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너무 많은 남녀 수도회가 있어서 그 숫자는 하느님도 모르신다는 말이 있지만, 영리한 ChatGPT는 전 세계 가톨릭교회 안에 공식 인정된 남녀 수도회의 개수가 대략 1,200~1,500개 정도라고 대답한다. 그중 2022~2023년 통계에 따를 때 우리나라에는 남성 수도회가 48개, 여성 수도회가 125개, 합계 173개(수도회·수녀회·선교단체 등 포함)가 있다.
수도회마다 개성과 고유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어서 수도회의 특성을 쉽게 말하기 위한 우스개들도 있는데, 예를 들어, 청빈을 강조하는 프란치스코회가 섭리에 의존한다며 돈을 내다 버리면 아이들 먹여 살리느라 항상 돈이 필요한 살레시오회는 기다렸다가 그 돈을 주워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어느 선교지에 처음 도착할 때, 예수회는 도서관이나 관공서부터 찾아가 각종 인구 통계학적 수치들과 문화를 자세히 비교 분석하여 보고서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프란치스코회는 그들을 먹이려고 밥하느라 법석이며, 설교를 중시하는 도미니코회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교하느라 목이 쉬어 말이 안 나오고,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살레시오회는 동네 아이들을 모아서 종일 축구 경기를 하느라 기진맥진한다는 우스개도 있다. 그러면, 음악의 여러 장르에 맞추어 수도회들의 특성을 짝지어본다면 어떻게 될까?
수도회들은 마치 하느님께서 제작하신 믹스 테이프처럼 교회 안에서 여러 독창적인 음악으로 고유한 자기 리듬과 멜로디를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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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회는 포크 송이다. 포크 송은 대개 주요 3화음만으로도 연주할 수 있듯 프란치스코회는 단순하다. 들판에서 맨발로 형제 태양과 달 누이를 바라보며 통기타를 들고 기쁘게 포크 송 노래를 부르는 프란치스코회 형제들의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발길 닿는 곳마다 마을 광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몸으로 노래했던 성 프란치스코는 이미 원조 포크 싱어송라이터라고 할 만하다.
예수회는 재즈이다. 아침 식사 전에 이미 잡다한 이단異端 하나 정도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온 듯한 지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대학 강당에서 독창적인 악기들을 들고 서로의 음을 듣는다. 그러다가 서로의 음에 응답하며 여러 언어의 노래에 저마다 몸을 흔들어대고, 여렸다가 강했다가 깊고 명상적인 박동으로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하도록 긴장하게 하면서 청중을 이끌어가는 분위기는 과연 예수회답다.
도미니코회는 그레고리안에 현대의 랩과 힙합이 어우러진 음악이다. 설교자들의 수도회답게 도미니코회는 하나의 장르로는 부족할 것 같다. 고대 교부로부터 현대 신학의 밀도 있는 독백에 이르기까지 마이크를 잡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도미니칸들은 원조 콘텐츠 작가들이다. 푸근한 시골 마당 같은 분위기로부터 빌보드 차트에 이르기까지 바퀴 달린 교리서처럼 도미니칸은 거침없이 전국 순회공연을 마다하지 않는다.
베네딕토회는 합창이다. 분도회 회원들은 유구한 세월 앞에 서두르는 법이 없이 성무일도 매 시간경을 빠짐없이 바치면서 정주定住의 가치를 서로 공유하고, 울타리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맥주가 필요하면 맥주를 빚고, 빵이 필요하면 빵을 굽고, 소시지가 필요하다고 하면 소시지도 만들어 이를 울타리 밖 사람들과 나누기도 한다. 절대 가볍지 않은 중세 수도원의 출입문과 담장 너머로 평화롭게 여럿이 부르는 하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카르멜회는 조용하고 고운 선율과 아카펠라이다. 가장 조용한 수도회인 듯하면서도 가장 강렬한 신비가들이 모여 침묵 속에서 영혼의 깊이를 추구한다. 카르멜 회원들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면서도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께서 “냄비와 프라이팬들 사이에도 하느님께서 계신다”라고 했던 말씀을 떠올리며 산다. 카르멜 수도원에는 가사 없이도 좋은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중에 하느님의 메아리가 은은하다.
살레시오회는 팝송이다. 애들과 함께 항상 시끌벅적한 살레시오회에는 활기가 넘치고 의미 있는 가사를 반복해서 외치며 함께 손뼉을 치고, 박자에 맞추어 흔들어대는 빠른 비트, 온갖 분장과 땀이 범벅이 되어 모두 뛴다. 함께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면서도 드럼 옆에는 여러 공들이 담긴 큰 망 하나쯤은 반드시 있어야 할 것 같다. 마냥 무질서인 듯하면서도, 어느 순간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며 정적이 흐르고, 이내 쾌활한 리듬이 다시 이어진다.
트라피스트회는 싫증이 날 수 없는 한 음의 연속이면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평균율 같은 음악이다. 시간을 넘어 단조롭게 한 음만 이어지고 있는데도 권태롭지 않은 음악, 침묵이라는 음악이다.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시편 46,11)라는 주제가 무한 반복되는 영적 리믹스이다. 트라피스트의 음악 장르는 음악이라기보다 ‘시간’의 신성한 울림이다.
*이 글은 대니엘 에스파르자Daniel Esparza가 2025년 7월 2일 aleteia.org에 <If religious orders were music genres…>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을 참조하였습니다.
아주 아주 흥미로운 글 이었습니다. 음악장르에 수도회 성격을 접목시켜 설명한. 게다가 그 안에 엿 보이는 하느님 섭리의 다양성. 브라보 !!!!