훨씬 차분해지지 않았니? 시선이 전보다는 좀 흐릿해진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야. 내게는 그렇게 보인다. 내가 아팠을 때 시도한 작품도 있었지만 나는 네가 이 작품을 더 좋아할 것이라고 본다. 뭔가 단순하게 그리려고 노력했지. 피에르 피사로를 보거든 그에게도 보여주렴.…”(참조. 편지 805, 1889년 9월 20일경 생 레미 요양병원에서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vangoghletters.org)이라고 쓴다. 이를 앙다문 입, 붉은 뺨과 함께 미간에 파인 골, 단정하게 빗어넘긴 머리, 다소 기가 꺾인 듯하면서도 광대뼈와 갸름한 턱선들이 자꾸 넘어져도 고집스럽게 다시 살아보려는 의지를 내보인다. 빈센트는 동생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애써 이제는 괜찮다고 말한다. 그래도 생의 마지막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김수환 추기경(1922~2009년)님께서 선종하시기 두어 해 전, 85세에 그려 공개되고 전시된 자화상도 있다. 그림 밑에 “바보야”라는 글귀가 새겨져 더욱 유명해졌고, 몇 초 만에 그린 그림인 듯 단순해서 사람들이 좋아했던 자화상이다. 그림은 단순했고 쉽게 그려진 듯하지만, 그 모습을 그리기까지 85년의 긴 세월이 걸렸을 것이어서 더욱 공감을 주었던 가슴 뭉클한 작품이다. 이를 두고 수많은 사람이 글을 썼고, 기사화하기도 했다. 추기경님의 자화상에는 자기 비움과 소박한 웃음, “바보야”라는 문구 속에 담긴 겸손과 따뜻함이 깃들었다. 그렇게 그분은 친근하고 넉넉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았다.
예수님의 자화상
많은 학자나 작가가 마태오복음 제5장에 나오는 소위 ‘진복팔단’이 예수님께서 그리셨던 예수님 자신의 자화상이라는 데에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전임 두 교황님만 보아도 그러한 사실은 분명해진다: 「…마태오 복음서의 본문을 찬찬히 읽어본 사람은 이 참행복 선언을 예수의 내면에 숨겨진 하나의 전기傳記처럼, 그분 인품의 초상화처럼 느낄 것이다. 머리 둘 곳조차 없는 그분(마태 8,20)은 정말로 가난한 사람이었다. ‘나에게 오라! 나는 정말로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다.’(마태 11,29 참조) 하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 마음이 깨끗하신 분, 그러기에 언제고 계속적으로 하느님을 보고 계신 분이다. 그분은 평화를 세우시는 분, 하느님을 위해 고통을 당하시는 분이다. 이렇게 참행복 선언에는 그리스도 자신의 신비가 나타난다.」(교황 베네딕토 16세, 나자렛 예수 제1권, 바오로딸, 2012년, 128쪽)
「…복음을 펼쳐 들면 마태오복음 제5장에서 진복팔단을 발견할 것입니다. 읽어보십시오. 이 말씀들에는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주신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사실 진복팔단은 예수님의 자화상입니다. 예수님 삶의 방식이고 참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총으로 그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습니다.…(교황 프란치스코, 2014년 8월 6일, 일반 알현)」 「…진복팔단은 예수님 자신의 얼굴을 계시하는 내용이므로 그리스도인의 신분증처럼 여겨져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참행복’이 예수님 당신의 얼굴 자체와 그분의 삶의 방식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020년 1월 29일 일반 알현, 참행복에 대한 교리교육 시리즈의 시작)」
하늘 나라 자체이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 가난하신 분, 슬퍼하신 분, 온유하신 분,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분, 자비로운 분, 마음이 깨끗한 분, 평화를 이루는 분,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은 분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자신을 그리셨고, 그렇게 당신의 삶을 완성하시면서, 우리도 그런 모습으로 살라고 하신다. 우리도 나름대로 저마다 매일 만나는 자기 얼굴을 통해 여러 가지 형태로 매일 나를 그리고, 세상을 그려가며 산다. 그런데, “어떻게 생겼었는지 곧 잊어버립니다.”(야고 1,24) 한 성경 말씀 그대로 아둔하여 매일 보는 제 얼굴을 곧 잊어버리고 산다. 은총을 기도해야 한다.
근데요.
오늘 전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40대 이후 얼굴은 인생의
지난한 흔적인데.
ㅎ ㅎ
전 휑합니다. 눈이. 움푹 패인 주름이.
힘든
삶의 모습이 쌓여있는 내 모습이여.
오늘도 수고했다고 토닥토닥 해 줍니다.
자기 얼굴을 통해 매일 나를 그리고 세상을 그려간다, 자화상.
그런 줄도 모르고 나이 듦에 서글퍼 옷만 샀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